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관과 노력으로 두려움을 누그러뜨리기 :
루스벨트의 첫 번째 취임 연설(1933)


현재 돌아가고 있는 일들을 보면 진정 걱정스러울 때가 많다. 텐트를 접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거나, 포기하거나, 그저 달아나버리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무엇보다, 자신과 자기 가족을 임박한 듯한 피해로부터 보호하는 게 마땅할 것이다. 전쟁은 그런 유의 사건이다. 

하지만 지도자들은 사람들을 결집시켜 용기와 동료 의식으로 무장한 채 공격자와 맞서게 해야 한다. **두려움은 원심력을 띤다. **두려움은 한데 뭉치는 것이 가능한 사람들의 에너지를 흩어지게 한다. 지도자들이 하는 말은 큰 차이를 낳을 수 있어서, 사람들을 공통의 과제로 끌어들일 수있다.

두려움을 정치적으로 현명하게 관리한 명백한 예는, 윈스턴 처칠 이 1940년 5월 13일 하원 의사당에서 총리로서 처음 한 그 유명한 연 설이다. 당시 영국 사람들은 두려움과 궁핍으로 피폐해질 만한 실제적인 위험에 처해 있었다. 처칠의 목표는, 요구될 엄청난 수고가 어떤 것인지 정확하게 밝히고, 희망과 연대를 위해 패배주의적 두려움을 쫓아내는 것이었고, 이것은 탁월하게 달성되었다.

503쪽

<처칠의 연설> 

정부 각료에게 했던 말을 의회에서 다시 하겠습니다.

 "나는 여러부에게 **피, 수고, 눈물, 땀밖에 드릴 게 없습니다." 우리는 중대한 일을 앞두고 있습니다. 우리는 기나긴 투쟁과 고통을 앞두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우리의 정책이 무엇이냐고 묻습니다. 나는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우리의 능력과 신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힘을 다해 육해공 모두에서 전쟁을 치를 것입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통탄스러운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포악한 압제에 맞서 전쟁을 치를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의 정책입니다.

여러분은 **우리의 목표가 무엇이냐고 묻습니다. 나는 한마디로 답하겠습니다. **우리의 목표는 승리입니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승리할 것입니다. **모든 공포에 맞서 승리할 것입니다. **아무리 오랜 시간이 걸리고 힘들어도 승리할 것입니다. **승리 없이는 생존도 없기 때문입니다. 승리를 이루어냅시다. 

영국 제국의 생존도, 영국 제국이 옹호하는 모든 것의 생존도, 인류가 목표를 향해 전진하리라는 모든 세대의 충동과 욕구의 생존도 없습니다. 하지만 나는 낙천성과 희망을 가지고 나의 임무를 수행합니다. 나는 우리의 대의가 패배라는 고통을 겪지 않으리라 확신합니다.

지금 나는 모든 사람에게 도움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생각이 들고, 이렇게 말하고자 합니다. "자, 힘을 한데 모아 함께 앞으로 나아갑시다."


순전히 수사법의 관점에서만 보면, 성서풍의 울림 있는 구절, 주술적 반복, 기교적 반복, 점점 고조됨을 특징으로 하는 이 연설은 키케로에게 영향을 받았음에 틀림없고(처칠이 고전에 강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키케로에게서 볼 수 있을 것만큼이나 공들인 티가 난다.

처칠은 사실상 사람들의 두려움 속에서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그 두려움을 외면하는 대신에 그것에 맞선다. 그렇습니다. 그것은 나쁩니다. 그것은 끔찍한 시련입니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에 그 과업은 영웅적인, 따라서 호소력 있고 다소 화려한 면모를 띠기 시작한다.

504-5쪽

2. 이상과 현실


우리는 정치적 이상들에서 출발해, 모든 시민의 자유와 복지를 위해 힘들게 노력한 어떤 국가를 상상했다. 하지만 역사에서, 그리고 현실 국가들의 결점 있는 현실에서 사례들을 가져왔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상적 이론"을 펴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사람과 제도들을 있는 그대로 다루고 있는 것일까? 철학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러한 이분법은 지나치게 단순화된 것이어서 우리를 오도한다. **이상은 현실적이다.

***이상은 우리의 노력을, 우리의 계획을, 우리의 법 절차를 이끈다. 헌법은, 언제나 줄곧 완벽하게 시행되지는 않는다는 의미에서, 또 대개 국가의 가장 심원한 염원을 구현한다는 의미에서, 이상적인 문서다. 하지만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들이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게 주어지지 않을 때 법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토대가 되어준다는 점에서, 헌법은 또한 현실적이다. 

언론의 자유" "종교의 자유 "법 앞의 평등"은 모두 고상한 이상이지만, 그것들은 실제 세계에서의 소송과 판결을 위한, 실제 사람들의 교육을 위한, 골치 아픈 사회 문제들의 개선을 위한 기초가 되어준다.

이상은 다른 방식으로 현실적이다. **좋은 이상이라면, 그것은 인간의 삶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며, 실제 사람들이 어떠한지에 대한 인식을 드러낸다. **

실제 사람들은 육체적이고 궁핍하다. 실제 사람들은 다양한 인간적 허약함이나 우수함을 갖고 있다. 실제 사람들은 그저 인간일 뿐, 기계도 아니고 천사도 아니다. 천사들의 나라의 헌법은 어떤 것일지 누가 알겠는가? 코끼리나 호랑이나 고래의 나라에 가장 적합한헌법은 어떤 것일지 누가 알겠는가? 우리가 상상하는 국가는 인간의,
인간을 위한 국가이며(다른 종들과의 복잡한 상호 관계에 놓여 있긴 하지만), 그 국가의 헌법은 인간의 삶에 대한 있는 그대로의 이해를 반영할때에만 좋은 헌법이다.

 (존 롤스는 이 점을 분명히 이해했으며, 내 연구가 실현된 정의보다는 염원에 초점을 맞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롤스의 연구와가깝고 롤스의 연구를 보완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상은 현실적이다. 동시에, **현실 또한 이상을 내포한다. 현실적인 사람들은 염원을 품는다. 그들은 자기가 알고 있는 세계보다 더 나아질 가능성들을 상상해내며, 그것을 현실화하려고 노력한다.

 사람들은 인간 그 자체의 한계를 초월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가끔은 그러한 이상 추구가 길을 잃기도 한다. 

우리는 정치적 삶을 위한 많은 어려움이 그런 식의 자기 거부적 염원에서 온다는 것을 살펴봤다. 하지만 모든 이상 추구가 이런 불운하고 비생산적인 성격을 띠는 것은 아니다.

59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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