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치에서 성체로 변태하는 데서 볼 수 있듯이 나비는 변화와 가면성의 표상이자 죽음 이후의 부활, 정신과 영혼의 상태(그리스어에서 나네는 영혼과 동의어), 그리고 아주 미세한 변화에 대한 민감성 (카오스 이론에서 말하는 나비 효과)의 표상이기 때문에 나비를 선택했던 것입니다.
예술이 응용된 아포리아의 형태라고 할 때, 예술의 과장은 모호함, 당혹스러움, 불확실성, 그리고 결과에 개방된 의미론을 환영합니다. 예술은 상호정합적인 것 속에 모순을 집어넣음으로써 우리를 싱크리티즘적인 무지(無知)의 경계로까지 데려가서 우리의 가변현실을 불안정하고 비결정적인 상태로 열어둡니다.
아포리아는 또한 우리의 자아에게도 적용됩니다. 아시디시피 ‘세컨드 라이프(Second Life)‘는 가상세계를 우리의 일상적 현실과 결합시키면서 ‘새로운 존재론‘을 만들어내고있습니다. 나아가 나노 기술을 통해 나노아포리아에 대해서 이야기할수도 있을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는 나노 모델에 따라서 미래의 형태를 결정하고 확률론적 행동을 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모든 창조적 탐구에 꼭 필요한 요소가 바로 나비 정신(butterfly mind)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싱크리틱 예술의 근본적인 속성, 다시 말하면 한곳에서 다른 곳으로 자유롭게 날아다니고 민첩하게 시각을 바꾸면서 탐구해야 할 기회와 극복해야 할 장애의 영역을 끊임없이 다시 점검하는 능력입니다.
대학이나 아카데미의 무덤에 누워있는 터널처럼 협소한 환원주의적 비전의 주창자들은 이런 나비 정신 에 조소를 퍼붓습니다. 그들에게 아포리아란 그저 모순과 혼란에 사로잡힌 상태로 여겨질 뿐입니다. 하지만 본디 나비 정신은 텔레마티크 문화로 우리에게 가져다준 선물로, 마치 나비가 꽃가루를 옮기듯이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한 사이트에서 다른 사이트로 신속하고 다채롭게 옮겨 다니는 능력입니다.
22쪽.
존재의 모호성이란 이제 우리가 여러 개의 인격을 동시에 갖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디지털 또는 후기 생물학적 방식으로 자신이 원하는 대로 여러 가지 모습을 취할 수 있습니다.
21세기의 자아는 생성적이고 창발적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세컨드 라이프라는 개념을 좋아하는 것입니다. 세컨드 라이프에는 다양한 서사들이 있고, 정체성을 만들어내는 게임들이 있습니다. 그 안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형태를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지요. 이렇게 변형적 인격을 추구하는 것은 바로 미디어아트가 추구하는 목표와도 일치합니다.
공간이동은 정보와 기억에서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양자물리학의 상태에서 봤을 때 전자와 원자는 동시에 두 곳에 있을 수 있습니다. 양자역학에서는 하나의 )상태가 상호작용 없이 다른 장소로 이동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24쪽
인간전 차원에서 보면, 우리가 상태의 겹침(superposition) 속에 존재할 수 있습니다. 즉 한곳에 있으면서 동시에 다른 곳에도 존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태의 비물질성과 창발적 물질화에 대한 테크노에틱 연구를 통해 우리 자신의 정체성을 새로이 정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20세기에는 많은 것으로부터 하나(e pluribus unum)‘, 즉 통일된 자아, 통일된 문화, 통일된 시간, 통일된 공간이 중요한 화두였습니다.
하지만 밀레니엄이 시작되는 지금의 기치는 ‘하나로부터 많은 것(ex uno plures)‘ 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많는 자아, 많은 현존, 많은 세계, 많은 의식의 수준 중에서 하나를 고를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25쪽.
- 다중자아들 multiple selves
- 테크노에틱 technoetic : 기술을 의미하는 techno와 인식을 의미하는 ‘noesis‘를 합성한 신조어의 형용사형. 테크노에시스technoesis는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인간의 지식능력이 확장되고 강화됨으로써 발생하는 새로운 차원을 가리킨다.
- 싱크리틱 syncretic : 함께를 의미하는 syn과 크레타 사람을 의미하는 cret를 합성한 형용사. syncretism신크레티즘은 서로 다른 종교적, 정치적 갖고 있던 크레타의 부족들이 거대한 외적을 맞아 서로의 차이를 접어두고 함께 단결하여 대응하던 관행에서 비롯된 말로, 이질적인 요소들이 전체 속에서 모순과 모호함을 그대로 간직한 채 융합되어 있는 상태를 가리킨다.
21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