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김부식의 삼국사기

삼국사기는 우리나라에 현전하는 가장 오래된 역사서다. 고대사를 다룬 단순한 사료집이 아니라 한국 고대사를 설명한 최초의 역사서다.

이는 단순한 사료집이 아니라 김부식이 뚜렷한 역사관을 가지고 기술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 P19

우리나라 학사, 대부들이 중국의 오경/제자의 책과 중국의 역사서에 대하여는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으나 우리나라 역사에 대하여는 망연무지하다. - P20

당시 고려의 지식인들은 이러한 국제질서의 변화를 **감정적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그것을 좀처럼 **현실적인 일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게다가 금나라의 요구를 받아들일 경우, 대단한 *모욕감을 느껴야 했다. - P22

송나라 사마광이 편찬한 <자치통감>은 <삼국사기>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그는 **역사란 단순한 과거 자료의 편찬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에 **정치적 교훈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역사관을 얻었던 것이다. - P24

김부식은 삼국을 각각 **‘아국‘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어 삼국 모두를 고려의 전신으로 인식했음을 알 수 있다.

오늘날 중국은 고구려의 역사를 중국 역사의 일부로 주장하고 있다. 고구려 강역 태반을 중국이 차지하고 있는 현실에서,

만약 고구려를 본기로 다룬 <삼국사기>가 없었더라면 고구려 역사가 현재 한국사라는 주장을 할 수 있는 근거가 없게 되었을 것이다. - P30

신라에서 성을 사용한 것은 진평왕 때부터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비해 고구려와 백제에서는 초기부터 성을 사용하였다. 고구려와 백제의 성명은 네 글자로 된 것이 많다. - P31

김부식을 사대주의자라고 하는데 그 점을 어떻게 해석하여야 할까?

당시는 유교가 중국만의 학문이 아니라 어느 나라에서도 실천하여야 할 학문이라고 본 **보편주의 사상이 유행하였고, 불교도 이점에서도 마찬가지다. 사대정책이 국가를 지키는 수단이라고 본 것은 아닐까?

시대사상을 제대로 이해한 후에야 옳게 비판할 수 있을 것이다. - P36

3. 조선왕조실록


사관은 직필을 생명으로 여겼다.

목이 달아나도 사필은 굽힐 수 없는 것이라는 인식이 정착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관이 되는 사람은 젊고, 기개가 높은 사람이면서 재/학/식의 3장지재를 갖춘 사람이어야 했다.

특히 문과에 급제해야 하고, 가문도 훌륭해야 했다. 세파에 찌들지 않은 젊은 사람으로서 기개가 있고 문장력이 뛰어나며 명문자로서의 자존심을 갖추고 있어야 직필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믿었기 때문이다. - P62

실록은 1차 자료가 아니고 국가에서 편찬한 것이기 때문에 **집권자들의 주장이 반영된 것이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실록을 읽을 때는 **행간을 읽을 줄 알야야 한다.
- P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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