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 패러독스 1
피에르 바야르 지음, 김병욱 옮김 / 여름언덕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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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저런 책을 읽지 않았다는 건 교양인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비록 그가 그 책의 ‘내용‘을 정확히 모른다고 하더라도, 종종 그 책의 ‘상황‘, 즉 그 책이 다른 책들과 관계 맺는 방식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책의 내용과 그 책이 처한 상황의 이러한 구분은 중요하다.

사실 나의 지적 도서관은 다른 모든 도서관이 그렇듯이 여러 구멍과 빈자리들로 이루어져 있으나 사실 그것은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32쪽

어떤 책은 우리 인식의 장으로 들어오는 즉시 낯선 책이 아니게 되며, 그 책의 내용에 대해 전혀 모른다고 해도 그 책을 꿈꾸거나 그것에 대한 토론을 하는 데 전혀 장애가 되지 않는다.

호기심과 교양을 갖춘 사람은 책을 펼쳐보기 전에, 책의 제목이나 표지를 한 번 흘깃 보는 것만으로도 일련의 이미지와 인상들을 떠올리게 되며, 이 이미지와 인상들은 일반 교양이 책들 전체에 부여하는 표상의 도움을 받아 곧 최초의 견해로 탈바꿈하게 되는 것이다.

어떤 책을 그런 식으로 극히 일과적으로 만났을 뿐 영원히 그 책을 펼쳐보지 않는다 할지라도 비독서자에게 그 만남은 진정으로 그 책을 자기 것으로 만다는 단초가 될 수 있으며, 그겋게 볼 때 처음 만나는 순간 곧바로 낯선 책이라는 지위를 잃게 되지 않는 책은 없을 것이라 할 수 있다.

33쪽.

무질의 사서가 택한 비독서의 특징은 그의 태도가 수동적인 게 아니라 적극적이라는 점에 있다. 교양을 쌓은 많은 이들이 비독서자라면, 역으로 말해 많은 비독서자들이 교양이라면, 그것은 곧 ‘비독서가 독서의 부재가 아님‘을 의미한다.

그것은 무수히 많은 책들 속에 침몰당하지 않기 위해 그 책들과 체계적으로 관계를 맺고자 하는 하나의 진정한 활동이다. 그런 점에서 그것은 옹호 받아야 할 뿐 아니라, 나아가 교육의 대상이 될 만한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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