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지혜의 도시


*‘성명학‘은 바빌론에서 중요했다. 이곳에서는 사유가 현대 세계에서 사용하는 귀납법이나 연역법보다 주로 *유추의 형식을 취했다. 바빌로니아와 이집트에서는 **사물이나 사람의 **이름에 그 **본성이 들어 있다고 믿었다. *좋은 이름은 *좋은 사람을 만든다는 사고다.

처음에는 *문법이라는 게 없었다. 단어들-주로 *명사이고 동사가 약간 있었다-을 늘어놓은 순서에는 특별한 원칙이 없었다.

우리가 아는 *쓰기와 *읽기는 *메소포타미아 남부의 슈루파크에서 발달했다. 그 언어는 **수메르어였다. 수메르인이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는 알 수 없다.

현재 *셈어에서는 *히브리어와 *아랍어가 가장 유명하지만 기원전 1000년대에는 *가나안어가 널리 사용되었다(*가나안어에서 페니키아어와 히브리어가 나왔다). 셈어가 *알파벳 문자에 적절한 이유는 대다수 명사와 동사들이 세 개의 자음으로 구성된다는 점에 있었다.

현전하는 최초의 알파벳은 지중해 북동부, 시리아와 소아시아 사시에 위치한 알렉산드레타 부근의 라스샴라(깔때기 머리)를 발굴할 때 발견되었다.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에서는 글을 아는 사람이 큰 존경을 받았다. 우르에서 필경사를 양성한 것은 적어도 *기원잔 2000년대 중반이다. 필경사는 문서에 서명할 때 자기 조상들의 이름과 직함도 써 넣었다. 글은 필경사와 행정관만이 배울 수 있었다. 필경사라는 단어는 교양인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133-9쪽

바빌론에서 창조된 가장 위대한 문학, 세계 최초의 문학적 걸작은 길가메시 서사시다. 그는 "세상의 끝에서 만물을 본 자"였ㄷ. 길가메시가 기원전 2900년경 우르크를 지배한 왕이고 서사시의 사건들이 사실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것은 거의 확실하다.

그는 3분의2 가 신이고 3분의 1이 인간이다. 첫 부분에서 길가메시는 우르크 사람들의 저항을 물리치고, 도시의 성벽을 세우는 ‘기적의 업적‘을 올린다. 이 성벽은 길이 9.5킬로미터이며, 그 안에는 900여 개의 반원형 망루가 있었다고 한다. 이 대목은 사실인 듯하다.

발굴 결과 초기 왕조 시대(기원전 2900년경)에 새로 개발된 굽은 벽돌을 이용해 반원형 구조물을 쌓았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길가메시는 가혹한 군주였으므로 신민들은 신들에게 반대자를 보내 길가메시를 물리치고 시민들이 평온하게 살 수 있도록 해달라고 호소했다.

서사시의 앞부분은 그런대로 건설적이지만 뒤로 가면서 점점 분위기가 어두워진다.


(...) 메소포타미아에 최초의 도서관이 건립되었다고는 하지만 실은 도서관이라기보다 서고에 가까웠다.

초기 도시에는 두 가지 유형의 권력자가 있었다. 첫째는 *엔이라고 부르는 사제장이다. 그는 *법인체 혹은 자치체를 운영하며 신들과의 *중재를 통해 모두에게 *식량/소득을 주기에 충분한 *토지 산출력을 지속적으로 보장한다. 또한 엔은 시민들에게 *소득을 재분배하고 *대외 통상을 담당한다.

둘째 권력자는 *루갈이다. 말 그대로는 ‘위대한 인물‘이라는 뜻이며, 감독관, 요새 사령관으로 군사문제와 외교를 담당한다.

(...) 이제는 *세속적 권력과 *종교적 권력의 더 큰 구분이 생겨났고 남성성이 더욱 강조되었다. 이런 변화를 유발한 것은 **전쟁인데, 전쟁에서 *인구가 증대하자 각 도시들 간에 더 많은 땅과 물을 확보하려는 경쟁이 심화되었다.

둘째, 기술자의 수가 늘어남으로써 도시가 번영하고 물질적 부가 쌓이자 다른 도시를 약탈하려는 욕구가 생겼다. 평화 시기와 달리 전쟁 시기에는 전사가 중심이 되며, 유능한 루갈의 카리스마와 성공은 시민들에게 강력한 영향을 준다.

이리하여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제법 그럴듯한 왕권의 관념이 성장했고, 그와 더불어 국가의 관념도 발달했다. 루갈은 왕이 되어 여러 도시와 도시들 사이의 영토를 다스렸다.

고대 중동에서 한 지역을 초월한 최초의 정치적 실체는 **아카드 국가였다. 이 국가를 세운 *사르곤(기원전 2340~2284년)은 지금 우리가 말하는 의미와 같은 최초의 왕이었다.


140-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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