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어해설 / 인간의 조건>


1. 공론 영역(The public realm, Der öffentliche Raum) 

**말과 행위를 통해 다른 사람들과 함께 공유하고 또 산출하는 공간을 의미한다. 공론 영역은 한편으로 공중앞에 나타나는 모든 것은 누구나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는 *‘공공성‘ (publicity)을 특징으로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사람들의 말과 행위를 통해 비로소 드러나는
‘현상‘ 또는 출현 (appearance)의 공간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이 개념은 종종 공론장‘(公論場)으로 번역되기도 한다. 그러나 사적 영역과 공론 영역의 구별은 고대 그리스에서 뚜렷이 구별되는 실체로서 존재한 ‘가정‘과 ‘정치적 영역‘의 구별에 상응하기 때문에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의 경계 개념으로서 이해할 때는 영역(領域)으로 옮기는 것이 적절하다. 이 경우 공론 영역은 ‘자유의 영역이다.


2. 관조적 삶(vita contemplativa)

 **진리 탐구를 유일하게 자유로운 활동으로 해석하는 철학적 삶을 의미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개념 ‘비오스 테오레티코스‘ (bios theoreikos)의 번역어로서 *‘관조‘와 *‘명상‘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철학자의 삶의 방식이다. 

아렌트에 의하면 세상사를 정치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방식과 철학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방식의 대립은 소크라테스의 재판, 즉 철학자와 폴리스의 갈등에서 비롯되었다. 

전통적으로 관조적 삶은 활동적 삶에 대해 우위를 차지해 왔으며, 이는 결국 한편으로는 **활동적 삶의 세 가지 근본활동인 노동 · 작업 · 행위를 명료하게 구별하지 못하게 만들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정치적 행위와 자유의 연관관계를 올바로 파악하지 못하게 했다.

437쪽


3. 권력(Power, Macht)

  권력은 사람들이 말과 행위를 통해 나타나는 정치적 현상의 공간, 즉 공론 영역을 존재하게 하는 것이다. "권력은 사람들이 함께 행위할 때 그들 사이에서 갑자기 생겨나서 사람들이 흩어지는 순간 사라진다." 

정치적 행위의 관점에서 규정된 권력은 한편으로 무엇인가를 새롭게 시작하는 행위의 능력처럼 자발적이고 예측불가능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예속과 복종보다는 합의에 근거하기 때문에 비위계적이다. 

이런 점에서 **권력은 개인이 소유할 수 있는
‘힘‘(strength) 그리고 도구화될 수 있는 *‘세력 (force) 및 *‘폭력‘ (violence)과 구별된다. 권력과 폭력의 구별은 세 가지다. 

첫째, 권력은 도구화되거나 물질화될 수 없는데 폭력은 도구적이고 물질적이다. 
둘째, 공론 영역에서 발생하는 권력은 언어행위를 전제하는데 폭력은 말의 가능성을 억압한다. 
셋째, 권력은 협력행위 (action in concert)를 추구하는데 폭력은 고립을 선호한다.


4. 노동(labour, Arbeiten) 

**인간의 생물학적 삶에 상응하는 활동, 인간의 개체보존과 종족보존처렴 *생존의 필연성을 충족하기 위해 인간에게 부과된 활동의 표현이 노동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상에서 생물학적 존재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노동을 할 수밖에 없다. 

노동의 특징은 두 가지다. 하나는 인간의 생명과정도 자연의 순환운동의 한 부분인 까닭에 무한히 반복한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죽어야만 끝나는 ‘노고와 고통과 결합되어 있다는 점이다.


5. 노동하는 동물(animat Laborans)

 인간은 이성을 가진 존재라는 라틴어 용어 ‘이성적 동물‘ (animal rationale)에 대비되는 용어로서 인간은 생물학적 필연성에 구속되어 있기 때문에 노동을 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뜻한다. 사람은 노동하는 동안에는 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개체이기보다는 인류라는 종의 일원일 뿐이다.

그러므로 정치적 관점에서 해석하면 생존이라는 이해관계만을 가진 사회의 구성원들은 노동의 단순한 기능만을 수행하는 동물의 종으로 퇴보할 가능성이 크다.


6. 불멸성(immortality, Unsterblichkeit) 

시간 안에서 영속하고 지상의 이 세계에서 죽지 않는 삶을 의미한다. **영원성 (eternity, Ewigkeit)이 시간을 초월하는 것으로서 신의 특성으로 이해된다면, **불멸성은 시간 안에서 영원히 지속되는 것을 가리킨다.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관점에서 보면 영원히 되풀이되는 ‘자연‘과 죽지 않는 고대 그리스의 올림피아 신들이 불멸의 존재로 여겨졌다. 

아렌트는 **시간 안에서 어느 정도 영속적으로 존재하는 것, 즉 ***불멸성을 추구하는 것을 인간의 고유한 조건과 능력으로 파악한다.


438쪽

7. 사멸성(mortality, Mortalität) 

사멸성(死滅性)은 인간이 생물학적 존재로서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탄생과 죽음이 인간실존의 조건인 것처럼 탄생성과 짝을 이루는 사멸성은 인간행위의 전제조건이 된다.

***죽음을 예견할 수 있는 능력을 통해 인간은 자신이 진정한 자아를 획득할 수 있다고 본 하이데거처럼 아렌트는 **인간이 죽을 수밖에 없는 유한한 존재라는 사실을 철저하게 인식할 때 비로소 어느 정도 영속적으로 전재하는 것을 창조하는 행위를 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므로 *사멸성은 인간을 생물학적인 순환운동으로부터 해방시켜주고 동시에 탄생과 죽음 사이의 직선적 운동을 통해 **개별적인 삶의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전제조건이다. *인간이 반드시 죽는다 할지라도 죽기 위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시작하기 위해서 태어났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주는 것이 바로 사멸성이다.


8. 사적 영역 (The private realm) 

**생물학적 욕구와 필요가 충족되는 필연성의 영역을 의미한다. 사적 영역은 남자의 노동과 여자의 출산을 통한 삶의 유지가 주목적인 가정의 영역과 일치한다. 

정치적 관점에서 해석된 사적 영역은 두 가지 특징을 갖고 있다. 한편으로 가장이 다스리는 가정은 사유의 영역이 아니다. 가정은 불평등의 영역이며, 가장의 동치방식은 전제적이다. 다른 한편으로 가정은정지적 영역으로 들어갈 수 있는 힘이 ‘박탈된 영역이다. 

아렌드는 ‘사적‘ (private)이라는 용어가 본래 **‘결핍‘ 및 ‘박탈‘을 뜻하는 낱말, *privative에서 유래한다는 점에 착안한다. 사적 영역은 타인이 보고 들음으로써 생기는 현실성, 타인과의 객관적 관계, 삶보다 더 영속적인 것을 성취할 수 있는 가능성이 박탈된 영역이다.


9. 세계성 (worldliness, Welclichkeit)

 한편으로는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인공물의 상대적 객관성과 지속성을,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 인공세계에 대한 우리의 의존성을 뜻한다. 기념비 · 건축 · 도시처럼 인위적인 사물세계는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거처이기 때문에 ‘세계성‘은 지상에 시 살아가는 인간의 근본조건이다.


10. 세계소외 (World alienation, Weltentfrcmdung)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로부터 분리되어 행위의 가능성을 박탈당한 상태를 의미한다. 

개인들이 사회적 계급으로 인해 자신이 생산한 생산물로부터 분리되고 오히려 이들로부터 지배를 반게 되어 결국 본래 실현해야 할 자기 자신으로부터 멀어진다는 마르크스의 ‘자기소I toelbstentffemdung)와 유사하지만, **아렌트의 세계 소외는 세계 내에서 자신의 장소를 박탈당한 상태를 뜻한다. 

아렌트에 의하면 소유는 우리가 세계 안에서 자신의 터전을 마련할 수 있는 기초이기 때문에 자본주의 발전과 더불어 발생한 탈소유화는 임금노동자의 탈소유화를 통해 세계소외를 야기한다.

439쪽

11. 인간의 조건 (human condition) 

**인간이 지구 위에서 실존하는 데 필요한 근본조건을 의미한다. 인간이 지구로부터 탈출하여 화성과 같은 다른 행성에서 살게되면 전혀 다른 조건에시 살아야만 하는 것처럼 아렌트는 이 개념으로 **인간은 근본적으로 ***"조건에 의해 제한된 존재 (conditioned bcings, bedingte Wesen)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전통철학이 ‘나는 무엇인가?‘라는 물음으로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별해주는 ‘인간본성‘ (human nature)을 알고자 했다면, 아렌트는 ‘인간의 조건‘이라는 개념으로 "나는 누구인가?" 라는 물음에 답하고자 한다. 그러므로 인간의 조건은 우리의 삶과 지속적인 관계를 가지는 실존조건이다.


12. 작업 (work, Herstellen) 

인간의 비자연적 세계성에 상응하는 활동, 작업은 글자 그대로 주어진 자연을 변형하여 인간에 게 필요한 인공적인 시물들을 만들고 제작하는 활동이다. 장인과 예술가의 작품처리 작업의 산물인 인공세계는 인간의 유한한 삶을 초월하여 비교적 오랫동안 영속하는 특징을 갖고 있다.


13. 지구소외 (earth alienation, Erdentfremdung) 

지구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을 객관적으로 지각하고 분석하기 위하여 모른 현상을 가설적으로 설정한 보편적 관점으로 환원하는 과학적 태도와 현상을 뜻한다. 

충분히 긴 지렛대와 그것을 놓은 ‘지구 밖의 한 점‘만 있으면 지구라도 들어올릴 수 있다고 주장한 아르키메데스의 관점을 계승하는 현대 과학은 결과적으로 지구소외를 야기한다. **인간의 조건 때문에 여전히 지구에 구속되어 있으면서도 미치 외부의 아르키메데스적 점으로부터 *지구를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처럼 세계를 *수학적으로 다루면, 우리는 지구의 구체적 조건으로부터 소외될 수밖에 없다.


14. 탄생성 (natality, Natalität)

 아렌트가 "정치적 사상의 핵심적 범주로 명명한 것으로서 사실적으로는 모든 인긴의 삶이 탄생과 함께 시작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정치적 범주로서 탄생성은 어떤 것을 새로이 시작할 능력을 뜻한다. 

아렌트에게 어떤 것을 새롭게 시작한다는 것은 바로 *행위의 능력이기 때문에 탄생성은 자유로운 행위의 존재론적 근거로 서술된다. 탄생성은 자유의 원리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태어남으로써 새로 온 자, 시작하는 자가 되고 주도권을 쥐고 행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주도권‘으로 옮긴 영어 낱말 **이니셔티브(initiative)는 그리스어 ‘아르케인‘ (archein)과 라틴어 ‘이니티움‘ (initium)과의 연관관계에서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하기 때문에 *‘창발성‘의 뜻으로 이해된다.


440쪽

13. 행위(action, Handeln)

 **‘보편적 인간‘ (Man)이 아닌 ‘복수의 인간들‘(men)이 지구상에 살며 세계에 거주한다는 사실에 상응하는 활동으로서 사물이나 물질의 매개 없이 사람들 사이에서 직접적으로 이루어진다. 

행위는 정치석 삶의 필요조건인 ‘다원성‘ (plurality)에 부합하기 때문에 행위는 곧 정치적 행위다. 이런 점에서 아렌트의 ‘행위‘는 이와 유사한 다른 사회학석 범주들, 즉 ‘행동‘
(behaviour), ‘역할 수행‘(role playing), ‘업무 수행‘ (doing a job) 등과 구별된다. 

사람들이 함께 사는 곳이면 어디에서나 존재하는 **인간관계의 그물망 속에서 말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고 행위를 통해 새롭게 시작함으로써 인간세계에 참여하는 활동이 바로 ‘행위‘다.


14. 호모 파베르 (homo faher) 

도구를 만드는 제작인. 현생인류를 포함하는 종(種)의 학명으로 사용되는 ‘호모 사피엔스‘ (homo sapiens, 지혜로운 인간)와 대비되는 용어로서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별하는 특징으로서 ‘제작‘에 주목한다.

 제작은 세계에 하나의 독립적 실재로 남을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지속성을 가진 전혀 새로운 사물의 창조를 의미하기 때문에 호모 파베르는 스스로를 자연에 대한 지배자로 이해한다. **인간이 호모 파베르인 한, 그는 *모든 것을 *사물화하고 *도구화하는 경향이 있다.



15. 활동적 삶 (vita activa) 

**인간이 지상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묶일 수밖에 없는 세 가지 기본조건에 부합하는 ‘노동‘ ‘작업‘ ‘행위‘를 포괄하는 실천적 삶‘을 의미한다. 

**노동은 탄생과 죽음의 생물학적 조건에 상응하고, 작업은 인공세계의 의존성에 부합하고, 행위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 수밖에 없는 다윈성에 부합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아렌트가 활동적 삶으로 표현되는 인간사를 정치적 관점에서 해석한다는 점이다. 고대 그리스에서 활동적 삶은 자유를 실현하는 ‘정치적 삶‘ (bios politikos)만을 의미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정치적 행위만이 진정한 실천이다. 그러나 고대 도시국가 폴리스의 몰락과 더불어 활동적 삶이란 용어는 본래의 고유한 정치적 의미를 상실하게 되었다. 

이는 한편으로 활동적 삶의 위계를 변화시켜 행위를 노동과 직업 같은 필연적 활동으로 축소시켰으며, 다른 한편으로 관조적 삶‘ (uita contemplativa)만이 유일하게 자유로운 삶의 방식으로 이해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4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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