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하는 말을 듣기만 할 때에는 퍽 근사하게 들리지만, 질문을 해 보면 그는 아무것도 아님이 드러나는 것이었다. 

그는 *장광설에서는 대가였고 *지성에서는 한심하였으며 *이성에서는 빈껍데기였다. 

**그라는 나무는 멀리서 보면 잎이 무성하여 눈길을 끌지만 가까이서 자세히 들여다보면 열매라고는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 진상을 알게 된 나는 더 이상 그의 학교에서시간을 낭비하지 않았다." (안셀무스에 대한 아벨라르의 평가)
- P160

아벨라르에게는 *자신의 내면의 소리를 듣는 것, 그리고 *자기 의지가 중요한 문제였다.

**이 시대 주류의 사고는 **"이해하기 위해서 믿는다."였다. 그러나 그는 이것을 뒤집고 "믿기 위해 이해한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무슨 의미일까? ‘이해하기 위해서 믿는 것‘은 먼저 믿음부터 가져야 하고 그 근거 위에서 다른 것들을 이해한다.

그러나 아벨라르의 ‘믿기 위해 이해한다‘는 태도는, **먼저 사물을 따져 보아야 하고 그것이 확실하게 이해가 되면 그 다음에 그것을 믿는 것이다. - P164

아벨라르는 ‘자신의 혀를 통한 봉사‘를 소명으로 삼았다. 말하자면 이 시기에 **‘지식인이출현한 것이다. - P165

이를 정리하면, 적어도 **12세기 즈음에는 **개인의 자아가 뚜렷한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이 남긴 자료가 그 시대의 특이한 요구에 맞춰져 있기 때문에 (자서전이 아직 완전한 의미의 자서전이 아니었다) 명백하게 읽히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말이다.
- P165


그렇다면 왜 꼭 12세기인가? 그 이전 시기에 자아의식이 존재했다고 볼 수는 없단 말인가?

조각가, 건축가, 채식사본(책면을 정교한 그림과 글자로 장식하는 것) 제작자 등 자신의 작품을 만드는 사람들이 대표적이다. 가장 뚜렷한 증거는 서명을 남긴다든지 작품 속에 자기 모습을 어떤 형태로든남기는 일이다. 

우리는 흔히 **미켈란젤로에 와서야 *작품에 자기 이름을 남긴다고 말해 왔고, 이것을 **르네상스 시대 개인의 자각의 중요한 근거로 이야기하곤 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우리는 **8세기에 자기가 만든 성당 제단에다가 Vuolvinus magister phaber(부올비누스가 지휘한 작품)‘
라고 당당하게 서명을 한 사례도 알고 있고,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에 작가 자신의 모습을 만들어 넣은 사례도 알고 있다.

**야콥 부르크하르트나 카를 람프레히트 등의 학자들이 정립한 *근대의 면모, 곧 근대에 와서야 인간 개인성‘에 대한 관심이 처음 등장했으며 그 이전에는 전형성‘에만 초점이 모아졌을 뿐 *개인성은 경멸되었다는 주장은*수정되어야 한다.  - P166

개인에 대한 자각은 12세기에는 분명히 존재했고, 비록증거가 그리 풍부하지는 않지만 그 이전 시기에도 존재했으리라고 추론할수 있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큰 특징인 **개성과 자아의식 같은 것들이, **비록 다른 형식을 띠고 있다 하더라도, 우리가 중세라고 부르는 시대에 엄연히 존재했음을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 P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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