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코메티와 직립의 철학
산 자나 죽은 자나 그들의 모습은 자코메티의 작품들처럼 살이 뼈에 말라붙어 있는 앙상한 미라와 다를 게 없었다.
"나는 한 번도 누워 있는 사람이나 수평의 인간을 조각한 적이 없는데, 수평의 인간은 곧 죽음을 뜻하기 때문이다. 수평의 인간은 잠이요, 의지의 상실이요, 굴복이요, 백치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아무리 빈약한 모습을 지녔더라도 서 있을 수 있는 한 희망을 가질 수 있다. 이것이 수직성에 대한 나의 철학이고 미학이다."
이처럼 그에게는 직립이 곧 실존이다. 직립이 실존의 단서이고 조건이다. 인간은 누구라도 <여기에 지금> 현존재로 직립함으로써 비로서 주체적 자아가 된다고 생각했다. 그는 자신이 갈구하는 <희망의 철학>을 직립으로 상징하고자 했던 것이다.
"내 조각에서 인물들의 육신이 빈약한 것은 현대인들이 정신적, 육체적으로 빈약하고 궁핍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것들이 미켈란젤로나 로댕의 조각 속의 인물만큼 위대하지 못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나는 <직립한 인간>을 만들기 때문이다.
(...) 나는 인간이 서 있다는 것, 수직성의 존재라는 것, 눕거나 비스듬히 기대지 않고 하늘을 향해 수직의 자세를 취한다는 것에 의미를 부여했다. 나는 인간이 수직일 때 신에 못지 않은 위대함과 아름다움을 가진다고 생각한다"
그의 철학이자 미학의 근거가 된 인간의 직립과 수직성은 존재론적이기보다 실존론적이었다. - P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