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와 편견을 넘어서> / 새로운 이념의 지평을 찾아서
후기 산업사회의 혼돈 속에서, 지구촌이 **새로운 이념을 갈망하고 있다. 마치 지금 우리가 *당면한 문제들이 *과거에는 전혀 없었던 것처럼, *현상에 대한 이해에서부터 *미래에 대한 전망까지 모두 **새롭게 조명할 수 있는 **판단기준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찾고자 하는 것이 *전혀 새로운 것들인지, 그리고 *우리가 원하는것이 전혀 새로운 것인지를 속단하기는 아직 이르다.
기대하고 계획했던 일이 우연적인 사건으로 인해 실패할 때 느끼는 감정처럼, **완전히 새로운 것은 *설렘보다는 *불안으로 다가와 *삶의 기쁨을 제공하는 *새로운 가치가 되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아울러 당면한 문제의 새로움이 던져주는 *두려움에 더해 *검증되지 않은 새로운 가치가 만들어낼 *불확정적인 미래까지 기대할 정도로 *모험심이 강한 사람들이 그리 많을 것 같지도 않다. 비록 *무정형의 우연적 결합에 창조적 희열을 느끼는 사람도 있겠지만, 예측이 불가능한 삶의 지속을 행복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열정을 모두에게 기대하기란 참으로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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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움이 던져주는 두려움과 기대의 *길항은 새로운 이념적 지평을 제시하는 사람들이 당면하는 첫 번째 어려움이다.
서양 정치사상은 이러한 어려움을 철학적 성찰로 전환시키는 계기들로 점철되어 있다. 소크라테스를 죽음으로 몰고간 사유 중 하나가 옛것들을 버리고 *새로운 신들 (kainous theous)을 소개한 것이었고(Apologia, 3b1-4), 신과의 새로운 약속을 위해 인간의 세계로내려온 예수가 가이나(Kaynah)에서 최초로 기적을 보여주며 한말도 *"새(neos) 술은 새(kainos)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Matthew, 9 : 17).
또한 마키아벨리가 자신의 성취를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에 비유해서 한 표현에서도 새로운‘ (nuovi)이라는말은 빠지지 않았고(Discorsi, proenio), 근대적 의미에서 ‘혁명‘(rivoluzione)이라는 단어가 통용되기 이전 시기에 정치적 격변을 의미했던 말도 라틴어의 ‘새로운‘ (novus)이라는 형용사에서 파생된 ‘새로움‘(novità)이라는 명사였다.
물론 새로움이 가져다주는 긴장이 서양 정치사상의 전유물은 아니다. 『논어』의 「위정편」에서 공자가 말한 *선생이 될 수 있는 조건의 하나가 바로 옛 것을 익히 어 새로운 것을 아는 것 (溫故而知新)이었고,
『예기』의 「학기편」은 **새로움에 대한 회고적 성찰이 없는 지식을 피상적이라는 의미에서 ‘기문지학 (記問之學)이라고 부르기에 주저하지 않았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새로움이 던져주는 어려움, 그리고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한 사람들에 대한 경외심이 철학적 성찰의 주요한 주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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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가치의 새로운 지평을 찾는 작업은 인간의 *통제를 벗어난 것들에 대한 인간적 애환, 특히 결코 잡을 수 없는 ‘시간‘ (tempo)에 대한 고뇌를 담게 된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이러한 고민을 새로움을 의미하는 두 단어 속에 담아두었다. 하나가 ‘새로움‘ 또는 ‘생소함‘이라는 의미를 가졌던 **카이노스(kainos)라는 단어다. 이 단어는 **과거부터 존재했지만 아직 실현되지 못했던 것을 지칭하고, 그 결과 시간적 의미에서 발생했거나 선재했던 과거의 것들과는 다른 사물 또는 사건의 실적인 특성을 전달한다.
또 다른 하나는 **네오스(neos)다. 이 단어는 **전혀 존재하지 않던 바, 그래서 시간적으로 미래적 시점에 존재 또는 발생할 사물 또는 사건을 의미한다. 라틴어의 노무스(novus)와 뜻이 상응하는 이 단어는 젊음또는 더 많은 가능성을 가진 무엇인가를 지칭하기도 한다. 이러한 용례에 기초해서 소크라테스의 죄목과 예수의 표현을 살펴보면, *새로움을 찾는 작업과 관련된 정치사상적 고민들이 다른 각도에서 정리가 될 수 있다.
소크라테스가 섬겼던 ‘새로운 신들‘(kainous theous)은 당시에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이미 있었지만 실현되지 못했던 것들을 의미하고, 예수가 말했던 새 부대 (kainos askos)도 실현되지 못했기에 생소할 수밖에 없던 과거의 약속을 의미하게 된다.
동일한 맥락에서 근대 정치철학의 길을 활짝 연 마키아벨리의 새로운 방식과 질서들‘ (modi eordini nuovi)은 고대 로마 공화국의 위대함을 부활시키려는 지난한 노력과 연관된다. 동양의 ‘온고지신‘이 전하는 지혜가 서양의정치사상적 실천 속에서도 발견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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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새로운 이념적 지평을 찾는 일은 최소한 *세 가지 태도를 우선적으로 요구한다.
첫째는 ***주어진 모든 것을 의심하지만 진리가 존재한다는 사실 그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 **소크라테스적 회의주의 (Socratic Slkepticism)다.
일반적으로 소크라테스적 회의주의는 소피스트적 상대주의와 구별된다. 왜냐하면 소크라테스는 주어진 모든 것을 의심한다는 점에서 소피스트들과 유사하지만, 말로써 좌중의 지지만 얻으면 그것이 곧 진리가 될수 있다는 편견(doxail)을 거부함으로써 **대중의 의사와는 *독립된 진정한 진리를 찾고자 노력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차이는 소크라테스의 대화(elengkhos)에는 모든 것을 안다는 소피스트들의 태도보다 ***‘나는 아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안다‘ (en oida oti ouden oida)는 태도가 전제되어 있다는 점에서도 비롯된다.
즉 소크라테스와의 대회에서 **‘알 수 없음‘(aporia)은 지명적인 논리적 허점이나 논박에서의 패배를 의미하기보다 **모든 것을 알 수 없는 **인간의 한계에 대한 **진지한 자각이 담겨 있고, 이러한 자각은 그의 질문에 대답하려는 사람들을 *철학적 성찰의 길로 유도한다(Meno, 84a-c).
여기에 어떤 자명하고 절대적인 원칙을 통해 진리를 재단하려거나 이성적으로 상대방에게 무엇인가를 주입하려는 오만은 없다.
동시에 아무것도 선험적으로 주어진 것이 없기에 백지상태에서 좌중의 동의를 통해 진리를 구성하면 그만이라는 무분별함도 없다.
**이성과 경험에 대한 무조건적 신뢰가 가져올 위험을 응시하면서도 의심이 진리에 대한 탐구 그 자체를 위협하지 않는 대화를 의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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