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함의 세계>  

/ 김행숙


이곳에서 발이 녹는다.
무릎이 없어지고, 
나는 이곳에서 영원히 일어나고 싶지 않다.


괜찮아요, 작은 목소리는 더 작은 목소리가 되어
우리는 함께 희미해진다.


고마워요, 그 둥근 입술과 함께
작별인사를 위해 무늬를 만들었던 몇 가지의 손짓과
안녕, 하고 말하는 순간부터 투명해지는 한쪽 귀와


수평선처럼 누워 있는 세계에서
검은 돌고래가 솟구쳐오를 때


무릎이 반짝일 때
우리는 양팔을 벌리고 한없이 다가간다.


349쪽

당대의 독자들에게 이상 문학의 혁신성은 무엇보다도 **눈의 혁신성이었다. 그의 시선은 벤야민의 보들레르마냥 경성 거리를 산책한 모더니스트들의 시선-도시와 군중에 대한 ‘매혹과 반발‘의 기묘한 변증법으로 생겨나는 ‘산책자‘의 시선-과도 닮지 않다.

**이상의 시선은 매혹된 자의 것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서늘하고, 반발하는 것이라고 하기에는 대상에 너무 깊숙이 연루되어 있다. 그의 시선은 경성의 자본주의와 도시문화를 필연적인 어떤 것으로 인지하면서도 그 이면을 꿰뚫어보는 냉정한 시선이다.

***다 알고 있는 자의 시선은 매혹과 반발에 휩쓸리기보다는 차라리 조롱과 공포 사이를 오간다. 대상의 치부를 알고 있어서 우습고 대상의 비밀을 알고 있어서 무섭다.


460-2쪽

<윤동주 병원, 그가 누웠던 자리>


살구나무 그늘로 얼굴을 가리고, 
병원 뒤뜰에 누워, 
젊은 여자가 흰옷 아래로 
하얀 다리를 드러내놓고 일광욕을 한다. 
한나절이 기울도록 가슴을 앓는다는 
이 여자를 찾아오는 이, 나비 한 마리도 없다. 
슬프지도 않은 살구나무 가지에는 바람조차 없다.


나도 모를 아픔을 오래 참다 
처음으로 이곳에 찾아왔다. 
그러나 나의 늙은 의사는 젊은이의 병을 모른다. 
나한테는 병이 없다고 한다. 
이 지나친 시련, 이 지나친 피로, 
나는 성내서는 안 된다.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깃을 여미고 
화단에서 금잔화 한 포기를 따 
가슴에 꽂고 병실 안으로 사라진다. 
나는 그 여자의 건강이 
- 아니 내 건강도 속히 회복되기를 바라며 
그가 누웠던 자리에 누워본다.


- 윤동주 <병원> 전문


**슬픔이 구조적 통찰 이전의 즉각적 반응이라면 아픔은 어떤 구조적 통찰 이후의 반성적 반응이다. 이 라름다운 시를 경계로 윤동조는 비로소 습작기의 어설픔을 잘별한다.

정병욱의 회고에 따르면, **시집의 표제는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아니라 *‘병원‘이었다. 당시 윤동주는 세계가 거대한 병원이고 사람들은 모두 환자일 뿐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성실한 시인이라면 *지난한 암중모색의 와중에 세계를 인식하는 어떤 *구조적 틀을 얻게 된다. ‘병원‘이라는 단어는 그가 포착한 세계의 그 구조를 압축하는 말이었다. 이 시는 일종의 개안의 소산이었던 것이다.

504-5쪽

문제작으로서의 「병원」


문제작이란 무엇인가? 문제는 problem 이거나 question이다. **당대에 분란(problem)을 일으켰거나 후대에 계속 질문(question)을 던지는 작품이 문제작이다.

 
이 시는 서정적이다. (서정적인 것‘ 의 상위 범주인 ‘시적인 것‘은 앞으로도 완전히 규정될 수 없을 것이다. **미지의 ‘시적인 것‘ 들을 향해 시인들이 계속 전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름답다. 모든 서정적인 것이 아름다움에도 달하지는 않는다. 질문은 여기서 발생한다. 특정한 서정은 어떻게 아름다움에 도달할 수 있게 되는가.

이 시는 세 토막으로 되어 있고 각 연들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첫째, 시인은 무엇을 어떻게 보는가(보아야 하는가)
**둘째, 시인은 무엇을 어떻게 느끼는가(느껴야 하는가)
**셋째, 시인은 무엇을 어떻게 행하는가(행해야 하는가)

505-6쪽

<그가 누웠던 자리 3>


1연의 병원과 질병은 ‘정치적 은유‘로 읽힐 수 있다. 이 정치적 은유를 ‘윤리적 은유‘로도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이미 언급한 대로 이 시는 독일군의 폴란드 침공(1939년 9월 1일)과 일본의 진주만 침공 (1941년 12월 8일) 사이에 씌어졌다. 공교롭게도 2차대전 발발 이후 침묵 속으로 빠져들어간 윤동주가 1년 3개월여 만에 쓴 작품이다. 

<계몽의 변증법』(1947)의 저자들이 지적한 대로 그 **전쟁은 인간을 신화와 마법의 세계에서 구출한 ‘계몽‘ 의 과정이 ‘자연 지배‘ 를 거쳐 마침내 인간 지배‘에 이르게 된 일련의 타락의 한 종착점이었다. 

그 전쟁은 (그들의 용어를 빌리자면) **‘도구적 이성‘ 의 전횡이 낳은 필연적 비극이었고, 잇달아 벌어진 아우슈비츠의 비극은 **동일자(동일성)의 폭력속에서 **특수자(특수성)가 질식사한 참극이었다. 이는 실로 이성의 자살다. 

그와 비슷한 시기에 식민지 조선의 한 청년은 병원 뒤뜰에서 병들고 고립된 한 환자의 오후를 목격하였다. 이 병원의 뒤뜰은 이를테면 ‘계몽(이성)의 뒤뜰‘일지도 모른다.

아도르노의 말이다. "합리적 인식은 고통과 거리가 멀다. 그것은 고통을 총괄하여 규정하고 그것을 완화하는 수단을 만들어낼 수 있다. 그러나 고통을 체험으로써 나타낼 수는 없다. 합리적 인식이 볼 때 고통은 비합리적인 것이다. **고통이 개념화되면 그것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게 되고 일관성도 없어질 것이다."

고통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의사의 매뉴얼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시인의 시에 있다. 아도르노는 **고통의 이해와 표현이 오로지 예술에서만 가능하다고 단언한다. 그에 따르면 예술은 **‘축적된 고통의 기억‘이다.

시인은 병 없이 앓는 자다. 윤동주의 ‘나도 모를 아픔‘은 훗날 이성복에 의해 "우리가 이 세상에서 자신을 속지 않고 얻을 수 있는 하나의 진실은 우리가 지금 아프다는 사실이다."라는 인식론으로 변주된 그 아픔이고, 황지우에 의해 "아픈 세상으로 가서 아프자"라는 윤리학으로 확산된 아픔이다.

50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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