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리다 & 들뢰즈 : 의미와 무의미의 경계에서 - 데리다 들뢰즈 지식인마을 33
박영욱 지음 / 김영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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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 반복 (repetition)
들뢰즈에게 반복이란 결코 같은 것의 되풀이가 아니다. 니체의 주사위 던지기처럼 주사위를 던지는 행위를 반복하지만 항상 똑같은 결과가 되풀이되는 것이 아니다. 들뢰즈는 반복을 같은 것, 즉 동일성을 만들어내는 기제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에 따르면 박복은 오히려 차이를 만드는 것이며, 차이는 반복의 결과이다.

* 파레르곤 parergon
파레르곤은 에르곤ergon과 대비되는 용어이다. 에르곤이 작품의 본질을 의미한다면 파레르곤은 작품의 본질이 아닌 주변적인 것 혹은 장식적이거나 부수적인 것을 의미한다.
데리다에 따르면 예술작품에는 원래부터 본질적인 것과 주변적인 것을 구분하는 틀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본질적인 것도 아니고 주변적인 것도 아닌 틀 자체가 예술작품의 의미이다.


*도식 scheme
칸트에 따르면 인간의 지성적 사유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감성적인 상상력이 필요하다. 가령 원이라는 개념을 이해하려면 원이라는 형상을 머릿속에 떠올릴 수 있어야 한다. 이때 원이라는 형상은 특정한 원의 형상이 아니라 모든 원에 공통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형상이다.
따라서 이 형상은 원이라는 개념이 가능하기 위한 일종의 규칙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상상력에 의한 보편적 형상을 칸트는 도식이라고 부른다.

* 파르마콘 pharmakon
원래 약을 지칭하는 희랍어이다. 플라톤에 따르면 소크라테스는 문자(글)를 파르마콘에 비유하였다. 그 이유는 약이란 경우에 따라서는 말 그대로 약이 되지만, 반대로 독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가열 두통약은 통증에는 좋지만 위에는 매우 큰 손상을 가져온다.
마찬가지로 문자는 말을 기록하여 영원히 보존하고 널리 전파할 수 있지만, 말하는 사람으로부터 벗어나서 의도가 왜곡되어 말 자체의 의미를 헤칠 수도 있다.

*다양체 multiplicity
다양성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다양성이라 외형상 다채로움을 의미한다. 하지만 들뢰즈의 다양체는 어떤 존재 자체가 지니고 있는 무궁무진한 잠재적 가능성을 의미한다. 이 세상의 어떤 존재도 무궁무진한 잠재성을 지닌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사물의 모습은 다양체로서의 그 사물이 겉으로 드러난 일부의 외양에 지나지 않는다. 간혹 사물에 대한 우리의 정보를 사물 자체와 동일한 것으로 간주할 경우 우리는 사물 자체가 지닌 잠재성을 차단하고 있는 것이다.

* 합목적성 purposiveness
어떤 존재에 목적이 내재해 있음을 의미하는 말이다. 가령 비행기의 날개는 그냥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동체가 날 수 있고 나는 동안에는 균형을 유지할 수 있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비행기의 날개는 어떤 목적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나아가 어떤 비행기의 날개가 비행과 균형유지에 적합한 모습으로 만들어져 있을 때 그것을 합목적적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표상 representation
재현이라고 번역하기도 하며 때로는 표상이라고 번역하기도 한다. 표상을 의미하는 영어의 representation이나 불어의 repre‘sentation에 비해서 독일어의 vorstellung이란 vor(앞에) stellen(가져다 놓음)의 합성어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어떤 것을 앞에다 가져옴이 표상일 터인데, 가령 내 앞에 있는 가죽을 된 속이 비어있는 구를 보고 축구공이라고 부르는 것은 ‘축구공‘이라는 표상을 그 사물 앞에 내세우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표상적 사고란 우리의 세상이나 사물을 우리의 개념 혹은 표상을 덧씌워서 설명하는 것을 의미한다.



* 표상 체계의 폭력을거부하다.

데리다와 들뢰즈가 ‘개념을 폄하‘하는 것은 세상을 개념으로 파악할 경우 ‘세상의 다양성‘이 사라져버린다는 우려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의 철학이 개념에 저항한다는 것은 곧 ‘현실의 풍부함‘을 되찾겠다는 노력과도 일맥상통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의 철학에는 개념을 최고의 가치로 숭상하면서 이 세상을 개념과 동등한 것으로 취급하려는 기존 철학자들의 사상을 극복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

 기존 철학자 중에서도 개념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이 세상의 모든 진실은 개념이라고 주장하면서 가장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사상가는 독일의 철학자 게오르크 헤겔Georg Hegel, 1770~1891이다. 이 세상을 ‘개념으로 파악하는 것은 헤겔 철학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변증법도 세상을 개념적으로 파악하기 위한 방법론의 일종이었다.

 헤겔이 개념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도 결국 차이가 아닌 동일성의 중요성을 나타내기 위해서였다. 그에게 차이란 곧 불완전함을 의미하는 것이었으며, 이 때문에 그는 차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가령, 우리의 지식을 생각해보자. 우리가 알고 있는 수많은 지식이 정작 이 세상의 본래 모습과 다르다고 해보자. 세계에대한 우리의 지식이 정작 세계 자체와 차이가 난다면 그 지식은 분명 불완전한 것이다. 그래서 헤겔은 궁극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실재의 모습이 동일한 완전한 지식을 꿈꾸었다.

완전한 지식을 꿈꾼 사상가는 헤겔만이 아니었다. 아니, 그려 플라톤 Platon, BC 428?-347? 이래 근대에 이르기까지 서구의 사상은 줄곧 세상의 본래 모습과 ‘동일한‘ 지식을 추구해왔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그런데 헤겔이 살았던 근대는 인간의 지식이 완전함을 증명하기 위해 세계를 인간의 지식과는 독립하여 존재하는 것으로 보는 것을 거부하는 특성이 있었다.

헝가리 출신의 사상가 죄르지 루카치는 근대 철학의 특징을 "세계를 더 이상 인식 주체와 독립하여 성립하는 그 어떤 것으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고, 오로지 세계를 인간 자신의 산물로서 파악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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