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란 무엇인가>

/ 그을린 이후의 소설가, 김연수


그게 소설이든 시든, 어떤 젊은이가 갑자기 책상에 앉아서 뭔가를 쓰기 시작한다면, 지금 그의 내면에서 *불길이 일어났다는 뜻이다. 

**불은 결코 홀로 타오르는 법이 없다. 
그러니 *그 불은 바깥 어딘가에서 그의 *내면으로 번졌으리라. 하지만 그불이 어디서 왔는지는 그에게 중요하지 않다. 

*그 불은 어디에서든 옮겨붙을 수 있으니까. 불은 바로 옆에 앉은 사람에게서도, 수천 년 전에 죽은 사람에게서도 전해질 수 있다. *수천 킬로미터의 거리와 *수천년의 시간을 사이에 두고서도 그 불은 원래의 열기를 고스란히 보존한 채로 그 젊은이의 내면에서 순식간에 타오른다. 그게 불의 속성이다. 

*책상에 앉아서 뭔가를 쓰기 시작하는 젊은이의 가슴속에서 이는불 역시 마찬가지다. 순식간에 타오르고, 그는 이 열기에 놀란다.  - P5

그러나 이 불은 곧 잦이들 것이다. *그것 역시 불의 속성이다. 순식간에 타오르고, 또 그만큼 빨리 꺼진다. 

그러므로 모든 소설가들의 *데뷔작은 *검은색이어야만 한다. 그건 어떤 *불이 타오르고 *남은 그을림의 흔적이니까. 

*예민한 작가라면 첫 작품을 다 쓰자마자 그 사실을 깨달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늦더라도 두 번째 책을 펴낼 즈음이면 누구라도 자신의 데뷔작이 검게 그을렸다는 사실을, 하지만 두 번째 책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할 것이다. 

- P6

이 지점에서 *시인과 소설가의 길은 갈라진다. 시인은 계속 불을 찾아 나설 것이다. 

*하지만 소설가에게는 이제 불이 아니라 **다른 것들이 필요하다. 다들 웃을지 모르겠으나, 예컨대 *건강이나 체력 같은 것이다. 

마라톤을 한다는 사실로 널리 알려진 무라카미 하루키가 **"긴 소설을 쓰는 것은 서바이벌 훈련과 비슷해요. **신체적인 강함이 *예술적인 감수성만큼이나 중요하거든요."
라고 말한다면 놀랄 사람이 많지 않겠지. 

그러나 다음과 같은 마르케스의 말을 들을 때도 과연 그릴까?
그 자신에게 *글쓰기란 *권투와 같다는 헤밍웨이의 글이 제게 큰 감명을 주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건강을 살 돌보았지요.

**훌륭한 작가가 되기 위해 작가는 *글을 쓰는 매 순간 절대적으로 *제 정신이어야하며 *건강해야 합니다. 
*글 쓰는 행위는 희생이며, *경제적 상황이나 감정적 상태가 *나쁘면 나쁠수록 *좋은 글을 쓸 수 있다는 낭만적인 개념의 글쓰기에 대해 강력하게 *반대합니다. 

*작가는 감정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이주 건강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문학작품 창작은 좋은 건강 상태를 필요로 한다고 생각하며, 미국의 ‘잃어버린 세대‘ 작가들은 이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 P6

*소설가는 불꽃이 다 타버리고 *재만 남은 뒤에도 뭔가를 쓰는 사람이다.

이때 그에게는 아무것도 없다. *다 타버렸으니까.

이제 그는 아무도 아닌 존재다. 소설을 쓸 때만 그는 소설가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한 권 이상의 책을 펴낸 소설가에게 *재능에 대해 묻는 것만큼 어리석은 질문은 없다. 그들에게 *재능은 이미 오래전에, 한 권의 책으로 *소진돼버렸으니까.

**재능은 데뷔할 때만 필요하다. 그다음에는 **체력이 필요할 뿐이다. - P7

레이먼드 카버가 "한 단편에 스무 가지나 서른 가지 다른 수정본이 있는 경우도 있어요. 열 개나 열두 개 이하인 경우는 없답니다"

그즈음, 나 역시 내 재능이 모두 타버리고 난 뒤의 그을음을 보고 있었다.

그들은 마치 매일 아침 작업장으로 나가는 시계기술자들 같았다. 늘 실패한다는 사실을 운명처럼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점만 다를 뿐. - P8

그제야 나는 내가 되고자 하는 소설가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됐다.

단 한 번의 불꽃, 뒤이은 그을음과 어둠, 그리고 평생에 걸친 글쓰기라는 헌신만이 나를 소설가로 만든다는 것을.
그게 바로 소설가의 운명이라는 것을.

언젠가 토머스 울프가 다음과 같이 썼다시피.

"나는 결국 내 스스로 지핀 불에 데었다는 것, 나 자신의 화염에 소진되었다는 것, 그리고 여러 해 동안 내 삶을 흡입한 맹렬하고 만족할 줄 모르는 욕망의 송곳니에 의해, 내 존재가 갈가리 찢겼다는 것을 알았다. 

말하자면, 빛의 세포 하나가 낮이건 밤이건 내 삶의 모든 깨어 있는 순간에, 또한 모든 잠자는 순간에, 뇌와 마음과 기억에서 언제나처럼 빛나리라는 것, 벌레가 내 몸을 먹으면서 자신의 빛을 유지하리라는 것, 어떤 오락, 어떤 음식과 음료도, 어떤 여행과 어떤 여자도 그 빛을 깨뜨릴 수 없으리라는 것, 그리고 죽음이 그 전적이고도 결정적인 어둠으로 내 삶을 덮을 때까지, 나는 결코 그 빛에서 해방될 수 없으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하여 마침내 나는 내가 작가가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자신의 삶을 작가의 삶으로 바꾼 사람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깨달았다." - P9

/ 1. 에코와의 인터뷰


에코:

 아주 이상한 시대였죠. 무솔리니는 카리스마가 넘쳤고, 당시 모든 학생들이 그랬듯이 저도 파시스트 청년운동에 가입했어요. 우리는 모두 군대식 제복을 입고 토요일이면 집회에 나갔습니다. 그렇게 하면서 행복했어요. 오늘날 미국 소년에게 해병대 옷을 입혀놓는것과 비슷할 거예요. 그 애는 아마 그게 재미있다고 생각하겠지요.

*어릴 때 우리들에게는 그 모든 파시스트 운동이 *자연스러웠어요. *마치 겨울의 눈이나 여름의 열기처럼요. 

**다른 식의 삶의 방식이 있다는 건 상상할 수가 없었죠. *어린 시절을 회고할 때 그런 것처럼, *사람들은 이 시기를 아주 부드러운 감정을 품고 기억합니다. 

심지어는 폭탄이 떨어지던 것. 그리고 방공호에서 보낸 밤들에 대해서도 그런감정을 느끼지요. 1943년에 파시즘이 몰락하면서 모든 것이 끝났답니다. 

*민주적인 신문을 통해 파시스트가 아닌 *다른 정당이나 관점이 존재한다는 걸 처음 알았어요. 

- P23

<장미의 이름> 후기에서
"*나는 모든 곳에서 중세 시기를 본다. 그 시기는 중세적이지만 중세적으로 *보이지 않는 *내 일상의 관심사에 *투명하게 덮여 있다."

중세에 살았더라면 그 시대에 대한 제 감정은 엄청나게 달랐을 거예요. - P29

보통 사람들에겐 중세가 신비하고 멀게만 느껴집니다. 중세에 끌리신 이유가뭔가요?

에코: 딱히 뭐라고 말하기 어렵네요. 어떤 사람을 왜 사랑하게 되는거죠? 

굳이 설명을 해야 한다면, 중세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완전히 반대이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을 거예요. 

제가 보기에 **중세는 암흑시대가 아닙니다. 
**아주 찬란하게 빛나는 시대였고, 그 시대의 *비옥한 토양에서 *르네상스가 출현했지요. 

**혼란스럽고 활기찬 변화의 시대였고, *근대 도시와 은행 체계, 대학, 언어, 국가, 문화를 갖춘 근대적 유럽이란 개념이 탄생한 시대였죠.
- P29

그래서 아직도 *키케로처럼 *역사는 삶의 스승이라고 생각합니다. - P30

*기호학이라는 연구 분야에 적대적인 사람들 중에는 기호학자들이 궁극적으로는 *모든 현실을 사라지게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지요.


에코: 소위 *‘해체주의자‘ 의 입장이 그렇지요. 
*그들은 모든 것이 텍스트라고 주장할 뿐 아니라 *모든 텍스트는 *무한히 해석 가능하다고주장하지요. 여기 이 테이블조차 텍스트에 불과하고요. 

그들은 또한 *사실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해석만이 존재한다고 주장한 *니체에게서 나온 아이디어를 따릅니다. 

반면에 저는 분명히 미국의 가장 위대한 철학자이며 기호학과 해석 이론의 아버지인 찰스 샌더스 퍼스를 따릅니다. 그는 *기호를 통해서 우리가 *사실을 해석한다고 말했지요. 

**사실이 없고 해석만이 존재한다면 *해석할 게 뭐가 있겠습니까? 제가 <해석의 한계>에서 주장한 점이 바로 이것이지요.
- P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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