/ 머리말
도가 지나친 욕설과 스턴트로 관심을 추구하는 것은 *조회수 자체가 **돈이요 영향력인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관종은 더 이상 멸칭이 아니라 과거와 구별되는 현대인의 특징으로 거론다. - P7
이들은 정치평론가나 운동가로 불리지 않는다.
이들은 어떤 신념이나 가치를 설파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들은 아무런 내용 없이 *어그로를 끄는 것만으로 커리어를 쌓아간다.
영미권의 언론에서는 이들을 **프로보커터 provocateur, 우리말로 도발자라고 일컫는다.
아모스 이는 하늘에서 떨어진 별종이 아니라 시대의 산물이다.
주목과 관심에 환금성이 부여되는 주목경제 attention economy의 시대, 조회수에 자아를 동기화하는 관종의 시대, 좋아요와 구독자를 늘리기 위해 상상 밖의 추태를 불사하고 사회적 금도를 넘나드는 무질서의 시대가 그것이다.
무플보다 악플이 낫다는 표현은 대중적 인기로 성패가 결정되는 연예인과 정치인에게나 어울리는 말이었다.
그러나 소셜 미디어가 전 인류를 네트워킹 하면서 *이제는 **일반인에게도 *무플보다 **악플이 나은 시대가 되었다. - P30
/ 조회수 장사와 기호의 경제
조회수 장사를 가능하게 하는 기반이 주목경제다. *주목경제라는 개념을 고안한 미국의 저술가 마이클 골드하버M. H. Goldhaber의 문제의식은 다음의 명제에서 출발한다.
*정보시대에서 **디지털 재화라 일컬어지는 *정보에는 **희소성이 **없다. *무한히 취할 수 있는 것에는 *값이 매겨질 까닭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가치한 정보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무엇인가? 바로 *인간의 **주목이다.
**주목은 **유한하기 때문이다.
희소한 자원을 어떻게 분배하느냐가 경제학의 문제라면, 오늘날 주목과 관심의 주고받음은 엄연한 경제행위다.
이목을 끌고 유지하기 위한 정보 공급자들의 *경쟁은 더욱 격해지고, 콘텐츠 또한 *자극적이고 *선정적으로 변한다.
아무리 *완성도 높은 콘텐츠라도 **주목 경쟁에서 **탈락한다면 *가치가 없는 셈이다. - P38
**데이터는 *정보 이전의 단계, 날것 그대로의 자료다. 다시 말해 데이터에 **의미가 부여된 것이 **정보다
치즈 토네이도에 빰을 얻어 맞은 테이스티훈의 영상은 정보값이 0에 가깝다.
인스타그램이나 틱톡과 같은 소셜미디어에 업로드되는 사진이나 짤막한 영상은 대부분 한번 보고 완전히 잊어버려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요컨데 이런 것들은 정보가 아니라 데이터다.
오늘날 플랫폼 기업은 눈앞의 이윤보다 성장(이용자 확보)을 더 중시한다.
플랫폼 이용료를 무료에 가깝게 낮춤으로써 경쟁사보다 더 많은 고객을 유치하는 것이다.
이용자들이 플랫폼을 경유하며 벌이는 모든 활동은 일종의 **자유/무료 노동으로, 플랫폼 기업의 이윤도 바로 여기에서 발생한다.
따라서 이용자의 플랫폼 활동을 **free labor라고 부르는 것은 꽤 적절하다. - P44
**트롤Troll의 기원은 북유럽 신화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들은 주로 동굴이나 언덕 밑에 집을 짓고 사는 요정과 같은 존재로, *인간에게 *장난과 *행패를 일삼는 *악동으로 묘사된다.
영미권에서는 *난데없이 나타나 *훼방을 놓거나, *악의를 갖고서 *불특정 다수 혹은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만드는 이를 가리켜 트롤, 그러한 행위를 ‘트롤링‘ 이라고 일컫는다. - P49
**트롤링의 동기는 당연히 *관심이다. 몇 마디의 말로 소란을 일으키고 일말의 영향력을 만끽하는 행동은 관심을 갈구하는 것과 다르지않다.
*트롤은 *‘관종‘(관심종자)이라는 말과 *호환 가능하다.
*종자種子‘라는 표현은 어떤 사람의 씨앗, 즉 *근본부터가 *남들과 다름을 가리킨다.
나아가 ‘관심‘으로 수식되는 그 특질은 하나의 종種적인 속성에맞먹는 지위를 갖는다. 따라서 *관종은 *인터넷 시대에 출현한 *별종 혹은 *신인류라고 할 수 있겠다. - P50
물론 *관종은 *돌연변이나 *희귀한 존재가 *아니다.
*주목경제 시대의 *인류는 **모두 *‘관종끼‘를 갖고 있다. 관종의 시대》(2020)라는 책을 쓴 김곡의 말대로 "오늘날 관심은 *돈과 *삶의 *개념 자체를 그 *종자부터 바꾸어 놓았기에 이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 *어느 정도 *타인의 *관심을 *갈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주목과 **관심이 **가치를 *규정하기 때문이다. 다만 이런 보편적 ‘관종끼‘를 넘어 *주목과 *관심에 *자아를 *일체화 동기화하는 사람이 이 책에서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나쁜) 관종이다.
트롤은 관종에 공격성과 과격함이 더해진 자들이다.
‘선을 넘어서는’ 언동은 점차 대중의 *오락거리로 소비된다.
/ 전복과 위반, 좌파의 전략에서 마케팅과 극우의 무기로
선 넘기, 즉 위반의 문화정치는 본래 좌파의 전략이었다. 사드 후작과 니체, 푸코는 정상-비정상 혹은 합리성-비합리성의 경계를 긋는 *지식과 *도덕에는 *권력이 *작용하다는 것을 일찍부터 알았다.
나아가 이들은 *통념과 *금기에 대한 *전복과 *위반을 *저항의 미덕으로 축복한 바 있다.
보수주의는 전통적 가치, 즉 상식과 통념을 수호하며 현 상태의 유지와 재상산을 도모한다.
68운동 이후 금기 도덕 권위 위계 구획 경계 등에 순응하지 않는 태도는 저항적이라는 수식어가 붙었고, 이는 곧 진보의 가치로 칭송되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월경과 전복과 위반의 가치는 점차 *대중에게 *익숙한 것이 되었다.
*긴장을 잃어버린 선 넘기의 미학은 *탈정치화했고, 이후 문화산업에서 유행한 **혼성 모방 pastishe (풍자나 비판의식이 결여된 패러디)의 소재로 전락했다.
극우 혹은 과격파들이 선 넘기를 효과적인 선전 전략으로 활용할 수 있는 것은 어찌 되었든 ‘선을 넘는’ 콘텐츠가 높은 조회수를 보장하기 때문이다.
사회적 금도를 무너뜨리는 언행에 그토록 많은 사람이 열광하는 것은 헤게모니 균열의 징후와 다르지 않다고 주장하고 싶다. 선을 넘는 기행에 쏟아지는 대중의 열광은 헤게모니에 도전하는 행위에 대한 예찬이다.
모든 것에 의문부호가 붙는 오늘날, 사회의 여러 조건과 결과에 개의치 않고 사회 질서에 *개기는 행위를 보면서 잠시 눈살은 찌푸릴지언정 일말의 쾌감을 갖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규범이든 예의든 공동체에서 요구하는 것들은 다 지키며 살아왔지만 사는 형편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으니, 그런 트롤들을 대리 삼아서라도 질서 자체를 흔들려는 움직임일 수도 있겠다. - P6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