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제1언어로 사용되고 있는 언어는 약 **5천 개이며 이 중 21세기에만 2천 5백 개가량의 언어가 사라질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장기적으로 *2백 년 이내에 전 세계적으로 *2백 개 정도의 언어만 남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앞으로 국가어 외의 소수 언어들은 대부분 소실될 것이라는 예측이다. - P130

현재 영어 사용자는 유창한 사용자를 기준으로 전 세계적으로 *7억 명에 이르며, 충분한 정도로 구사하는 영어 사용자는 *18억 명을 넘어선다.

게다가 인도를 포함하여 약 70개국에서 국가어 혹은 *공용어로 쓰이고 있으며 영어 학습자 수가 세계 인구의 약 **3분의 1에 육박한다는 통계도 나온다. - P131

언어학자로서 저자가 우려하는 것은 세계의 각 언어로 전승되고 보존되어온 지식을 우리가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그에 따르면, 우리는 번역할 때 한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 직접 건너갈 수 없으며 항상 **현실 세계를 거쳐서 가야만 한다.

이때 각 언어는 세계를 보고 나누고 구분하는 각기 다른 관점을 갖고 있으며 이에 따라 그것이 그려내는 현실 세계의 지도도 다를 수밖에 없다.

즉 **각 언어는 **사물이 존재하는 방식에 대해서 **각기 다른 **통찰력을 제공해주며 우리에겐 그러한 *대안적인 *세계관이 필요하다.

한 언어의 소실은 곧 인간의 경험을 이해할 수 있는 한 가지 대안의 상실이다. 게다가 보다 중요하게는 다른 언어와의 상호 작용만이 우리 각자의 언어를 더욱 유연하고 창조적으로 만들어준다. - P132

철학자들이 지혜를 사랑하는 필로소피아의 정신으로 찾고자 한 세상의 이치가 크게 **원리와 **윤리, **진리라고 말하면서 이제 네 번째 탐구의 대상으로 **설리를 내세울 때 그는 독보적인 영역을 개척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시학을 *이야기 철학 또는 *서사철학의 원조로 꼽는다. - P134

*리쾨르의 말을 빌면, 우리의 **정체성 자체가 **이야기로 구성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야기를 지어내면서 **누군가가 만들어내는 이야기 속에 살고 있는지 모른다.

*세상 자체가 *이야기의 *중층 구조다. - P135

**허구를 필요로 하는 존재로서의 인간, 곧 *서사적 인간에 대한 서사철학은 **서사적 인간학을 창출한다. - P135

역자는 지금까지의 인문사회과학이 **양적인 연구 방법에 치중해왔으며 **연구와 실천 간의 **분리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았다고 비판한다.

그것이 *인문과학 연구들의 빈약성 혹은 방법론의 *부적절성을 낳고 있으며 인문과학에 대한 *신뢰를 점점 떨어뜨리고 있다는 진단이다. - P137

반면에 심리치료사, 카운슬러, 조직 컨설턴트 등 다양한 실천가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들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어떤 차이가 때문일까?

다름 아니라 **"실천가들이 **내러티브적 지식으로 **일을 한다는 것", 곧 **내러티브가 핵심이고 변수다. 이러한 내러티브를 가지고 연구와 실천에 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 기적에 이르는 침묵

그 ‘강요된 휴식‘ 속에서 타르코프스키는 자신이 영화의 창작 과정 속에서 추구하는 목적에 대해 숙고할 수가 있었고 『봉인된 시간은 그 산물이다. - P253

/ 시적 연결의 윤리학

그렇다면, 그가 말하는 **영화예술의 **본질은 무엇인가? "그것은 **시간을 **빚어내는 것이다.

마치 *조각가가 자신의 *마음의 눈으로 자신이 만들어낼 *조각품의 *윤곽을 보고 이에 걸맞게 대리석 덩어리의 *모든 필요 없는 *부분을 *쪼아버리는 것과 *흡사하게 **영화예술가 역시 **삶의 사실들로 이루어진 *거대하고 정리되지 않은 *혼합물들 속에서 모든 **불필요한 것들을 제거하고 (……] **예술적인 전체 형상의 없어서는 안 될 **모든 순간들만을 남겨두는 것이다.

그것이 ‘봉인된 시간‘이라는 말의 뜻이다. - P253

그리고 그러한 영화적 순간들을 창조하고 구성하는 데 있어서 타르코프스키가 유난히 강조하는 것은 **윤리적 이상이다.

실상 이 책의 결론은 마치 <노스탤지어>에서 도메니코가 분신하기에 앞서서 사람들에게던지는 절박한 윤리적 호소를 연상케 하는데, 어쩌면 『봉인된 시간 자체가 영화 〈희생〉과 마찬가지로 암으로 투병 중이던 타르코프스키가 인류에게 건네는 마지막 호소이자 유언인지도 모른다.

**영화미학을 타이틀로 내걸고는 있지만 *도스토예프스키에게서와 마찬가지로 타르코프스키에게도 **미학은 곧 **윤리학이라는 걸 우리는 상기할 필요가 있다. - P253

그러한 *윤리학의 *미적 실천을 위해서 타르코프스키가 특별히 강조하는 것은 **시적, 혹은 **정서적 연결이다.

이 시적 연결은 같은 러시아인으로서 영화사의 걸출한 족적을 남긴 세르게이 에이젠슈테인 1898~1948의 *몽타주론이 지향하는 ‘논리적 연결‘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이기도 하다.

에이젠슈테인 식의 논리적 연결은 미리 계산된 미학적 효과와 의미를 창출해내고자 하는데,

*타르코프스키가 보기에 그렇게 *인위적으로 짜맞추어진 결과는 *삶의 진실을 *배제하며 *관객을 *감동으로부터 *격리시킨다.

그가 보기에 **삶의 양상 중에는 *오직 **주관적으로만 이해되고 **시적인 수단을 통해서만 **적절하게 **묘사될 수 있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 P254

타르코프스키가 이 장면에서 지적하는 것은 "**어찌할 바 모르는 당황한 영혼의 상태"를 포착하고 있는 천재적인 수법이다.

이와 같은 *삶의 *순간들과 영혼의 상태를 드러내고자 하는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는 사실 *정적이지 않으며 *대단히 격렬하다.

카메라는 인물들의 행동을 숨죽인 관찰자처럼 따라가며 단지 보여주기만 하지만 그 조용한 화면에 비춰지는 것은 **격렬한 감정의 폭발이기도 하다. - P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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