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프랑스 밖 사실주의>
**1850년대에 사실주의는 이미 유럽의 시대정신이었다. 그의 초기 작품에도 벌써 사실주의적 면모에 엿보이나, 당대의 일상을 그리는 등 사실주의 경향이 본격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1860년 이후의 일이다.
**1870년대에 그린 <압연 공장>에서 우리는 역사상 최초로 미술에 등장한 산업 프롤레타리아트의 모습을 보게 된다.
다른 나라와 구별되는 러시아 사실주의의 특성은 강렬한 민중성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곳에서 사실주의 미술은 정치적 해방의 무기를 자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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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주의에서 사회주의 리얼리즘으로>
거칠게 말하면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이 다비드의 신고전주의 양식, 1830년의 시민혁명이 들라크루아의 낭만주의 양식으로 표현되었다면, 사실주의는 1848년 혁명을 배경으로 하여 탄생한 양식이라고 할 수 있었다.
**1848년 혁명 이후 한때 절대왕정에 대항하여 함께 싸웠던 시민계급과 노동자계급의 연대에는 균열이 생긴다. 사회의 새로운 지배 층으로 자리를 잡은 시민계급이 급속히 보수화하여 사회의 변혁을 유보하거나 거부하는 쪽으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자본가계급에게 배신당한 **노동자계급은 1872년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정권인 파리코뮌을 수립한다. 1848년 혁명과 이 단명한 정권 사이가 사실주의자들이 활동한 기간과 일치한다는 것이 그저 우연의 일치는 아닐 것이다.
**사실주의의 또 다른 배경은 19세기부터 본격화한 산업혁명이다. 산업화는 사회의 풍경을 급진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산업혁명은 적어도 시민계급에게는 물질적 풍요를 안겨주었다. 이 시기에 등장한 이른바 **‘모던‘ 라이프 스타일도 실은 산업화로 인한 생산력의 증대로 가능했던것이다. 하지만 기술의 진보가 모든 이에게 풍요를 가져다준 것은 아니었다.
생산의 기계화는 숙련된 노동의 가치를 저하시켜 노동자계급을 빈곤층으로 전락시켰고, 전통적 농업의 가치 역시 절하되어 농민들 역시 절대적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기술적 진보가 민중의 삶의 실질적 개선으로 이어지지 않는 이 상황은 사회주의나 공산주의와 같은 급진적 혁명 사상을 낳기도 했다.
또 한 가지 사실주의의 배경으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지각 방식의 변화다. 19세기에 과학주의 혹은 **실증주의가 사회의 지배적 사고방식으로 자리 잡으면서 사람들은 이른바 **‘아우라적 지각‘에서 벗어나 눈앞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냉정하게 바라보게 된다.
이 산문적 세계에서는 그동안 회화에 제재를 제공해주었던 신화/성서/역사 혹은 낭만적 환상의 세계는 당연히 설 자리를 잃는다. 카메라의 발명과 보급 역시 현실에서 아우라를 벗겨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지각의 수단이 육안에서 렌즈로 바뀜으로써 세계는 시적 분위기를 잃어버리고, 냉정한 관찰한 기록의 대상이 된다. 한마디로 사실주의는 이 변화한 지각 방식에 조응하는 예술 양식이었다.
71-3쪽
<3. 라파엘전파>
**1850년을 전후하여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는 탈아카데미 운동이 거의 동시적으로 일어났다.
당시 영국의 아카데미는 미켈란젤로의 선묘, 티치아노의 색채, 무엇보다 라파엘로를 모법으로 삼아 이탈리아 **친퀘첸토(Cinquecento, 1500년대) 양식을 지루하게 반복하고 있었다.
매너리즘에 빠져서 피상적인 손재주만 발달한 곳에서 예술적 성취가 나올 리 없다. 그래서 죽은 예술에 다시 생명을 위해 라파엘 이전으로 돌아가려 했던 것이다.
여기서 **‘라파엘 이전‘이라 함은 구체적으로 콰트로첸토 (Quattrocento, 1400년대)를 가리킨다. 이 시기의 미술은 풍부한 세부와 강렬한 색채, 그리고 복잡한 구성으로 특징지어진다.
르네상스가 완성되기 이전이라 콰트로첸토의 미술에는 여전히 중세 회화의 면모가 남아 있었다. 라파엘전파가 1400년대로 되돌아가려 한 것은 ‘현대예술 최초의 위대한 해방 전사‘라는 세간의 찬사를 무색하게 한다.
**새로운 언어를 찾아 과거로 돌아가는 것은 ‘현대적‘ 이라기보다는 ‘반동적 태도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라파엘전파는 19세기 초 빈과 로마에서 활동한 나자렛파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자렛파는 종교개혁 이전의 경건한 가톨릭 신앙으로 되돌아가려는 복고적 예술운동이었다. 나자렛파와 라파엘전파 사이에는 물론 중요한 차이가 있었다. 나자렛파가 고전적 이상미에 집착했다면, **라파엘전파는 그 어떤 예술의 인습에 얽매이지 않고 신이 창조하신 세계를 있는 그대로, 눈에 보이는 모습 그대로 묘사하려 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라파엘전파는 신에 대한 종교적 경건함과 *사진술을 통해 도입된 *과학적 지각의 방식을 하나로 결합시켰던 것이다.
이렇게 **중세적 태도에 **현대적 지각을 모순적으로 결합시킨 것이 바로 나자렛파와 구별되는 라파엘전파의 본질적 특징이다. 두 흐름 모두 과거로 돌아가는 복고적 경향을 보여준다 하나, ‘고전적 이상미에 사로잡힌 나자렛파와 달리 라파엘전파의 작품에는 거의 사진을 방불케 하는 사실적 묘사가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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