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빈에 대하여>


**소시오패스는 ‘절대적인 진단명이지만 **괴물은 ‘상대적인‘ 규정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대체로 소시오패스가 아니고 앞으로도 그럴 테지만, 누군가에게나 언제든지 괴물이 될 수는 있다.

이런 의미에서 괴물이라는 규정이 상대저인 것이라면 우리는 케빈과 에바에게도 (다시 말하지만, 도덕적 단죄 없이) 물어볼 수 있을 것이다. 케빈은 괴물로 태어난 것인가 아니면 괴물로 길러진 것인가. 그가 괴물로 길러진 것이라면 괴물을 기른 존재는 괴물인가 아닌가.

 나는 지금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1818)을 염두에 두고 있다. 광기 어린 열정으로 생명을 창조한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뒤늦게 후회하며 피조물을 혐오했고, 피조물은 자신이 태어났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해 고통받다가 정말로 괴물이 돼버렸다. 

"**나는 불행하기 때문에 사악하다. (…) **인간이 나를 동정하지 않는데 내가 왜 인간을 동정해
야 하는지 말해달라." 

누가 괴물인가. 누가 진짜 괴물인지를 가려내자는 뜻이 아니다. **어느 두 존재가 만나 거기서 하나의 괴물이 탄생했다면 그것은 어느 한 사람만의 책임은 아닐 것이라는 말이다. 

에바가 케빈을 출산하는 장면에서 린 램지 감독은 영상을 일그러뜨려서 피사체가 흡사 괴물처럼 보이도록 했다. 그 화면에 찍인 것이 침대에 누운 에바인지 자궁 밖으로 나오고 있는 케빈인지 나는 모른다. 두 사람 중 하나가 괴물인 것이 아니라, 둘 중 누구도 원하지 않은 그 관계 자체에 ‘괴물성‘이 있지는 않은가. 본래 괴물이 아니었으나 둘이 만나서 함께 괴물을 탄생시킨 두 사람의 역사를 살피자..


48-49쪽

<설국열차: 마르크스 프로이트 그리고 봉준호>


그런데 왜 기차이고, 왜 마르크스와 프로이트인가.

 "**오늘날 문명국 이 철도 건설에 쏟는 열의와 성의는 몇 세기 전의 교회 건축에 비견될 수 있다." 이것은 생시몽주의자 미셸 슈발리에가 1853년에 한 말이다.

  그리고 이 시기를 조망하면서 수잔 벽 모스는 이렇게 적었다. "**철도는 지시물이었고, **진보는 기호였다. **공간적 운동은 역사적 운동 개념과 너무나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철도와 진보는 더 이상 구분될 수 없었다."(『발터 벤야민과 아케이드 프로젝트』, 김성아 옮김, 문학동네, 2004, 126쪽) 

보다시피 19세기 이래로 *기차는 *진보의 은유였고 **진보는 곧 근대성의 핵심 이념 중 하나였다. 그러니 ‘**기차 = 진보 = 근대성‘이라는 도식이 사람들을 지배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164쪽

<설국열차 2>

- 마르크스의 기차

**마르크스가 전복하려 한 것은 자본주의라는 체제일 뿐 진보라는 이념은 아니었기 때문에 그 역시 **진보의 상징인 기차의 은유를 받아들였다. "혁명은 역사의 기관차다." 


위 문장이 특별히 유명해실 수 있었던 것은 발터 벤야민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물론 그는 비판하기 위해 인용한 것이시만 말이다.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역사철학테제)라는 글을 쓰기 위해 적어
‘둔 메모를 모은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관련 노트들에 이런 말이나온다. 

"마르크스는 혁명이 세계사의 기관차라고 말했다. 그러나 어쩌면 사정은 그와는 아주 다를지 모른다. 아마 **혁명은 이 기차를 타고 여행하는 사람들이 잡아당기는 비상 브레이크일 것이다."(『벤야민
‘선집 5., 최성만 옮김, 길, 2008. 356쪽)

 당시의 벤야민에게는 **‘진보에 대한 신화적 믿음이 가장 큰 위험으로 보였다. "진보의 의미론은 테크놀로지의 변화와 사회 개선을 무매개적으로 동일시하며, 진보의 이미지는 지상-천국을 불가피한 어떤 것처럼 제시한다."
(수잔 벅 모스, 같은이, 128쪽) 

이런 미혹에 빠져 있는 동안 역사는 오히려 파국으로 치닫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벤야민은 마르크스조차도 계몽주의 이래로 사람들을 지배해온 이 진보에 대한 맹신을 의심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마르크스의 기차 은유를 위와 같이 뒤집어야만 했다. 기차를 멈추는 것이야말로 혁명이라고.

16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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