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살롱은 어떻게 예술과 사교의 중심지가 되었을까?
프랑스어 살롱(Salon)에는 ‘상류층 저택의 응접실‘ 이란 의미와 함께 사교 모임, 사교계, 전시회라는 의미, 미용실이나 고급 의상실이라 의미가 함께 담겨 있다. 살롱이란 말이 여성이 주도해 만든 사교모임에서 유래했다 보니 뷰티, 패션의 공간과 사교의 공간으로서 역할을 해서다.
17~19세기 상류층 귀족 부인들은 문학, 예술 등 문화계 인사들을 집으로 초대해 객실을 내주고, 식사를 대접하면서 작품 낭독과 비평, 자유 토론의 자리를 만들었다. 귀족과 예술가, 지성인들이 대화하고 어울리는 공간이 바로 응접실인 살롱이었다.
당시 살롱에선 남녀 노소, 신분, 직위와 상관없이 평등하게 대화하고 토론했다고 한다. 신분제도가 존재한 시대였음에도 귀족들이 문학, 미술 등 예술가와 지성인에게 관대함을 베풀었던 이유는 취향 때문이다. 살롱에서는 누가 지위가 높은지, 누가 돈이 많은지 관계없이 누구의 취향이 더 세련되고 멋진지, 누가 더 매력적인 사고를 하는지를 중요하게 여겼다.
적어도 살롱이란 공간 안에서는 자유가 넘쳤다. 살롱 문화는 당시 문화, 미술에 자양분을 공급했고, 살롱이 하나의 창작 공간으로서도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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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롱 문화는 중세 유럽의 궁정을 중심으로 시작된 문화로 여성의 지위가 향상되기 시작한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에서 촉발되었고, 17세기 프랑스에서 본격적으로 확산되었다. 살롱이란 말이 이탈리어어 살로네(Salone)에서 유래한 건 이런 배경 때문이다.
살롱을 여는 것은 여성의 역할이었다. 사회 활동에 제약이 있던 상류층 귀족 부인에겐 자기 집이란 공간만큼은 자신의 맘대로 할 수 있는 장소였기에, 응접실을 사교 모임의 공간으로 삼는 건 당연한 선택이었다.
처음에는 상류층 귀족 부인들이 시작했지만, 이후 신흥 계급으로 등장한 부르주아층 부인들이 나섰고, 심지어 남성들이 주최하는 살롱도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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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또한 문학, 미술 중심이었다가 나중에 철학, 정치, 과학 등으로 확대되었다. 사교 공간이자 정보 유통 공간, 새로운 작품의 공개 공간 등으로 활발하게 사랑받던 살롱은 19세기 이후부터 퇴색되기 시작했다. 카페가 등장하면서 굳이 귀족이나 부잣집의 응접실에 모일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누구나 자유롭게 들어올 수 있는 카페가 사교 공간이 되고, 신문과 저널리즘이 발달하면서 정보나 뉴스, 새로운 작품의 공개 공간이 되자 살롱은 그 기능과 의미를 상실했다.
19세기 파리의 카페는 문학과 예술을 위한 포럼으로서 역할을 했다. 확실히 살롱 문화를 대체하는 성격이다. 살롱이 귀족 부인들이 주도하고 주최하는 장소였다면, 카페는 보다 수평적이었다. 살롱 문화에 평등한 분위기가 있었다고 해도 주최자의 신분이라는 한계가 있었지만, 카페는 모임의 주도권마저도 일반인들과 예술가들이 가지는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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