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타인의 고통은 25년 전에 발표된 『사진에 관하여』(1977)와 이어지는 저서이다. 전작이 사진 *이미지를 분석하면서 사람들이 *현대성이라는 상황을 이해하는 방식에 이문을 제기했다면, 이번 저서는 **이미지가 시용되는 방식과 그 *의미는 물론이 거니와 **전쟁의 본성, **연민의 한계, **양심의 명령 등까지 살펴보고 있다. 그래서 타인의 고통은 이라크 전쟁 전후의 현실 정세에 대힌 ‘지적‘ 개입이기도 하다.
손택의 관찰에 따르면, 시방팔방이 폭력이나 잔혹함을 보여주는 이미지들로 뒤덮인 현대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타인의 고통을 일종의 **스펙터클로 소비해 버린다. 타인의 고통이 하룻밤의 진부한 유흥거리가 된디면, 사람들은 타인이 겪었던 것 같은 고통을 직접 경험혀 보지 않고도 그 참상에 정통해지고, 진지해질 수 있는 가능성마저 비웃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손택은 이렇게 주장한다. **연민은 쉽사리 우리의 *무능력함뿐만 아니라 우리의 *무고함("우리가 저지른 일이 아니다")까지 증명해 주는 *알리바이가 되어버리기 때문에, 타인의 고통에 연민을 보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그러니까 오히리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을 극복하고, 잔혹한 이미지를 보고 가지게 된 두려음을 극복해 우리의 무감각함을 떨쳐내야 한다고.
"특권을 누리는 우리와 고통을 받는 그들이 똑같은 지도상에 존재히고 있으며 우리의 특권이 (우리가 상상하고 싶어하지 않는 식으로, 가령 우리의 부가 타인의 궁핍을 수반하는 식으로) **그들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숙고해 보는 것, 그래서 전쟁과 악랄한 정치에 둘러싸인인 채 *타인에게 연민민을 베풀기를 그만둔다는 것, 바로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과제이다."
3쪽
<타인의 고통>
고통을 둘러싼 도상학은 기나긴 족보를 갖고 있다. 흔히 재현되어야 할 가치가 있다고 간주되는 고통은 신이나 인간의 분노가 낳은 것이라고 이해되는 고통이다.
특히 **고통받는 나체가 찍힌 사진을 보려는 욕망은 **나체가 찍힌 사진을 보려는 욕망만큼이나 격력한 것으로서, **기독교 예술은 *지옥의 묘사를 통해서 수세기 동안 이 두가지 기본적인 욕망을 모두 충족시켰다.
*숭고하거나 장엄하며, 그도 아니면 *비극적인 형태로 *아름다움을 담고 있으니 유혈 낭자한 전투 장면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주장은 예술가들이 제작한 전쟁의 이미지에 늘 따라붙는 주장이다.
현대가 시작될 무렵에는 원래 소름끼치는 것에 관심을 기울이는 경향을 사람들이 타고났다는 주장이 훨씬 더 쉽게 받아들여졌다. 잔악함에 대한 사랑은 연민만큼이나 인간에게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4-5쪽
대중에게 공개된 사진들 가운데 심하게 손상된 육체가 담긴 사진들은 흔히 **아시아나 아프리카에서 찍힌 사진들이다. 저널리즘의 이런 관행은 **이국적인(다시 말해서 식민지의) 인종을 **구경거리로 만들던 1백여 년 묵은 관행을 그대로 이어받은 것이다. 비록 적이 아닐지라도, **타자는 (백인들처럼) 보는 사람이 아니라 *보여지는 사람 취급을 당한다.
사진 없는 전쟁, 즉 저 뛰어난 전쟁의 미학을 갖추지 않은 전쟁은 존재하지 않는다. 카메라와 총, 그러니까 피사체를 **‘쏘는‘ 카메라와 인간을 쏘는 총을 **동일시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전쟁을 일으키는 행위는 곧 사진을 찍은 행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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