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끗하고 불빛 환한 곳, 헤밍웨이>
허무, 허무 그리고 허무


해럴드 블룸은 <해럴드 블룸의 독서 기술>에서 현대 단편소설이 두 개의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지적한다. **‘체호프-헤밍웨이‘ 양식과 ‘카프카-보르헤스‘ 양식.

중년의 사내는 홀로 카페를 정리하며 자신과의 대화를 계속한다. 그는 노인의 기분을 알 것 같다.

***"그는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그것은 공포도 두려움도 아니었다. 그건 그가 너무도 잘 아는 허무였다. 모든 것이 허무였고 인간 또한 허무였다. 바로 그 때문에 빛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고 또 약간의 깨끗함과 질서가 필요한 것이다." (241쪽)

이 소설의 제목인 ‘깨끗하고 불빛 환한 곳(a clean, well-lighted place)‘이 여기에서 나왔다. **삶의 허무에 잠식되지 않기 위해 필요한 장소, 노인이 밤마다 떠나지 못하는 그 카페 같은 곳.

이어 중년의 사내는 특별한 주기도문을 외운다. 성스러운 단어들의 자리에 모두 스페인어 ‘nada‘(허무)를 집어넣은 이상한 주기도문을.


***"허무에 계신 우리의 허무님,
당신의 이름으로 허무해지시고,
당신의 왕국이 허무하소서.

하늘에서 허무하셨던 것과 같이
땅에서도 허무하소서.

우리에게 일용할 허무를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허무한 것을
허무하게 한 것과 같이
우리의 허무를 허무하게 해주소서.

우리를 허무에 들지 말게 하시고,
다만 허무에서 구하소서.

허무로 가득한 허무를 찬미하라,
허무가 그대와 함께하리니.


60쪽.


다음은 제임스 조이스의 말이다.
"헤밍웨이는 문학과 삶 사이의 장막을 축소했습니다. 이것은 모든 작가들이 그토록 추구하는 일이죠."

61쪽

<삶이 진실에 베일 때>
제임스 설터, <어젯밤>


사고와 사건은 다르다. 예컨대 **개가 사람을 무는 것이 사고이고 사람이 개를 무는 것이 사건이다. 이 둘의 차이는 무엇일까.

**사고는 ‘처리‘하는 것이고 사건은 ‘해석‘하는 것이다. ‘어떤 개가 어떤 날 어떤 날 어떤 사람을 물었다‘라는 평서문에서 끝나는 게 처리이고, ‘그는 도대체 왜 개를 물어야만 했을가?‘라는 의문문으로부터 비로소 시작되는 게 해석이다.

요컨대 사고에서는 사실의 확신이, **사건에서는 진실의 추출이 관건이다. 더 중요한 차이가 있다. 그 일이 일어나기 전으로 되돌아갈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

사고가 일어나면 최선을 다해 되돌려야 하거니와 이를 ‘복구‘라 한다. 그러나 사건에서는, 그것이 진정한 사건이라면, 진실의 압력 때문에 그 사건 이전으로 되돌아갈 수 없게 된다. 무리하게 되돌릴 경우 그것은 ‘퇴행‘이 되고 만다.


1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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