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읽는 사상가들>
/ 노암 촘스키 1928-
사회학에서 마르크스가 또 인류학에서 레비스트로스가 차지하는 위치를 촘스키는 언어학에서 차지하고 있다.(기 소르망). 여기에 촘스키는 생존 인물 가운데 가장 많이 인용되는 학자이고,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을 통틀어서도 **여덟 번째로 많이 인용된다.
(...) 촘스키의 표현을 빌면 ‘플라톤의 문제‘가 아니라 ‘오웰의 문제‘에 대한 해명이 조명을 받는 것이다. 『언어지식 - 그 본질, 근원 및 사용(이하 『언어지식』 아르케, 2000)에서 촘스키는이 두 문제를 이렇게 설명한다.
"*플라톤의 문제는 우리에게 주어진 자료가 아주 적은데도 어떻게 해서 우리가 그렇게 많이 알 수 있는가를 설명하는 것이며, *오웰의 문제는 주어진 자료가 많은데도 왜 우리가 그렇게 조금밖에 이해하지 못하는가를 설명하는 것이다."
곧 플라톤의 문제는 촘스키 언어연구와 맞닿아 있고, 오웰의 문제는 그의 활발한 정치활동의 배경을 이룬다.
56-7쪽
<롤랑 바르트 1915-1980>
신화를 하나의 파롤 parole로 보는 바르트는 "신화가 하나의 의사소통 체계, 곧 하나의 메시지"라고 단언한다.
(...) "프로레슬링은 스포츠가 아니라 구경거리이다." 프로레슬러들이 재현하는 고통을 구경하는 것은 **비극의 주인공들의 연기를 감상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므로 천하지 않다는 것이다.
프로레슬링은 ‘짜고 치는 고스톱‘과 같다는 불만에 대해 명쾌한 해명을 시도한다. "관중은 그 경기가 조작되는 것인지 아닌지는 전혀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은 옳은 것이다. 관중은 모든 동기와 모든 결과를 제거해 버리는 첫 번째 효과에 빠져든다. 즉 관중들에게 중요한 것은 그들이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보는 것이다." 또 프로레슬러의 외모와 동작은 하나의 **기호로 설정된다고 지적한다.
**"작가는 언어를 어떻게 조합할 것인가를 선택합니다. 그는 **인용 부호를 지운 숱한 인용문들을 조합하죠."
**"나는 왜 지적인 것이 민중적인 것과 분리되어야 하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147-8쪽
<르네 지라르, 1923- >
"**인간은 자기 스스로를 통해 욕망을 가질 수 없다. 욕망의 대상은 제삼자에 의해 제시되어야 한다."
**욕망의 주체, 중개자, 욕망의 대상으로 이뤄진 이른바 **‘욕망의 삼각형 모델‘은 숱한 문학 논문의 전거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현대 자본주의의 여러 현상을 설명하는 데도 요긴한 분석틀이다.
김치수 교수는 "지라르의 <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실>은 오늘날 우리의 욕망의 체계를 소설 주인공의 욕망의 체계에서 발견하여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특성을 제시한 명저"라고 평가했다.
지라르에 의하면, 태초에는 희생제의가 있었다. 그는『폭력과 성스러움』(민음사, 1993)에다 자신의 희생제의 가설을 아주 촘촘하게 짜놓았다.
**희생제의는 폭력의 예방수단이다. 본질상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인 복수를 낳기 마련, 고대 그리스에서는 *복수와 정의가 같은 어휘였다는 점을 상기하자. 그러므로 **사회를 지탱하려면 폭력의 순환을 용납해서는 안 된다.
**희생제의는 인류가 연쇄적 복수를 피하기 위해 고안한 첫 번째 장치로 **예방조치에 속한다. 두 번째가 타협 이나 결투재판 같은 *복수의 규제와 정리이고, 세 번째는 **현대의 재판제도다.
**희생제의의 기능은 폭력을 *순화시키는 것이다. 곧, 폭력을 속여서 복수 받을 위험이 없는 희생물에게 가하는 것이다. 이때 희생물은 **성스러운 존재로 부각되기도 한다. 따라서 지라르는 "**성스러움의 진짜 핵심과 감추어진 본체를 이루고 있는 것은 폭력"이라고 언명한다.
162-3쪽
<리영희 1929-2010>
"난 박정희 정권 말기와 특히 1980년의 전두환 집단의 광주 대학살이 있었던 그 시기에는 수사학적으로 하는 얘기가 아니라, **생리적으로 숨을 쉴 수가 없고 질실할 것만 같았어. 그리고 심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는 **오늘보다 더 암담해질 내일을 견디어야 할 *절망적 상태를 생각하면서, 스스로 삶을 마감해야 하는가 하는 그런 중압감에 시달렸어요." (대화)
또한 민주정치에서 **진실과 비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진실이 알려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회체제나 정부는 반드시 **비판에 견딜 수 없는 체제와 정부이다. **그리기에 비판을 봉쇄한다. **비판이 허용되지 않는 사회는 개선과 향상이 없고 그 결과는 더한층의 타락이며, 타락한 제도를 유지하려는 지배세력은 탄압에 호소하는 악순환 속에 침체할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 자체가 적극적 개념‘이며 창조적 상상력이다. 반공주의란 부정否定개념이며 그것 자체로서 소모적이며 파괴적 이데올로기라는 것이다."
"시민이 그 이웃을 적이나 간첩이라는 생각으로 살피도록 명령될 때그 사회는 벌써 분해의 과정을 걷고 있다." 우리 사회도그렇게 여러 갈래로 갈기갈기 찢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나의 글을 쓰는 유일한 목적은 진실을 추구하는 오직 그것에서 시작되고 그것에서 그친다. ***진실은 한 사람의 소유물일 수 없고 **이웃과 나눠져야 할 **생명인 까닭에 그것을 알리기 위해서는 글을 써야 했다. 그것은 ***우상에 도전하는 이성의 행위이다.
그것은 언제나, 어디서나 **고통을 무릅써야 했다. **지금까지도 그렇고 영원히 그러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괴로움 없이 인간의 해방과 발전, 사회의 **진보는 있을 수 없다.
"‘우‘의 극단에 서면 우주의 모든 것이 ‘좌‘로 보이게 마련이다. 조금 거리가 멀면 모든 것이 ‘극좌‘로 보일 수밖에 없다. ‘좌‘도 그 극에 서서 보면 모든 것이 ‘우‘로 보일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극‘의 병리학이다
생활신조 ‘Simple Life, High Thinking‘
영국 속담에 ‘소음을 참을 수 있는 능력은 그 사람의 지적(정신적) 수준과 반비례한다‘는 뜻이지요. 소리와 몸짓의 광란, 이런 것은 교양/이성/지성 측면의 결핍을 뜻한다는 말이오.
164-9쪽
<마더 테라사, 1910-1997>
마더 테라사의 기도문 <나를 해방시켜 주소서>
존경받으려는 욕망으로부터 사랑받으려는 욕망으로부터 칭찬받으려는 욕망으로부터 명예로워지려는 욕망으로부터 찬양받으려는 욕망으로부터 선택받으려는 욕망으로부터 조언을 받으려는 욕망으로부터 인정받으려는 욕망으로부터 인기를 끌려는 욕망으로부터 모멸 받는 두려움으로부터 경멸받는 두려움으로부터 질책당하는 고통의 두려움으로부터 비방당하는 두려움으로부터 잊히는 두려움으로부터 오류를 범하는 두려움으로부터 우스꽝스러워지는 두려움으로부터 의심받는 두려움으로부터 나를 해방시켜 주소서.
(이하 생략)
침묵의 열매는 믿음입니다. 믿음의 열매는 기도입니다. 기도의 열매는 사랑입니다. 사랑의 열매는 봉사입니다. 그리고 봉사의 열매는 침묵입니다.
188-9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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