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랑콜리아>


이 영화의 1부는 우울의 서사라고 봐야 한다.

 그 첫 번째 열쇠는 당연하게도 프로이트의 논문 「애도와 우울」(1917, 국역본 제목은 ‘슬픔과 우울증‘)에서 찾을 수 있다. 

**애도 mourning와 우울 melancholy은 사랑해오던 대상을 상실했을 때 주체가 보이는 반응이라는 점에서는 일단 같다. 

그러나 *애도가 대상의 상실을 받아들이고 그 대상에 쏟았던 에너지(리비도)를 철회하여 일상으로 복귀하는 것이라면(그래서 ‘애도 작업‘이나 애도 기간‘ 같은 말이 성립될 수 있
‘ 다), *우울은 대상의 상실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을 그 대상과 **동일시하면서 **자기 파괴적인 무력감에 사로잡히는 경우다(그래서 애도와 달리 우울은 병리적인 현상이며 치료의 대상이 된다). 

세부 논증은 생략하더라도 분명한 것은, 우울의 경우 *‘상실‘과 *자학이 맺고 있는 이 기묘한 관계는 섬세한 해석의 대상이 돼야 마땅하다는 점이다.

 그래서 *정신분석학자들은 오늘날 제도적인 정신의학이 우울melancholy을 *우울증depression이라는 명칭으로 진단하고 *약물 치료에 의존하는 것에 *회의적이다. 

라캉학파 분석가인 대리언 리더는 말한다.
""인간 내면을 탐구하는 일이 정신위생이라는 고정관념으로 대체되고 있다. 문제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제거하는 것이다. 우울증을 바라보는 이러한 시선이 문제 자체의 일부분은 아닐까?" (<우리는 왜 우울할까>, 우달임 옮김, 동녘사이언스, 2011, 8쪽

103쪽

<시, 이창동>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물음을 둘러싼 일련의 논의들을 넓으 의미에서의 *‘윤리학‘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면, 그 논의의 장에 개입하는 모든 종류의 글쓰기는 *‘윤리학적 텍스트‘를 생산할 것이고, 그 하위 범주 중 하나로 ‘*윤리학적 문학 텍스트를 또한 생산할 것이다.

이런 종류의 문학작품을 쓰는 데 필요한 특별한 자질이 있을까? *윤리학적인 의제를 활성화시키는 효과적인 서사 구조를 창조해내는 능력을 나는 **‘윤리학적 상상력‘이라고 부른다. 

내가 보기에 ‘윤리학적 상상력‘은 다음 세 가지 요소를 서사 내부에 *절합節合해내는 능력이다. **사건, 진실, 그리고 응답. 

첫째, 그 일이 있기 전으로 되돌아갈 수 없는어떤 **존재론적 단절의 계기로서의 *사건이 발생한다. 
둘째, 주체가 미처 그 의미를 확정할 수 없었던 사건의 진실이 뒤늦게 밝혀져 주체에게 *압력을 행사한다. 
셋째, 진실의 압력 속에서 그 진실에 충실하기 위해 주체는 모종의 **응답을 시도한다. 여기서 특히 중요한 것은 심급이다.  이 단계에서 작가는 세계를 향해 그가 아껴둔 마지막 말을 건넨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는 근래 우리가 만난 가장 진지한 ‘윤리학적 상상력‘의 결과물이다.


134쪽

<영화 시 2>

시는 마음의 투명한 재현을 추구하는 1인칭의 독백이다.
시에 어떤 화자가 등장하건 그는 곧 시인 자신이다.
그러므로 거짓된 삶에서 진실한 시가 나올 수는 없다.
삶과 시는 일치되어야 한다, 라는 명제들이 그 관념을 구성한다.

1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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