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오랜만에 글을 올린다.
오랜 시간 꿈만 꾸던 연구소를 작년 12월 23일 발족하였다.
달려갈 일만 남았다.
많은 생각과 변명은 뒤에 두고.
현재를 향해 돌진하는 미래적 희망을 포착하여 기투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몇 년 전 제주도 여행 중에 만난 한 여성분이 이런 말을 한 적 있다.
"홍대 무명시절부터 국카스텐 밴드를 좋아했어요. 그런데 <나는 가수다>에 출연하고 나서는 '나만이 아는 밴드'가 사라져서 너무 아쉬워요"
여행을 하다 보면 사람들에겐 알려지지 않은 장소를 발견하기도 하고,
별 기대감 없이 봤던 영화가 인생 영화가 되기도 하며
취향 저격을 하는 예술 작품을 만나기도 한다.
오늘은 나만이 아는 책들을 몇 권 소개할까 한다.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학문적 완성도가 있고
소위 남는 것이 많은
"숨어 있는 책들"을 소개할까 한다.
이미 잘 알려진 대중적인 책이나, 명작, 고전들은 제외했음을 밝힌다.
문자 그대로 숨어 있는 책 들이며, 나만이 알고 싶지만 동시에 누군가는 알아줬으면 좋겠다는 맘이 들게 하는 책들이다. (애서가라고 한다면 반가운 책들이 여럿 보일 것이라 생각한다)


1. 생각의 역사 1, 2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혼자서 이런 백과사전적인 책을 쓴다는 게 어떻게 가능할까?
20세기 사상 전체를 아우른 전대미문의 역사서다."
피터 왓슨의 <생각의 역사>를 '발견'한 것은 큰 행운이었다.
이 책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미술, 음악, 종교, 역사, 철학, 심리, 과학, 기술, 문학 등. 거의 모든 분야를 다룬다.
1권은 인류의 탄생에서 프로이트까지
2권은 20세기 역사 전체다.
개인적으로 2권을 더 추천하고 싶다.
1300여 페이지에 이르지만 다 읽고 나면 두껍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책꽂이 투쟁이 김흥식 작가는 <생각의 역사> 책을 두고 이런 말을 했다. (책꽂이 투쟁기 책 자체는 so so 하다)

운영하고 있는 카톡방 사람들과 몇 개월 동안 함께 책 읽기를 하면서 상당히 호평을 받았다.
21세기 모든 학문의 외연과 내포라는 이름의 '경계'가 붕괴되는 지적 ufc 시기에.
그리고 극한의 지적 유희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결코 후회 없는 선택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2. 좌우파 사전
2020년 한국 사회와 세계를 들여다 보면 꼭 구약 사사기 시대를 보는 것 같다.
"그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각 그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요즘은 너도나도 공부를 많이 해서 그런지 모두가 "자기 생각이 옳다 right"고 생각하는 것 같다.
자신이 틀렸다 wrong하다고 말하는 것은 시대정신에 어긋난 것만 같고, 겸손은 미덕이 아니다. 플렉스의 시대다.
자기중심성이 확장 & 보편화된 시대라 할 수 있다.
롤즈의 '무지의 베일 veil of ignorance'을 적용해서
자신이 누구인지, 성별, 나이, 지위, 고향, 학력, 재산, 종교 등을 무화 시킨 후
특정 정치사회적 이슈를 바라본다는 어떤 결과들이 도출될까?
애덤 스미스의 공평무사한 관찰자 impartial spectator나
스피노자 & 비트겐이 주장한 '영원의 관점에서 sub specie aeternitatis처럼
시공간을 초월하여 세계의 진실을 파악할 수 있는 인식능력은 인간에게 없다.
저런 철학적 개념은 말 그대로 이데아의 세계에 존재한다.
하지만 이데아라는 이상은 인간과 사회가 추구해야 할 불가능의 가능성이자
현실의 강력한 자기반성적 기능을 수행한다.
인간은 이데아의 세계가 아니라 하늘 아래 그리고 땅 위에 서 있는 존재다.
(인식과 윤리적으로) 불완전한 인간들이 모여사는 불완전한 사회 속에서 살아가다 보면 여러 의견들의 다툼이 생겨나기 마련이다.
tv와 같은 레거시 미디어뿐 아니라 youtube를 중심으로 한 뉴미디어 또한 빈약한 직관과 확증들이 콘텐츠를 잠식하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목도하게 된다.
죽기 전에 진정한 보수와 진정한 진보의 fair한 경기를 보고 싶다.
언젠가 꼭 보리라 믿는다.
언젠가는.
그리고 <좌우파 사전>이 작은 초석이 되었으면 싶다.
3.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
책 제목부터 도발적이다.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이라니 !
저자는 실제로 책을 읽지 않고도 당당하게 말하는 법에 대해서 아주 뻔뻔할 정도로 주장한다.
그렇다고 저자인 피에를 바야르를 지적 수준이 낮은 자기계발서로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그는 파리 8대학 프랑스 문학 교수이자 정신분석가이다.
저자는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를 한 번도 읽지 않았고 앞으로 읽을 계획이 없으면서 당당하게 율리시스 강의를 강단에서 이어오고 있다.
평론가 폴 발레리도 한 줄도 읽지 않은 문학에 대한 평론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 책을 읽어가다 보면 애서가들에게 일종의 해방감을 선사해 준다. 또 읽으면서 빵 터지게 만드는 포인트들이 숨겨져 있다.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서울대 필독서 100권,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세계고전 등.
죽기 전에 이 책들을 꼭 다 읽어야만 하나?
독서 자체가 즐거운 행위가 아니라 뭔가 뒤쳐지지 않기 위해서?
혹은 지성인이라면서 이 정도 책도 아직 읽지 않았어? 라는 말을 듣는 것이 두려워 책을 읽는다면 본말이 전도된 것이 할 수 있을 것이다.
읽으면 읽을수록 나 자신의 부족한 지식을 깨닫게 되면서,
읽지 않은 책들은 '반드시' 넘어야만 하는 산이라는 압박감에서 이제 해방될 시간이다.
호모 루덴스의 삶.
독서도 일종의 유희의 삶이다.
사피오 섹슈얼과 호모 루덴스의 삶을 지향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권하고 싶다.
그리고 같이 당당하고 뻔뻔하게 이야기 해보자.
"조이스의 율리시스는 말이야..!"
"역으로 말해 많은 비독서자들이 교양인이라면,
그것은 곧 비독서가 독서의 부재가 이님을 의미한다."
4. 대항해 시대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읽어내린 책이었다.
중세와 근대 중간 사이 (혹자는 근세라고도 하고, 저자 주경철은 근대 초라고 정의한다) 시대를 다루었다.(이미 많은 분들이 아시는 책이시리라)
대한민국학술원 선정 우수학술도서이니 믿고 읽을 수 있다.
개인적인 취향의 차이가 있겠으나, 학술서라기 보다는 마치 영화 <캐리비안의 해석> 시리즈의 한 대목을 읽는 느낌이었다.
흔히 모험이라고 하는 것은 아주 낯선 세계와 익숙한 있는 세계 그 사이를 여행하는 것이다.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낯선 세계는 공포이고, 상상할 필요가 전혀 없는 익숙한 세계는 권태라 할 수 있다.
이 중간 세계에 모험이 존재한다.
그런 의미에서 대항해 시대는 모험의 시대라 할 수 있다.
잘 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전혀 모른다고는 할 수 없는 시대, 근세(근대초)
<대항해 시대>는 아주 낯선 타자로서의 세계와 인류 보편으로서의 세계 둘 사이를 흥미롭게 서술한다.
역사책을 읽으면 자주 등장하는 동인도 회사, 해적의 삶, 근대적 군사혁명, 노예무역, 기독교와 문화적 충격과 교류 등.
전혀 모르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정확하고 온전히 안다고 말하기도 애매한 사건과 역사적 참여자들.
근대와 현대 세계는 어느날 짠! 하고 나타난 것이 아니다.
과거 무수한 사건들과 인물들의 우연과 필연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리라.
개인적으로 해적에 대한 삶을 다룬 부분과 라스카사스 논쟁 부분을 가장 흥미로웠고, 2019년 가장 큰 지적 만족감을 준 책이었다.
5. 사생활의 역사
전 5권 합해 거의 5,000여 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으로 일반 독자를 겨냥해 지난 2,000여 년에 걸친 인류의 역사를 전혀 새로운 관점에서 접근하는 책이다.
이 책은 이제까지의 모든 인문,사회과학적 흐름들이 이 시리즈 속에서 하나로 합쳐지고 이후의 모든 인간 탐구는 바로 이 시리즈에서 연원한다는 평을 들을 정도로 기념비적인 작업이라 할 수 있겠다.
출판사의 책소개대로, 풍속사와 예술사, 정치사, 표상들의 체계의 역사, 일상사 등을 하나로 결합시키고 있는 '아래로부터의 종합사'라고 할 수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징은 위에서 아래로부터라는 hierarchy식 방법론을 거부한다. 단지 현상을 선입견 없이 있는 그대로 존재자 being 그 자체를 관찰하고 서술하는 경향이 강하다.
<사생활의 역사>는 이런 노력들의 총합이라 할 수 있다. 단지 아쉬운 것은 유럽 위주의 사생활의 역사라는 점. 현재라는 시점이 1980년 대 후반이라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6. 거시사의 세계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중반까지는 거시사 중심의 역사라 할 수 있겠다.
아마 그 출발점은 헤겔과 마르크스가 아닐까 싶다.
헤겔의 절대정신과 시대정신.
그리고 마르크스의 프롤레타리아 독재로의 역사적 귀결은 19~20세기 지식인들과 역사 참여자들의 의식과 무의식을 좌지우지했다.
거시사는 기본적으로 이데올로기와 같은 하나의 개념이 세계를 설명하고, 영웅이라는 큰 인물의 영향력과 (1, 2차 세계대전과 같은) 역사의 큰 흔적을 남긴 역사 중심의 서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포스트모더니즘의 등장과 현실 공산주의의 붕괴는 거대 서사 혹은 거시사에 대한 몰락으로 이어졌다.
미시사는 거시사가 놓쳐왔거나 의도적으로 외면했던 많은 것들을 돌아보게 만들었다.
이제는 거시사, 거대담론 이야기를 하면 오히려 시대에 떨어지는 (혹은 시대정신을 거스르는) 취급을 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1세기에 '거시사'를 이야기하는 것은 인류가 국가나 전세계적 차원의 문제들(환경, 4차 산업혁명, 세계화, 빈부격차, 자원전쟁, 테러리즘 등)에 미시사가 온전히 답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리라.
인류는 지금 어디에 서 있으며,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에 대한 큰 그림 big picture을 미시사는 보여주지 못한다.
<고갱, 우리는 어디에서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어디로 가는가?>
저자 요한 갈퉁은 사마천에서 가이아 이론에 이르기까지 20인의 거시사를 다룬다.
이 책의 장점은, 요한 갈퉁이 거시사의 강점과 함께 한계점도 명확히 밝힌다는 것이다.
" 거시사가들은 통찰력을 지니고 있지만 그들의 말이 늘 맞는 것은 아니다. 한 사람만 보아도 그렇고 여러 명을 합해도 그렇다. 흔들림 없는 최종적 진리하는 의미에서 미래는 알 수 없는 것이고, 현재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과거도 그러하다.
어떤 거시사도 절대적 진리가 아니며, 안티거시사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거시사가들이 말하는 긍정적인 조언보다, 어떻게 하면 잘못될 수 있다는 그들의 경고를 더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p. 381)
ps. 내일 계속 이어 나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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