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스턴크래프트는 ‘생계를 위한 결혼‘이 일종의 **매매춘이라고 표현한 최초의 페미니스트였다. 이것은 당대로서는 충격적인 주장이었다.
여자들은 대개 *경제력이 부족하여 강제로 결혼을 했다. 남자의 인정에 의존하여 살다보니 모욕을 당하거나 사실상 남자들의 노예로 전락하기 일쑤였다.
울스턴크래프트는 자신들(18세기 계몽주의 사상가들)의 자유를 요구하면서 여전히 여성을 예속시키려는 남성의 **모순과 부당함을 비판한다. 또 여성이 남성보다 이성적이지 않다는 당대의 인식도 거부한다.
여성이 신체적으로는 약할지 몰라도 남성과 똑같이 이엇적으로 사고할 수 있다고 역설한다.
34쪽.
<기혼여성을 위한 권리>
19세기에는 미국과 마찬가지로 영국에서도 관습법에 의거해 기혼여성이 남성의 소유물로 취급됐다.
"**coverture(남편의 보호를 받는 기혼여성의 신분을 의미)"라고 불리는 종속적인 지위는 11세기 노르만인이 영국을 침략했을 때부터 존재했다.
1850년대부터 캘롤라인 노턴과 비버라 리 스미스 보디촌이라는 두 여성이 기혼여성의 신분에 관한 법을 뒤집기 위한 운동을 전개했다.
기혼여성의 신분을 규정한 법에 따라 남성 배우자는 가정 및 성생활과 관련된 자신의 요구를 분명히 따르도록 아내를 육체적으로 ‘훈육‘하고 구속할 수 있었다.
남성과 여성이 결혼하면 법에 따라 한 사람이 됐고 기혼여성은 미혼일 때 누렸던 모든 권리(유산, 부동산, 동산, 소유물)를 상실했다. 남편은 아내의 행동을 책임졌고 아내는 남편의 보호를 받으며 살았다.
부유한 집안에서는 형편법(equity law)을 이용해 가문에 속한 여성 구성원이 자신의 재산을 지킬 수 있게 보호했다. 혼전 계약으로 결혼이 지속되는 기간 동안 여성의 재산을 신탁 관리하고 모든 수익이 여성에게 귀속되로고 했다. 그러나 혼전 계약을 맺으려면 비용이 많이 들었기 때문에 굉장히 부유한 집안에서나 활용할 수 있었다.
73쪽
<피임, 산아제한>
- 피임기구의 역사 1700년대: 동물 내장을 이용해 콘돔이 제작된다.
1880년대: 자궁 경관을 막기 위한 고무 페서리가 탄생
1909년: 자궁 내 피임기구 (IUD)가 개발
1960년대: 대다수가 피임약을 사용할 수 있게 됨
1980년대: 체내에 삽입하는 호르몬 주입기구로 배란을 예방
1990년대: 호르몬 주사가 도입 2000년대: 피부에 부착하는 패치나 바르는 젤이 피임약으로 놀리 사용
<피임에 대한 접근> 19세기 말까지 피임은 초보수준. 질외 사정이나 키니네(키나나무 껍질에서 얻는 화합물)에 적신 스펀지를 질에 삽입하거나 백반과 물을 섞어 질에 주입하거나 콘돔을 끼우는 방벙이 있었다.
가톨릭교회와 개신교, 그리고 사회 전반적으로 피임을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피임이 혼외정사를 부추기기 때문이다.
1930년대에 이르자 최소한 기혼여성에 대해서는 산아제한이 사회적으로 용납됐다.
<산아제한 역사> 1873년: 미국에서 통과된 콤스톡법이 "비도덕적인 도구"라는 이이류 피임에 관한 문헌을 배포하거나 피임기구를 판매하는 행위를 법으로 금지
- 1965년: 미국 대법원이 부부에게 피임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한다. 1972년에는 독신자에게까지 권리르 확대
- 1970년: 영국에서 여성해방운동이 전개돼 자융로운 낙태와 피임을 요구
- "자신의 몸을 소유하고 통제하지 못하는 여성은 누구든 자유롭다고 말하지 못한다." / 산아제한 운동가 마거릿 생어
10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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