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뇌의 힘, 당위와 현실의 긴장>
10년을 만난 연인에게 싫증이 났지만 헤어질 명분을 찾지 못하던 그때 때마침 실요주의라는 복음이 도착했다. 많은 사람이 이념 따위는 내다 버리자고 주장하는 그 이상한 이념에 한 표를 던졌다.
그 이후로 많은 것이 달라졌다. 민주주의니 인권 보호니 언론 자유니 하는 것들이 다 무슨 소용인가. 그런 것들은 옷과 밥과 집을 주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어렵고 옳고 아름다운 것들을 과감히 내던지고 쉽고 유용하고 폼 나는 것들에만 헌신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대박‘이 시대정신이 되고, ‘특목고‘가 백년지대계가 되고, ‘뉴타운‘이 주거 정척이 되고 ‘토건‘이 생태 철학이 되는 시대를 맞이했다.
이명박 정부는 자유와 민주의 공화국이 낳은 기형아가 아니라 자본과 속물의 제국이 낳은 우량아라고 해야 옳다. 우리는 이제 어렵고 옳고 아름다운 가치들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게 됐다.
***당위와 현실이 팽팽하게 긴장할 때 *고뇌가 생겨난다. *당위의 힘이 과도하게 커지면 *억압이 생겨나고 *현실의 힘이 지나치게 커지면 *마비가 올 것이다. 그러니 **자주 흔들리는 사회가 바람직한 사회일 것이고 **고뇌는 건강한 사회의 증명서일 것이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어렵고 옳고 아름다운 것들의 눈치를 보지 않게 되면서 우리 사회 는 점점 고뇌하는 법을 잊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잘 알려진 대로 톨스토이의 문학과 그의 삶 사이에는 큰 괴리가 있었다. 문호 톨스토이는 인류의 교사를 자임했지만 인간 톨스토이 -는 자기 자신의 가장 열등한 제자였다.
그러나 그는 그 괴리를 좁히기 위해 고뇌했고 그것이 톨스토이를 위대한 인물이 되게 했다. 고뇌는 공동체의 배수진이다. 그 진지가 무너지면 우리는 괴물이 되고 말 것이다.
275쪽
<공감과 소설>
윤리적 난제를 서사 구성의 동력으로 활용하는 솜씨가 돋보인다는 점에서 ‘윤리학적 상상력‘의 작가라고 부를 만한 이언 매큐언 역시 9·11 테러와 관련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만일 비행기 납치범들이 그들 자신을 승객들의 생각과 감정 속에 상상해넣을 수 있었다면, 아마 계획을 진행하지 못했을 것이다. **희생자의 마음속에 일단 들어가면 잔혹해지기라 어렵다.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마음을 상상하는 것은 우리 인간성의 핵에 자리한다. 그것이 **공감의 본질이고 윤리의 시작이다."
("Only Love and Then Oblivion", Guardian, September 5.
2001. 김선형, 「서늘한 거울 속 원더랜드의 건축가」, 『문학동네』 2008년 봄호, 481쪽에서 재인용)
이것은 단지 시론(時論)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언 매큐언 자신의 작가적, 문학적 신념의 표명이기도 할 것이다. 예컨대 그의 대표작인 『속죄』의 서사 구조가 위 언급과 긴밀하게 연결돼 있는 터다. 이 작품은 **자신을 타인의 생각과 감정속에 상상해 넣는 능력이 결핍돼 있어 비극을 유발한 한 소녀가 뒤늦게 그 능력을 배우기 위해 평생을 한 권의 소설을 완성해나가는데 바치면서 속죄하는 이야기였다.
278-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