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가위>


사랑과 고독에 시달리는 정처없는 주인공,
시간에 쫓기거나 가만히 있지 못하는 모습들,
패션잡지 화보처럼 왜곡된 형상이지만 그 아래의 우수를 포착한 장면들,
장르의 경계를 넘나들고 현실과 꿈의 경계가 모호한 특징,
이런 것이 왕가위의 영화이다. - P12

왕가위 영화 중에서도 <동사서독>1994 은 언제나 아웃사이더 같은 존재였다.

유명 스타가 잔뜩 나오는 무술 이야기 혹은 무협물로 마케팅된 이 영화는, *장르 영화가 *아방가르드 시네마에 가까이 갈 수 있는 최대치를 보여주었다.

로베르 브레송이 말한 **‘생각을 숨겨놓되 아무도 못 찾을 정도로 숨기면 안 된다‘는 우스꽝스러운 지침을 위반한 사례였다. - P40

이토록 많은 이야기가 얽힌 영화는 본격 서사시는 고사하고 전형적인 무협물이라고 할 수 없는 상태였다. 영화의 비범한 외양부터 그 점은 명백하다.

반은 환각 같고 반은 중국 회화 같은 크리스토퍼 도일의 숨막히게 아름다운 거친 사막 영상, 고대 농민을 테마로 한 이세이 미야케의 패션 컬렉션 같은 장숙평의 강렬한 의상, 인물의 얼굴을 자주 가려서 누가 누군지 구별하기 힘든 길게 늘어뜨린 머리칼까지 모두 범상치 않았다. - P41

액션을 위한 액션은 따분하게 생각했던 왕가위는 대결 장면을 *시와 감정으로 채우는 방법을 모색했다.

이는 거의 장님이 다 된 검객이 도적떼와 벌이는 자살에 가까운 싸움 장면에서 명백하게 드러난다.

이 장면에 쓰인 느린 이미지들을 보다 보면 남자의 검과 그의 영혼 모두가 갈수록 무거워지는 게 느껴진다. - P43

왕가위의 작품이 갖는 역설 중 하나가 *관능적이면서 *추상적이란 사실이다.

무술영화는 고사하고 영화 전체를 통틀어서도 동사서독을 볼 때처럼 놀라는 경우는 별로 없다.

육체적인 끌림에도 불구하고 등장인물들 역시 모두 갇힌 상태이다. 이것은 단순히 그들의 집착 때문에 그렇게 된 게 아니다.

영화 속 불경 인용구들이 말해주듯 그들은 인간 현실의 필수 속성, 즉 *시간과 공간의 움직임에 붙잡혀버린 것이다.

무술 이야기는 거의 영웅의 승리에 관한 내용이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승리하는 것은 *황무지, 즉 구양봉을 비롯한 다른 인물들이 있기 전부터 존재해왔고 앞으로도 영겁만큼 더 오래 존재한, 저 혼을 빼놓는 땅이다. - P44

**‘무협소설‘이란 용어는 약 백 년 전에 처음 나왔어요. 그로부터 얼마 안 가 *첫 번째 국공내전 시기에 인기 절정을 맞았죠.

당시는 **혼란스러운 시대여서 사람들은 **영웅 이야기를 읽고 싶어 했어요.

이 인기가 *1950년대에 다시 한 번 부활하는데, *이민자들이 *홍콩으로 밀려들던 시기였습니다. 이 이민자들 중 하나가 김용으로 조상들 중에 청나라 왕조와 연결되는 인물이 있던, 저장 지방의 명망 높은 가문 출신이었습니다. - P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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