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시스 고야의 유명한 동판화 연작 <로스 카프리초스 los caprichos> 중에는 <이성의 잠이 괴물을 만든다(1799)라는 작품이 있다.
그의 꿈에 나타난 이 달갑지 않은 동물 손님들은 무지와 어리석음, 그리고 폭력을 상징한다. 이들은 모두 계몽주의 시대가 이성의 날카로운 칼로 퇴치하고자 했던 대상이다.
그런데 작품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비이성을 상징하는 동물들, 한마디로 괴물들이 남자의 이성이 쉬는 틈을 타 출몰한다. - P56
계몽주의 논리로 해석하면 인간은 잠든 사이에 온갖 비논리, 혼돈, 무질서가 난무하는 꿈을 꾼다. 그 꿈은 낮의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을 뿐더러 때로는 낮의 논리를 완전히 전복시켜버리기도 한다.
프로이트 식으로 말하면, 꿈은 이성이 눈을 뜨고 있는 낮 동안 억압되었던 무의식이 의식의 검열을 피해 압축과 전치라는 작업을 거쳐 우회적으로 방출되는 정신 활동이다.
따라서 꿈은 의식 세계의 억압과 폭력을 판가름하는 지표이자 의식의 문제가 드러나는 징후다. - P56
이렇게 억압되거나 배제된 내부의 비이성적 차원은 무의식의 바다에 가라앉아 있다가 문득 의식이 *통제할 수 없는 시간과 공간에 출몰하게 된다.
*때로는 간악한 냉소를 머금은 악인의 얼굴로(하이드 씨), *너무 흉측해 차마 마주하기 어려운 괴물의 형상으로(프랑켄슈타인), *혹은 멋진 신사의 풍모로 여성의 마음을 사로잡는 유혹자인 흡혈귀의 모습으로(드라큘라) 인간 내부 깊숙이 자리한 비이성적 차원에 다가와 "나 여기 있어요"라고 말하며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 P57
만일 *괴물이 *절대적 타자로 *외부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내부에 숨어 있는 *비밀스러운 차원이고 *그것이 *언제 *어떻게 *나타날지 *합리적 이성이 *계산하고 *예측해낼 수 없다면, *인간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안다고 말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내가 누구인지 안다고 말하는 순간에도 내가 알지 못하는 내 안의 타자, 내 안의 괴물이 나와 함께 있기 때문이다.
괴물은 자아의 자기 동일적 정체성이 완결될 수 없게 된다. *자기 동일성의 *문을 닫으려는 순간 *괴물은 *자아 안에 *길들이거나 *지배할 수 없는 형태의 *타자성으로 남아 *인간이 **균열된 존재임을 나타내는 증거가 된다. - P57
/ 괴물과 함께한 인간의 역사
그리스 신화나 성경에도 스핑크스, 미노타우로스, 히드라, 리바이어던 등 수많은 괴물이 등장한다.
이런 괴물들은 *영웅이 싸워서 *이겨내야 할 *외부적 타자로 *영웅의 용맹과 지혜를 입증하는 계기를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에 많은 괴물이 등장하는 이유는 서사적 필요성, 완전한 초월자로서 하느님의 권능이나 신비, 신성함을 강화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계몽주의 시대의 괴물은 *합리적 이성의 뒤에 *숨은 문제적 국면, 즉 *우리 내부의 *괴물성에 대한 *은유다. - P59
/ 나를 찾아가는 글쓰기
‘저는 앞을 볼 수 없어요. 도와 주세요.’
‘날이 아주 좋아요. 전 볼 수가 없지만요.’
Change the words, change the world’
언어가 세상을 바꾼다는 단순하지만 강렬한 메시지를 담고 있어서 글쓰기 강의를 할 때 종종 인용하곤 한다. 어떤 장황한 설명보다 언어가 가진 힘을 전달하는 데 효과적이다. - P98
**의미를 두지 않은 타인은 사물과도 같다. 손을 내밀거나 말을 걸어서 그 거리를 좁혔을 때 관계가 생기고 내 삶에 영향을 끼치는 존재가 된다. 이때 가장 중요한 요소가 언어, 말이나 글이다. - P98
‘나는 그 사람이 알 수 있는 언어로 말하고 있나?’ ‘그 사람이 듣고 싶은 말, 꼭 알아야 할 말을 제대로 했나?’ ‘나는 팩트만을 나열해놓고 할 말을 다 했다면 모든 걸 그 사람 탓으로 돌리고 있는 건 아닐까?’
글도 마찬가지다. 내가 원하는 만큼의 반응을 얻지 못했다면 상황을 상대편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생생하게 그려냈는지 점검해봐야 한다.
상대의 가슴 한가운데를 푹 찌르는 말을 빚어내는 것은 내 마음속 진심이다. 진심은 상대에게 전해져 공명을 일으킨다. - P100
Change the words, change the world를 떠올리며 당신의 언어를 바꿀 수만 있다면 언젠가 당신의 세계(인생)가 바뀔 것이다.
글이란 평면적인 한 인간의 삶을 입체적으로 보이게 해주는 힘이 있다. 요즘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나는 것도 이런 이유일 것이다.
글쓰기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태어날 때부터 인간의 유전자에 글을 쓰는 능력이 존재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 뇌과학 연구자들의 주장이다.
말은 자연스럽게 배우지만 글은 다르다. 생각을 정리하고 문법에 맞게 문장을 만드는 과정은 훈련이 필요하다. - P100
하지만 많은 양의 책을 읽어서 지식이 많고 모르는 게 업는 사람들은 이외로 소통을 잘 못한다. 제 이야기하느라 바쁘다.
아는 게 많으니 할 말도 많다. 들을 시간이 없다.
이런 사람과 대화하기란 참 곤란하다. 지루하다. 피곤하다. 때로는 불쾌하다.
왜 그들은 남이 자신의 말을 듣고 싶어 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책을 빨리 많이 읽은 만큼 말도 빨리 많이하고 싶은 걸까? - P108
찬찬히 음미하면서 책을 읽은 사람, 선별한 독서를 한 사람은 말도 비슷한 방식으로 한다. 조심조심 상대와 반응을 주고받으며 대화하고 상대의 말에 귀기울일 줄 안다.
행간을 읽으려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기가 아는 대로, 겪은 대로밖에 할 줄 모른다.
행간을 읽고 느껴본 사람만이 타인의 말에도 행간이 있다는 걸 안다. 제발 남의 말 좀 듣자.
하고 싶은 말은 절반으로 줄이고 들어주는 말은 두 배로 늘리자. 인간관계에서 분명 남는 장사가 될 거라고 장담한다. 소통이 뭐 별건가. 이런 게 소통이다. - P109
정독과 다독을 자기 리듬에 맞게 번갈아 하면 된다. 뭐든 한 가지를 오래 하면 진력도 나고 몸의 활력을 잃어버리기 쉽다. 상황 따라 마음이 가는 쪽으로 흘러가자. - P110
분명 말로 했어도 글로 쓰고 나면 새로운 것들이 그 사이로 끼어들어 전혀 다른 느낌의 문장들이 이어진다.
**글 사이에 뭔가가 고인다. 내뱉자마자 공중으로 휘발되어버리는 말과는 대조적이다.
어떤 경우든 3~4주 지나면 달라진다. 거의 예외 없이 일어나는 일이다.
단순히 문장만 달라지는 정도가 아니라 글에 접근하는 마음고 태도에도 변화가 찾아온다.
멋을 부리거나 연출을 하려는 태도는 사라지고 하고 싶은 말을 있는 그대로 할 수 있게 된다. 가짜는 진짜를 못 이긴다. - P112
모든 아름다운 것에는 슬픔이 있다.
자신의 세계를 갖는다는 건 중요하다. 필수적이다.
나를 잘 알고 나를 잘 이해해야 타인도 잘 이해할 수 있다. 타인은 나의 바깥 버전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을 충분히 이해하고 노력해본 사람은 타인의 노력을 알아볼 수 있다. 그렇게 우리는 하나씩 배워가며 나와 남 사이에 다리를 놓아야 한다.
좋은 책을 갖는 것은 좋은 친구나 스승을 만나는 일과 같다. - P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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