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복지국가의 기원과 궤적 2>


1. 자본주의 황금시대의 시작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자본주의의 전망은 매우 어두웠다. 사실 1946년의 상황은 1차 세계대전 직후보다 더 나빴던 것처럼 보였다. 

물론 상황은 국가마다 상이했다. 1946년의 미국과 영국의 산업생산은 1938년에 비해 각각 56%,
6% 증가했지만,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각각 16%, 39% 감소했고, 독일과 일본은71%, 69%나 감소했다. 

생산을 위한 연료, 수송, 식량의 병목현상도 심각했다.
병목현상을 제거하지 못한다면 자본주의는 파국을 맞이할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거짓말처럼 기적이 일어났다. 

**전후에 어려웠던 첫 두 해를 지나자 자본주의는 역사상 유례없는 성장기로 접어들었다. 1949년에 이르면 서구 자본주의는 전전(戰前) 수준으로 완벽하게 회복했다. 독일과 일본이 조금 더디기는 했지만,
1950년대 초가 되면 독일과 일본의 산업생산도 전전 수준을 회복했다. - P23

영국 보수당 내각의 해럴드 맥밀런 수상은 1959년의 선거에서 **"지금처럼 좋은 시절은 결코 없었다."라는 슬로건으로 선거에서 이길 정도였다.

*황금기에는 모든 것이 좋아 보였다. **생산성이 높아지고 노동자의 실질임금과 자본이 이윤으로 가져가는 몫도 상승했다.

생산성의 회복보다 실질임금의 회복 수준이 낮았다는 것은 그만큼 이윤에 대한 자본의 몫이 증가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 P25


자본주의 체제를 위협했던 주기적 파국은 사라진 것 같았다.

**호황과 불황을 반복하는 자본주의의 주기는 **케인스주의에 의한 거시경제의 관리 덕분에 사소한 *파동으로 바뀌었다.

 1960년대가 되면 서유럽과 일본에서 실업은 거의 사라지고 *완전고용이 달성된 듯 보였다. 

영국 노동당의 수정주의 사상을 대표하는 앤서니 크로스랜드(Anthony Crosland)는 자신의 저서 『사회주의의미래 (The future of socialism)』에서 전통적으로 **사회주의자들이 자본주의의 핵심 문제로 지적했던 **빈곤, 대량실업, 더러움, 불안정, 자본주의 체제의 붕괴 가능성은 사라졌다고 평가했다. 

가벼운 국내외적인 경제위기가 발생하지만 완전고,
용과 경제의 안정을 위협하지는 못했다. 황금기의 정점이었던 1972년 7월부터1973년 6월까지 12개월 동안 OECD 국가의 실질 GDP는 7.2%나 성장했고 실질공업생산은 무려 10%나 증가했다. 

**하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할 사실은 한국, 대만과 같은 일부 신흥산업국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제3세계와 산업화된 국가 간의상대적 격차가 더 벌어졌다는 점이다. 

실제로 〈표 8.3)에서 보았던 것과 같이 산업화된 국가들의 연평균 성장률이 4.0%에 이르는 동안 개발도상국가의 평균 성장률은 1.7%에 그쳤다. 

로버트 하일브로너(Robert Heilbroner)와 윌리엄 밀버그(William Millberg)의 지적처럼, "몇 가지 단독 성공사례를 빼고는 저개발 세계전체라는 엄청난 크기의 덩어리가 도무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구 자본주의의 황금기는 제3세계의 저발전의 발전이라는 어두운 그림자를 남겼고 **그 그림자는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이렇게 보면 1950~1973년의 시기를 모두의 ‘황금기‘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어쩌면 우리는 선택받은소수의 산업화된 국가들과 극소수 신흥산업국가의 황금기를 이야기하고 있을 뿐인지도 모른다.
- P26

하일브로너와 밀버그는 『자본주의』에서 1950년대 이후에 사반세기에 걸쳐 자본주의의 황금시대가 도래한 이유를 다양한 측면에서 설명한다. 

먼저 전후 미국의 주도로 형성된 *새로운 국제관계에 주목했다. 미국과 서구 자본주의 국가들은 1차 세계대전 이후에 **보호주의로 치닫던 세계 경제가 대공황과 2차 세계대전의 원인이 되었다고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보호무역을 제한하고 새롭게 국제 경제 질서를 수립할 필요가 있었다. 

1944년 7월에 미국 뉴햄프셔주 브레튼우즈 마운트워싱턴 호텔에서 44개국 700여 명의 대표들이 참석한 일명 브레튼우즈 협약은 그 시발점이었다. 

**브레튼우즈체제는 이전의 국제금융시스템의 핵심이었던 *개별국가의 통화를 직접 금에 연동시키는 방식을 폐기했다. 대신 새로운 국제금융시스템은 **미국 달러만을 금에 연동시키는 방식(금 10z=USD 3534 으로이전의 금본위제에 기초한 **고정환율제를 제도화했다. 

미국 이외의 화폐를 금이 아닌 미국 달러와 (보조적으로) 영국 파운드에 **연동시킴으로써 **유연한 고정환율제를 구축한 것이다. 

하지만 유연한 고정환율제라고 하더라도 **무역적자가 발생했을 때 개별 국가가 **자국의 통화 가치를 변동시켜 세계 경제를 교란시킬 우려가있었다. 

이 때문에 브레튼우즈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개별 국가의 *국제수지가 악화될 경우 해당 국가가 (고정환율제를 유지하는 대신) **국제수지 적자에 대응해 사용할 수 있는 *긴급준비금을 조성하고 이를 관리할 **국제기구(국제통화기금,
International Monetary Fund, IMF)가 필요했다. 

더불어 브레튼우즈체제는 회원국들이 **대규모 공공사업을 진행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세계은행(World Bank), 즉 국가개발부흥은행 IBRD을 설립했다.
- P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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