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이해하는 현대사상>


/ 가다머 - 철학적 해석학

프랜시스 베이컨은 선입견을 ‘우상‘이라 부르고, 정확한 지식의 습득을 방해하는 것으로 설명했다. 즉 선입견이란 버려야 할 편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선입견은 편견이다‘라고 생각하는 것도 일종의 *‘편견은 아닐까. 왜냐하면, 우리는 **선입견이 전무한 상태에서는 그 무엇도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사랑‘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즉 선입견이 없는) 상태에서 ‘닥터 지바고‘를 읽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 P36

딜타이가 시작하고, 하이데거가 심화시킨 **‘철학적 해석학‘은 상식을 거슬러서 *선입견을 우리의 이해와 인식의 기초로 설정하는 학문이다.

그리고 하이데거에거 깊은 영향을 받은 *가다머는 *선입견을 판단에 앞서는 의식, *무의식적인 전제, 즉 **‘선판단‘으로 받아들였다.

선입견에 의해 이루어진 이해 내용이 인간의 인식, 이해작용의 근본적인 ‘지평‘을 형성한다는 것이다. 물론 오해를 초래하는 선입견(편견)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진리의 이해에 기초가 되는 정당한 선입견까지 던져버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가다머는 베이컨 등의 게몽주의자들이 *정당한 선입견까지 포함한 모든 선입견을 부정하고 배제해야 한다는 오해(선입견)에 빠졌다고 비판했다 - P37

그렇다면 이해의 지평이 되는 정당한 선입견은 어떤 특성을 갖고 있을까. 우선, 가다머는 *지평이 결코 고정된 것은 아니며, *역사적으로 변화하는 것임을 강조했다.

예를 들면, 21세기의 우리는 단테의 신곡을 읽어도 주인공들의 *행동기준과 *감정의 리얼리티를 느낄 수 없다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것은 **대상을 보는 현재의 방식(지평)이 단테의 시대와는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지평은 이처럼 변화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변화 그 자체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과거의 지평과의 *대화를 통해서 현재의 지평, 즉 *현재의 우리가 대상을 보는 방식의 *일면성을 인식하고 이런 일면성을 **수정해가는 태도이다.

즉 두 가지 지평을 *통합하는 것이다. 이것을 가다머는 **‘지평융합‘이라고 불렀다. 현재의 지평과 과거의 지평은 서로 통합되면서 역동적으로 움직인다. 지평은 과거에 대해서도 현재에 대해서도 열려 있다.

- P37

지평의 개방성을 결국 두 가지로 귀결된다.

하나는 *현재의 지평과의 관계 속에서 과거가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의 귀결점은 현재의 지평이 계속해서 융합되어온 지평의, 단지 현시점에서의 최종 국면에 지나지 않는다는 인식이다. 현재의 지평은 무로부터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역사적인 영향의 작용을 받아 성립된 것이다.

현재는 과거에 영향을 주고 그렇게 해서 받아들인 과거가 현재에 작용한다. 영향과 작용이 순환하는 역사를 가다머는 ‘영향과 작용의 역사‘로 불렀다.

우리의 행위 전체는, 과학으로부터 예술에 이르기까지 이런 역동적인 영향과 작용의 역사적 과정 속에 있다. 이런 해석학적 순환에 대한 자각을 ‘영향과 작용의 역사적 의식‘이라 부른다. 이런 자각하에서 우리의 진리 탐구와 실천이 가능해진다. - P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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