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누웠던 자리>
그러나 그들이 엇갈리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들은 **헤어지면서 비로소 만난다. 그녀가 누웠던 자리에 누우면서 시인은 "그 여자의 건강이 - 아니 내 건강도 속히 회복되기를 바란다. 저 ‘아니‘의 미묘한 머뭇거림이 이 시를 한층 겸허하게 만든다.
주체가 객체를 서정적으로 동일화하지 않으면서도 기어이 하나가 되는 이 기술이 바로 뛰어난 서정의 마력이다. 이 태도는 환자의 고통을 진단하지 못하)는 의사의 지극히 합리적인 행위와 대비되면서 더욱 아름다워진다. 이 윤리적 태도에 뭐라고 이름을 붙여야 하나.
다시 아도르노의 표현을 빌려와서 이것을 **‘미메시스의 윤리학‘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이 미메시스는 모방과 다르다. "전통적인 예술 이론에서 미메시스가 객체의 모방‘ 이라면 아도르노적인 의미에서의 미메시스는 **객체에의 동화(同化)‘ 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투사(投射)와도 구별되어야 한다.
"***미메시스가 주변 세계와 유사해지려고 한다면 잘못된 투사는 주변 세계를 자기와 유사하게 만들려고 한다." 이런 말들이 꽤 모호하게 들린다면 이는 아마도 대상을 객체화하는 근대적 합리성의 지배 속에서 우리가 저 미메시스의 능력을 거의 잃어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뛰어난 서정시에는 그 미메시스의 계기가 보존되어 있다. "그가 누웠던 자리"에 가 눕는 이 소박하면서도 숭고한 행위는 주체와 객체의 동일성을 섣불리 확증함으로써 결국 객체를 주체로 종속시키고 마는 서정의 윟멍르 사려 깊게 피해간다. 그러면서 표명되는 희망이기에 이 시가 껴안고 있는 희망은 거북하지 않다.
스탕달은 예술을 "행복에의 약속"이라 했다. 행복이 지금-여기에 있다고 말하는 예술은 허위다. 언젠가 그들은 건강해질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아니다. 라고 이 시는 말한다.
509-11쪽
<그가 누웠던 자리, 서정적으로 올바른>
아우슈비츠 이후 씌어지는 서정시는 다음 세 가지의 계기를 내포해야만 한다.
동일성(동일자)의 폭력 속에서 신음하고 있는 특수성(특수자)의 현실을 ‘발견‘ 하고, 그 특수자의 아픔을 ‘나‘의 고통으로 ‘감응‘하고, 고통 없는 세계의 비전 혹은 진실한 화해의 비전을 강렬하게 ‘환기 하기. **이를 발견, 감응, 환기의 3단 구조로 정식화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 규정만으로는 불충분하다는 것을 시 「병원」이 알려준다. 첫째, 동일성의 폭력에서 특수자를 구제하기 위한 발견이 외려 동일화의 메커니즘을 채택하고 있지 않은지 반성해야 한다. 이미 발견할 준비가 되어 있는 눈 앞에서 특수자는 더러 제 뜻과 무관하게 아름다워지고 만다. 둘째, 특수자의 아픔에 감응하는 일은 그 감응이 어쩌면 영원히 불가능할지도 모른다는 비관주의와 끝내 함께 가는 작업이어야 한다. 타자의 고통이 곧 ‘나‘ 의 고통임을 아름답게 고백하는 사이비 유마힐(維手話)이 되는 일은 얼마나 쉬운가. 셋째, 고통 없는 세계 혹은 진실한해의 세계는 어떠한 경우에도 긍정적인 방식으로(그것은 바로 여기에제시되어서는 안 되며 다만 부정적인 방식으로(그것은 여기에 없되어야 한다. 아름다운 가상의 세계 (자연 혹은 여행지)에서 유아는 저 수많은 시들은 행복에의 약속‘ 이 아니라 행복의 단언이다) 환기되어야 한다.
511쪽
세 토막으로 이루어진 시 「병원」은 발견, 감응, 환기의 모범적인 사례를 그 순서 그대로 예시한다. 병원과 환자로 은유되는 세계의 실상의발견, 타자들의 아픔에 감응하면서 이뤄지는 ‘나‘의 고통의 인식, 미메시스의 윤리와 행복에의 약속을 통해 환기되는 유토피아, 이 모든 것들에 대한 배려가 저 소품 안에 있다.
이 시가 그런 서정시의 최고 수준을 구현하고 있다는 얘기가 아니라, 서정시의 윤리학에 대해 성찰하게 하는 특별한 힘을 갖고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걸작이라는 말보다는 문제작이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 이제 글의 서두에서 던졌던 질문을 다시던지자.
***서정은 언제 아름다움에 도달하는가. 인식론적으로 혹은 윤리학적으로 겸허할 때다. ***타자를 안다고 말하지 않고, 타자의 고통을 느낄 수 있다고 자신하지 않고, 타자와의 만남을 섣불리 도모하지 않는 시가 그렇지 않은 시보다 아름다움에 도달할 가능성이 더 높다.
**서정시는 가장 왜소할 때 가장 거대하고, 가장 무력할 때 가장 위대하다. 우리는 그럴 때 서정적으로 올바른(poetically correct)‘이라는 표현을 쓸 수 있다. 서정적으로 올바른 시들은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를 안다. 그곳은 ‘그가 누웠던 자리‘다.
5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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