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루덴스 - 놀이하는 인간
요한 하위징아 지음, 이종인 옮김 / 연암서가 / 2010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중세인들 앞에 놓인 삶에는 세 가지의 길이 있었다고 말한다.

하나는 이 험난하고 참단한 세상을 부정하는 길이다.

두 번째는 그런 세상에 정면으로 도전하여 그것을 더 좋고 더행복한 세상으로 만드는 길이다. 

세 번째는 더 좋은 세상을 직접 만들지는 못하지만 그것을 꿈꾸는 것이다. 만약 지상의 현실이 절망적일 정도로 비참하고 그 세상을 부정하는 것이 어렵다면 빛나는 환상의 꿈나라에 살면서 그러한 이상의 환호속에서 지저분한 현실을 아름답게 채색하는 것이다.

 하위징아는 중세 후기의 꽃인 기사도와 궁정 연애에서 이 세 번째의 길을 발견한다. 이것을 『호모 루덴스>의 언어로 말해보자면 진지함의 세계에서 벗어나 놀이의 세계로 들어갈 때 문화가 더욱 강력하게 추진된다는 것이다. 

하위징아는 자신의 작품이 성공작으로 평가받을 만한 구석이 있다면 자신의 행복한 발명과 기발한 상상력 덕분이라고 말했는데, 이 상상력의 발휘는 곧 놀이 정신과 상통한다. 

실제로 『호모 루덴스의 개략적 주제를 밝히는 1장 놀이는 문화적 현상이다. 그 본질과의미"에서 하위징아는 이런 말을 하고 있다.

우리는….. 어린 시절 이런 종류의 연기를 펼칠 때 상상력(imagination)이 충만했다는 것은 알고 있다. 어린아이는 실제의 자신과는 다른 어떤 것, 더 아름다운 것, 더 고상한 것, 더 위험스러운 것의 이미지를 만들고 있는(imaking an image) 것이다. 그렇게 하여 아이는 왕자가 되고 아버지가 되고 사악한 마녀가 되고혹은 호랑이가 된다. 어린아이는 문자 그대로 기쁨에 넘쳐 자기자신의 밖으로 나가 버린다(beside himself), 너무 황홀하여 그 자신이 왕자, 마녀, 호랑이가 되었다고 생각하며 그러는 중에서도 "일상적 현실"에 대한 감각을 유지한다. 그의 재현(다른 어떤 것이 되기)은 가짜 현실이라기보다 외양의 실현이다. 바로 이것이 imagination의 원뜻이다.

14-15쪽. 이종인 역

나는 지난 여러 해 동안 문명이 놀이 속에서(in play), 그리고 놀이로서(as play) 생격나고 또 발전해 왔다는 확신을 굳혀 왔다.

21쪽.

놀이의 존재는 인간적 상황의 초논리적 특성을 끊임없이 확인해 준다. 동물들은 놀이를 하기 때문에 기계적 사물 이상의 것이 될 수 있다.

34쪽.

은유라는 것이 실은 말을 가지고 하는 놀이이다. 이런 식으로 삶을 표현하는 과정에서 인간은 자연의 세계 바로 옆에 제2의 세계, 즉 언어의 세계(시의 세계)를 창조했다.

또는 신화의 세계를 살펴보자. 이것 역시 외부 세계의 변모 혹은 ‘이미지 만들기(imagination)‘이다.

원시 사회는 신성한 의례, 희생, 성화, 신비를 수행했다. 이런 예식은 모두 세상의 웰빙(안녕과 복지)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순수한 놀이 정신의 구체화이다.

문명 사회의 위대한 본능적 힘인 법과 질서, 상업과 이익, 기술과 예술, 시가, 지혜, 과학 등은 신화와 의례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이 모든 것이 놀이라는 원초적 토양에서 자양을 얻는다.

36쪽.

사람들의 일반적인 생각으로 놀이는 진지함의 정반대 개념이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놀이와 진지함의 대립 관계는 확정적인 것도 고정적인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어떤 놀이는 아주 진지하기 때문이다.

37쪽

놀이의 유의미한 기능이 인간과 동물에게 공통인 반면, 웃음은 인간에게서만 발견되는 생리적 행위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웃는 동물(animal ridens)"이라는 개념은 호모 사피엔스보다 더 확실하게 인간을 동물로부터 구분해 준다.

38쪽

놀이는 어리석지 않다. 그것은 지혜와 어리석음이라는 대립 관계를 초월한다.

놀이는 지혜와 어리석음의 대립적 관계, 나아가 진리와 허위, 선과 악 등의 대립 관계 바깥에서 존재한다. 놀이가 비물질적인 활동인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도덕적 기능을 가진 활동은 아니다. 선과 악의 평가 기준은 놀이에 적용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놀이 그 자체에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다고 할 수 없다. 놀이는 생활의 한 기능이지만 논리적, 생물적, 미학적 정의들 중 어느 하나도 포섭되지 않는다.

40쪽.

무엇보다 모든 놀이는 자발적 행위이다. 명령에 의한 놀이는 더 이상 놀이가 아니다. 기껏해야 놀이를 모방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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