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이스라엘과 예수에 대한 관념


오늘날 우리가 아는 유대교는 기원후 200년 무렵에 이르러서야 골격을 갖추었다.

가장 중요한 변화는, 나라도 없고 정치 지도자나 종교 지도자도 없었던 탓에 유대인들이 **정체성을 보존하고 신과의 특별한 *관계를 유지하려면 다른 방식을 찾아야 했다는 점이다.

답은 그들의 **문헌이었다. - P228

기원전 3~5세기에 그리스에서는 철학, 비판적 사유, 비극, 역사 서술 등이 발단하면서 점차 종교 신앙으로부터 멀어지는 추세가 나타났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반대였다. 사람들은 글을 깨우치고 책에 흥미를 느낄수록 오히려 종교에 더욱 밀착되었다.

- P231

원래 카논이라는 말은 수메르어로 **‘갈대‘를 뜻했다. 즉 곧고 똑바른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나일 강이 규칙적으로 범람해 농토를 침수시키는 탓에 토지의 경계가 자주 달라지는 이집트에서는 특히 카논이 중요했다. 따라서 정확한 기록이 필요했고, 이것이 규준의 일차적인 의미였다.

또한 국가 기록을 책임진 장관이 사법도 담당했다. 그래서 카논이라는 말은 점차 전통적인 **불변의 기준을 뜻하게 되었고 문헌에서는 정전이라는 말로 사용되었다.

*그리스에서도 카논은 곧은 *막대 혹은 자를 뜻했으며, 여기서 의미가 확장되어 추상적인 기준(척도)을 가리켰고 더 나아가 시나 음악을 지을 때 따라야 하는 **규칙을 나타내게 되었다.

중요한 저작은 이 전통적 규칙을 존중해야 한다. 그래서 고전 그리스에서 카논은 개별 저작이나 총 저작집을 가리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 P230

외전의 문헌들로는 집회서, 유디트, 마카베오 상하권, 토비트, 솔로몬의 지혜 등의 있다.

예루살렘에서는 신의 영감을 받은 문헌으로 간주되지 못했으나 일종의 2류 권위가 인정되었다. 알렉산드리아에서는 정전으로 인정되었으나 중요성은 떨어졌다. - P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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