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루비우스의 비례론에 대한 도해>
신체의 비례를 나타내는 이 도해는 르네상스 시기 신체의 이상형인 ‘균형잡힌 인간‘ 이라는 관념을 구현하고 있다. 조화로운 신체상의 척도는 운동과 정지, 행위와 사색 그리고 좌우의 긴장된 다리와 이완된 다리 사이의 관계를 통해 성취되었다. 상반되면서도 서로를 보완해주는 이 모든 역학이야말로 인물상에 한층 광범위한 철학과 문화적성향을 집약하는 내적 균형을 불어넣어 주는 것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9쪽
<그랑 오달리스크>
이슬람 왕실의 어자들이 거처하는 곳을 재현한 이 그림은 사실상 서구인들의 환상을 투사한 것이다. 동양 여성에 대한 서구인의 성적 에로티시즘을 앵그르는 그대로 반영한다.
사실성을 벗어나 신체를 왜곡시켰던 이유도 이러한 서구인의 오리엔탈리즘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오리엔탈리즘의 이면에는 여성의 몸을 에로티시즘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남성적 사고도 반영되어 있다. 여성과 남성의 몸이 각각 대변하는 이미지가 분리되고 있는 것이다.
앵그르의 〈그랑 오달리스크〉(1814), 루브르 박물관, 파리
10쪽
1808년 5월 3일
고야의 (1808년 5월 3일)은 그 전날인 5월 2일 나폴레옹 군대에 저항한 민중의 동기에 대해 프랑스 군대가 그 주동자를 처형하는 장면이다. 흥미로운 것은 처형을 집행하는 프랑스 군인들의 모습에는 얼굴이 그려져 있지 않다는 점이다.
얼굴은 몸 전체를 대신해주기도 하는 것이다. 그림에는 다만 기계처럼 가지런히 금속성을 드러는 총구들만 강조되어 있을 뿐, 군인들의 인간적인 체취는 흔적이 없다. 폭력에 젖어 있는 주체들의 비인간화와 기계화로 인간의 몸이 소멸된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고야의 <1808년 5월 3일> (1814), 프라도 미술관
11쪽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누구인가? 어디로 가는가?>
고갱은 인간본연의 원시적 순수성을 주로 여성의 육체를 통해 표현한다. 그는 유럽이 코르셋과 거들 덕분에 여성을 인위적인 존재로 만들고, 여성을 예민한 연약성과 육체적 열등성이라는 특징 속에 가두려하며, 보호하는 체하며 성장의 가능성을 모두 박탈한다고 보았다.
반면, 그를 매혹시켰던 타이티 여인의 관능은 동양의 신비한 베일에 싸인 숨겨진 관능이 아닌 자연 속에 혼융되어 스스로의 알몸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관능이다.
고갱의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누구인가? 어디로 가는가?〉(1897), 보스턴 미술관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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