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는 시대는 더 이상 형이상학의 시대가 아니다... 이 시대를 사는 많은 사람들은 실용성과 현금가치가 없는 말에는 귀를 기울이려 하지 않는다. 이런 시대에 형이상학의 그 난해한 말들이 무슨 가치가 있을까?

자연이나 인간에 대한 오늘날의 지식은 2400년 전 아리스토텔레스 시대의 그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세분화/전문화되어 있지만 인간, 자연, 세계 전체를 아우르는 통합적 사유는 어디서도 찾기 힘들다. 많은 사람들은 세계 전체를 바라보는 통합적 안목에는 무관심한 채 자신들이 수행하는 연구의실용적 가치를 광고하는 데 온 힘을 기울인다. ‘무반성의 실용주의‘가 오늘날 학문의 대세라는 사실을 누가 부인할 수 있겠는가?

오늘날에도 형이상학을 읽을 가치가 있다면, 이렇게 전문화되고 파편화된 연구와 실용적 정보취득에 몰두하는 가운데 ‘잃어버린 사유의 길‘이 그 안에 제시되어 있다는 데서 이유를 찾아야 할 것 같다. 이 길은 ‘반성적‘이고 ‘통합적인 사유‘의 길이다.

이 길은 사실을 사실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것의 ‘근거‘를 묻는 데서 시작해서 우리를 아포리아 aporia로 몰고 간다. 인간만이 그런 사유의 길을 걷는다. 동물들은 "왜"라는 물음을 던지지도 않고 의문에 빠지지도 않기 때문이다.

형이상학은 "왜"라는 물음과의 궁극적인 대결의 장이며, 우리의 정신으로 하여금 동물적 삶의 감각적 확실성과 편협성에서 벗어나 인간과 세계 전체를 둘러싼 불확실성과 대면하면서 이를 탐구하게 만든다. 형이상학의 사유는 우리를 사유하는 존재가 되게 한다.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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