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놔주게, 그도 한국이야>
프랑스의 지성 사르트르가 모국의 식민지 정책에 항의해 알제리 독립운동 자금 전달책으로 나서자 그의 반역 행위를 용인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러나 정작 국가의 수반인 드골은 이렇게 응수했다고 한다.
"그냥 놔두게. 그도 프랑스야."
271쪽
<이언 매큐언, 악마는 내 안의 악마를 깨우고>
인간을 이해하지 않고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 안의 악마와 맞대결하지 않을 수 없다고 믿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그 자신이 악마가 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언 매큐언은 악마다.
그는 윤리적 의제를 뇌관으로 묻어놓고 거기에 불을 붙여 소설을 타들어 가게 하는 작가다. 이를 ‘윤리학적 상상력‘이라고 부르려 한다. 필자가 오늘의 한국 소설에서 자주 만게 되길 바라고 있는 바로 그것이다.
그런 상상력이 있어야 소설은 폭탄이 되어 공적 영역에서 터질 수 있다.
294-5쪽
<한 편도 다시 읽고 싶지 않다>
카를 프리드리히 폰 바이체커는 1930년대 말에 뒤늦게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을 읽은 뒤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는 한마디도 이해하지 못하겠다. 그러나 이것이 철학이다."
정지아의 <봄빛>에 대해서라도 내 생각은 이렇다. "나는 한 편도 다시 읽고 싶지 않다. 그러나 이것이 소설이다."
299쪽
<영상 19도의 소설들>
문제 하나 내면서 마무리하자.
음반 매장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 직원이 수상한 손님을 붙잡아 추궁한 끝에 그가 CD 세 장을 훔쳤다.. 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 직원은 이제 무슨 말을 할까?
김중혁의 소설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세 장 중에 한 장은 내가 선물로 사줄게. 한 장만 골라봐."
이런 대목들이 김중혁 소설의 온도(좀 거창하게는 ‘윤리‘ 라고 해도 좋다)를 조절한다. 사람이 활동하기 가장 좋은 온도는 섭씨 18~20도 정도라고 한다. 그렇다면 김중혁 소설의 온도는 딱 19도일 것이다. 한번 재어들 보시라.
302쪽
<무신론자에게는 희망이 신이다!>
/ 우리한텐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죠 / 그래 / 우리는 불을 운반하니까요. / 그래. 우리는 불을 운반하니까. (96쪽)
파국 이후의 세계에서 그토록 소중하게 지켜야 하는 ‘불‘이란 대체 무엇이겠는가. 희망일밖에. 그러나 **이 희망에는 희망이 없다.
"**남자는 자신이 아무런 근거 없이 희망을 걸고 있음을 알았다." (242쪽)
그래, **희망이 없을 때 희망은 가장 숭고해진다.
304쪽
세 종류의 소설이 있는 것 같다.
희망의 근거를 어설프게 늘어놓는 아마추어의 소설, 어떠한 타협도 없이 절망의 정의로움을 완강하게 고수하는 프로의 소설, 그리고 절망의 끝에서 기어이 희망의 가능성을 설득해내고야 마는 대가의 소설.
"그 자신의 마음속에서 이미 재가 된 것을 아이의 마음속에서 불로 피워올릴 수는 없다는 것"(174-5쪽)을 알기 때문에 아비는 우선 저 자신부터가 희망이라는 ‘불‘을 끌 수 없었을 것이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생각했다. 지구가 멸망한다 해도, 만약 생존자가 하나가 아니라 적어도 둘이라면, 그리고 그 둘 중 하나가 다른 하나를 사랑하게 된다면, 거기에서 희망이라는 것이 생겨나겠구나 하고.
더 짧은 결론. 눈먼 노인을 만난 남자가 자기 아들을 가리키며 말한다. "저 아이가 신이라고 하면 어쩔 겁니까?" (196쪽) 그래, 무신론자에게는 희망이 신이다.
30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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