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피스토펠레스 - 악의 역사 4, 근대세계의 악마
제프리 버튼 러셀 지음, 김영범 옮김 / 르네상스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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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을 통해 프로테스탄트와 가톨릭 사이가 갈라지면서 분열의 과정이 시작되지만, 원래 프로테스탄티즘은 악마론에 관한 한 가톨릭의 전통을 따라왔기 때문에, 이 개념이 결정적으로 갈라지는 것은 17세기 말에야 겨우 가시화된다. 

그 당시에, 마녀광란이 불신을 받게 되자 악마의 개념도 함께 불신을 받게 되었고, 18세기 계몽주의에 나타난 합리론적인 철학들은 기독교 전통의 인식론적인 토대를 침식해 들어갔고 더 나아가 악마론도 약화시켰다. 

18세기 말에 이르러 대부분의 교육받은 사람들(기독교인들을 포함해서)은 악마의 개념을 폐기할 태세였다. 그러나 바로 그때, 낭만주의의 영향으로 강력하고 양의적인상징으로서 악마가 되살아났다. 낭만주의 시대의 악마는 독재에 대항하는 고귀한 저항으로 인격화되거나 적어도 자유와 자기애(自己愛)라는 다소 모호한 전형의 역할을 하였다.

19세기 말에 이르러, 악마는 인간의 타락과 어리석음에 대한 냉소적인 은유로, 문학, 그리고 음악에서 상당히 대중적인 상징이 되었다.

20세기의 대량 학살과 전쟁은 근본적인 악에 대해 진지한 철학적 관심을 다시 불러일으켰고, 악마는 다시 한번 근대 신학이 다루는 진지한 주제가 된다.

8쪽.

아우슈비츠와 히로시마에서처럼 그렇게 악의 그림자가 극악무도하게 집단화되면서, 개인적인 김정에 연연하는 낭만주의자들은 무의미한 존재로 그 빛이 바래진다. 책임감이라는 것이 관료화되면서 근대 사회에서 엄청나게 집단화된 세력들에게 안나 아렌트가 말했듯이 악이란 것은 새삼스러울 것도 없게 되어버렸다. 

서류가 작성되면 유태인들은 신속하게 가스실로 보내질 수 있다. 익명으로 좌표가 설정된 지도가 만들어지면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없이 폭탄병들은 학교나 병원을 폭파할 수 있다. 이런 세계에서라면, 사자처럼 세상을 주유(周遊)하는 것보다는 책상 뒤에 앉아 있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것을 악마는 분명히 알게 된다.

 20세기 중, 후반에 기독교적인 전통은 점점 쇠퇴하고 있었다. 로마 제국의 개종 이래 최초로, 서양 문명의 본토에 사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가장 기본적인 종교적인 교리를 거의 전적으로 무시하면서 성장해왔다. 

이러한 공백 상태를 어느 정도는 마르크스주의(그 자체가 다양한 종교인)나 자유주의적 진보주의가 메워왔는데, 이 두 가지 사상은 모두 인간이 진보할 것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비록 진보론자들은 대체로 예정된 진보의 목표를 정의하지 않은 채 남겨두지만,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는 근거도 없는 믿음과 더불어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인간의 능력에 대한 파우스트적인 신념은 선과 악에 대한 직관을 어떠한 초월적인 실재에 근거하지도 않고 물질적, 기계적인 용어로 설명되는 심리적인 현상으로 환원해 버렸다. 그 결과, 모호하지만, 도덕적인 상대주의가 팽배하게 된다.

406쪽

대중적인 상대주의는 절대로 아무것도 모른다는 명제를 제외하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가정한다. ‘초월적인 가치‘란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것은 개인이나 사회적인 선호도에 따라 전적으로 상대적이다. 

진리란 역시 선호도에 의존한다. 지적인 유행들이 차례대로 끊임없이 서양 지성계의 관심을 끌어왔는데, 그 이유는 어떤 사상의 유효성을 판가름하는 기준은 진리에 얼마나 근사하는가보다는 그 사상의 ‘참신성‘이 되었기 때문이다.

20세기 말이 다가옴에 따라, 양립할 수 없다는 점이 무시된 채, 두 가지 세계관이 지배하게 된다. 한편으로는, 상대주의, 허무주의 그리고 문화적인 절망이,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의 진보에 대한 희망. 

이 두가지 부류의 사상은 절대적으로 모순이 된다. 왜냐하면, 목적이 없는 진보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목적지가 보스턴으로 정해졌다면, 보스턴을 향하는 한걸음 한걸음은 아주 작은 전진을 의미한다. 그런데 목적지가 없다면, 1만 마일로 날아가는 제트기를 타고 있어도 조금도 전진한 것이 못 된다. 

어떠한 초월적인 가치도 존재하지 않는다면, 모든목적은 상대적이고 자의적이며, 변화하고 있으므로, 전반적인 진보라는 사상은 허튼 소리가 될 뿐이다. 우리가 상대주의와 진보를 동시에 추구할 수 있다는 것은 거짓말이고, 어쩌면 아무런 희망도 없다는 두려움 때문에 우리는 거짓에 집착하게 된다.

40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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