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의미의 ‘잉여‘를 설명하기 위해서 오토가 택한 단어가 바로 **누멘적인 numinous이라는 용어이다. (‘힘차게 신들린 초인간적인 에너지와 힘‘을 뜻하는 라틴어 누멘 numen에서 나온 말이다)

누멘적인 것은 **매혹적이면서도 또한 공포를 자아내는 것으로, 만질 수 없고 볼 수도 없지만 힘있는 실재를 말한다. 누멘적인 것이란 곧 **생동감 넘치는 종교의 가장 큰 특징이 되는 **비이성적, 비합리적 요소를 가리키는 것이다.

슐라이어마허는 칸트의 공식에 대한 대안으로서 종교를 **이성 외적 기능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오토는 종교가 감정과 관계된다는 것을 인정했지만, **감정이란 종교의 진정한 근원에 대한 친근한 **유비 이상은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더욱 정확히 말해서, ‘감정‘ -혹은 ‘절대의존의 감정‘마저도 -은 종교적 조건에 대한 하나의 응답일 뿐이지 종교적 조건 그 자체는 아니다. 마찬가지로, **감정은 종교를 위한 계끼가 아니라 종교에 의해 **유발되는 것에 불과하다.

오토는 슐라이어마허의 ‘감정‘ 개념이 **주관성의 범위에만 제한되어 있다고 반대했다. 슐라이어마허처럼 주장하는 것은 **미학을 개인의 자아의식의 범주에만 국한시키는 일이다. 오토는 ***감정에 수반된 주관적인 개인의식은 객관적인 신성한 실재와 공존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그는 주관적 자아 외부에 있는 실재를 더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 누멘적인 것이라는 대체 개념을 개발한 것이다. 감정은 누멘적 경험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지만 결코 종교의 원천이나 뿌리가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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