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락의 에티카>
/ 시는 섹스를 한다.
인간은 태어남의 순간으로 되돌아갈 수 없고
죽음의 순간으로 미리 달려갈 수 없다.
오로지 섹스만이 인간의 소관이다.
***섹스는, 키냐르식으로 말해 **태어남의 복습이고("자신을 만들어낸 행위를 떠올리지 않는 것이라면 어떤 이미지도 우리에게 충격을 주지 못한다"), *바타유 식으로 말해 **죽음의 예습이다("죽음은 현혹적이다. 그런데 에로티즘을 지배하는 것 역시 다름 아닌 그러한 현혹이다")
**인간의 내부에는 자신이 인지하지 못하는 **심연이 있다. 그곳은 무섭도록 내밀하고 끔찍하게 격렬할 것이다. **나에게는 타자의 심연이, **타자에게는 나의 심연이 그러할 것이다. 그 *내밀함과 *격렬함이 *가시화될 때, 섹스는 우리가 **견딜 수 없는 어떤 것이 되어버린다.
**진실은 늘 고통과 더불어 오고, 고통을 피하기 위해서는 진실을 외면해야 한다. 그래서 타자의 심연을 알고 있지만 모른 척할 때, 섹스는 ‘**상대방을 이용한 자위‘(지젝)에 불과한 것이 된다. **두 눈을 가린 채 키스를 하는 르네 마그리트의 <인인들>의 섹스가 그러할 것이다.
혹은 타자의 심연이 가시화되는 순간 이를 서둘러 덮을 때, 섹스는 섹스에 대해 고민하지 않기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어떤 것이 된다. 가시화된 각자의 심연에 잡아먹히려는 찰나, 영화 <아이즈 와이드 셧>의 부부들은 말한다. "집에 가서 섹스나 하자."
그래서 **섹스에 대해 잘 말하는 일은 어렵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일이기 때문이다. 섹스는 결합인데, 결합은 불가능하고, 불가능을 반복하는 일은 고통이기 때문에, 불가능을 은폐하기 위해 섹스를 한다. 섹스의 불가능성을 은폐하기 위해 섹스를 한다는 악순환.
***많은 텍스트들이 자신의 눈을 가리고 독자의 눈을 가리면서 키스한다. 많은 텍스트들이 "집에 가서 섹스나 하자"고 말한다. 섹스를 하지 않기 위해서 섹스를 하고, 섹스를 말하지 않기 위해서만 섹스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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