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뒤바꾼 아이디어 100>
/ 시작하는 글
영화는 사실 매우 느슨한 용어다. 최초의 무성영화부터 최근의 블록버스터 영화까지, 만화영화부터 다큐멘터리까지, 시리즈에서 뉴스릴까지, 실험영화에서 포르노영화까지 전부 영화의 범주에 포함된다.
이런 다양한 영화들은 지난 *120여 년간 영화를 제작하고 배급하고 상영하고 소비하고감상하는 방식을 결정해왔다. 초창기 활동사진과 지금의 블록버스터가 얼마나 많은 개념과 기술을 공유하는지 알면 놀랄 것이다.
*영화는 **제7의 **예술이라 불린다.
**음악, 무용, 회화, 문학, 건축, 조각에 비하면 영화는 걸음마 단계에 불과하지만 눈부시게 빠른 속도로 진화했다.
**1895년 12월 28일, 파리 그랑 카페 Grand Caft에서 상영된 첫 번째 영화와 오늘날 할리우드에서 컴퓨터로 만들어진 영상이 이어져 있다는 것을 알아볼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활동사진을 만들겠다는 아이디어가 누구에게서 나왔는지, 또 그것을 기록하거나 전파하는 수단을누가 제일 먼저 개발했는지는 아무도 확신할 수 없다.
오귀스트와 루이 뤼미에르 Auguste and LouisLimitre 형제가 영화사에 족적을 남기기 오래전부터 작가, 과학자, 사업가들은 오락성 못지않게관객의 의식향상을 위해 영화를 제작했다.
그러나 *환등기와 *광학 장난감 같은 장치를 개발하거나 **잔상효과 등의 개념을 발견한 사람들 가운데 영화가 오늘날과 같이 가장 대중적이고 접근하기쉬우며 사회 · 정치·문화적으로 가장 의미 있는 예술 형식으로 발전하리라 예상한 사람은 거의없었다.
영화는 세계적인 오락거리지만 영화를 뒤바꾼 생각들은 대부분 *유럽과 *미국에서 *유래했다.
*기술적이고 *상업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온 아이디어도 많았고, *미학적이거나 *극작의 한계를 넓히기 위한 시도도 있었다.
이 책은 *사업적 기회주의와 *기술적 실용주의의 연대기인 동시에 **예술성과 *사회적 신념, *쇼맨십에 보내는 찬사이다.
**수많은 자본가의 후원과 **과학자의 창의력, **행정가의 개입이 없었더라면 영화는 *결코 *이색적인 *19세기 골동품 신세를 면하기힘들었을 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으로 *유럽의 *영화산업이 *타격을 입는 바람에 할리우드가 전 세계를 장악하는 일이벌어지지 않았더라면 영화사가 어떻게 달라졌을지 생각해보는 것도 흥미롭다.
*영화사의 초기 20년동안 미국, 프랑스, 영국, 독일, 이탈리아 영화계의 선구자들이 영화 문법의 발전에 고르게기여했지만, *그 후의 무성영화 시대는 당시 급부상하던 *할리우드 스튜디오시스템의 지배를 받았다.
*스튜디오들은 *공산품을 생산하듯이 영화를 찍어내고 돈벌이가 되는 **장르와 **스타에 **치중함으로써 *세계 영화계의 헤게모니를 거머쥐었고, 인도의 발리우드와 나이지리아의 날리우드 등이 더 많은작품을 쏟아내는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그 위상을 유지하고 있다.
**MGM, 파라마운트, 워너브라더스, 20세기폭스, RKO 등 **5대 메이저 스튜디오는 묶어 파는 시스템인 *블록 부킹과 수직통합 관행을 통해 안정적으로 상영관 수를 확보했다.
**대공황과 제2차세계대전 동안 미국영화계는 할리우드 유성영화와 비즈니스 모델 덕분에 살아남았다.
그러나 할리우드 스튜디오의 황금기는 영원히 지속될 수 없었다.
교외 지역의 확장, 반독점법, 매카시즘, 텔레비전의 인기 등의 악재가 겹치면서 스튜디오들은 관객을 다시 끌어오기 위해 컬러영화, 와이드스크린, 3D, 입체음향 등의 도입에 박차를 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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