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의 매체철학 -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철학의 정원 12
심혜련 지음 / 그린비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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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매체는 예전에는 매체 생산물의 단순한 소비자 또는 수용자에 머물렀던 사람들을 생산자의 지위로 끌어올렸다.

1960년대에 리처드 로티Richard Rotty가 ‘언어적 전회‘ linguistic turn를 이야기한 이래, 새로운 패러다임이 요구될 때마다 전회가 논의되곤 했다. 

매체적 전회‘medial turn, ‘이미지적 전회‘iconic turn 그리고 고간적 전회 spatial turn 등이 바로 그것이다. 전회란, 단순히 사유 내용의 전히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오히려 사유방식의 전회까지도 포함한다. 

각각의 전회는 언어, 매체, 이미지 그리고 공간을 새롭게 중요한 철학적분석 대상으로 삼을 뿐만 아니라, 사유 그 자체를 언어적, 매체적, 이미지적 그리고 공간적으로 할 것을 요구한다. 

매체적 전회도 마찬가지다. 매체적 전회의 관점에서 진행된 철학적 탐구는 1980년대 들어서 매체철학‘ 또는 매체미학‘이라는 이름으로 철학 영역에서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14쪽

매체철학은 매체와 사유의 관계, 그리고 특정 매체 시대에 그 매체를 사용하는 주체의 변화 등에 주목한다.

매체미학은 이런 문제들과 더불어 매체와 지각 작용의 상관관계, 그리고 매체로 인한 예술작품의 생산과 수용의 변화 등에 주목한다.

16쪽.


귄터 안더스Günther Anders는 많은 면에서 아도르노의 이론을 계승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아도르노가 문화산업이라는 이름 아래 대중매체에 대해 매우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었던 것처럼 안더스 역시 그러하다. 

차이점이 있다면 아도르노가 주로 대중음악과 영화를 중심으로 비판하고, 또 진정한 예술이라는 관점에서 문화산업 전반을 ‘예술의 탈예술화‘ 현상으로 보았던 반면, 안더스의 주된 비판의 대상은 텔레비전이라는 점이다. 이는 그의 이론이 1950년대의 문화 현상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다는 데서 기인한다. 

또한 아도르노가 ‘관리되는 사회‘ 안에서 비판적 기능을 할 수 있는 예술을 기대했기 때문에 문화산업을 비판했던 것과는 달리, 안더스는 텔레비전 이미지를 중심으로실재와 가상의 문제를 다룬다. 

그는 텔레비전 시대를 제2의 산업혁명 시대라고 규정하고, 이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는 인간의 상황을 ‘인간의 골동품성‘이라고 규정한다. 그리고 이러한 인간이 텔레비전 시대에 어떻게 혼란을 겪게 되는지를 서술한다. 

안더스 이론의 핵심은 텔레비전이 만들어 내는 ‘팬텀‘Phantom이 결국 실재를 지배하게 된다는 데 있다. 그는 단지 텔레비전만을 중심으로 이러한 상황을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아가 기술그 자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

19쪽

프리드리히 키틀러Fridrick Kittler는 20세기에 등장한 대표적인 아날로그 매체로 축음기, 영화 그리고 타자기를 꼽으면서, 축음기는 소리를, 영화는 이미지를 그리고 타자기는 문자를 기록한다고 보았다. 그에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 시대의 기록매체들이었다. 

그는 이들의 기록 방식을 분석하는 것에서 나아가 이들 각각을 라캉의 정신분석학적 패러다임과 연결시킨다. 축음기는 실재계와, 영화는 상상계와 그리고 타자기는 상징계와 연결시켜서 아날로그 매체들이 어떻게 이러한 정신분석학적 패러다임을 대체하고 있는지를 보여 주고 있다.

키틀러는 디지털 매체 시대에는 이러한 매체적 분리가 해체된다고 보았다. 딱히 키틀러의 이론을 비롯한 매체철학적 관점을 취하지 않더라도,
즉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아도, 디지털 매체의 특징은 여러 가지 분리된 매체를 하나로 통합하는 복합매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아날로그 매체가 대중매체라는 형태로 대중문화를 형성했다면, 디지털 매체는 개인용 컴퓨터와 태블릿PC 등 일인매체를 통해 이전과는 또 다른 개인매체 문화를 형성했다. 그런데 이 개인매체 문화는 동시에 대중문화이기도 하다. 

이러한 매체 상황 속에서 디지털 매체는 그것이 소리든, 이미지든 또는 문자이든 간에 디지트digit라는 비물질적인 정보의 형태로 모든 것들을 기록하고 전송한다. 

디지털 매체의 등장 이후 본격적인 매체철학이라는 분야가 등장했는데, 이는 디지털 매체가 우리의 일상생활과 문화예술 그리고 사유에 미친 영향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21쪽

 디지털 매체 부분에서 가장 먼저 다루고자 하는 철학자는 장 보드리야르 Jean Baudrillard다. 보드리야르의 이론은 딱히 디지털 매체 시대로 한정할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의 매체이론은 아날로그 매체에서 디지털 매체 전반을 아우르고 있기 때문이다. 

보드리야르의 이론은 어떤 측면에서는 아날로그 매체 시대에 텔레비전을 중심으로 실재와 가상의 문제를 분석했던 안더스의 이론과 같은 이론적 궤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보드리야르 또한 매체를 둘러싼 핵심 문제를 바로 실재와 가상의 문제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둘이 비판하고자 하는 핵심은 전혀 다르다. 안더스가 실재가 가상에 의해 지배받게 된 상황을 비판했다면, 보드리야르는 우리가 실재라고믿었던 것의 가상성을 폭로했다. 가상은, 실재가 가상임을 감추기 위한 고도의 전략으로서 필요하다는 것을 드러내고자 했던 것이다. 

따라서 이 책에서는 보드리야르가 새롭게 제시하는 시뮬라크르Simulacre과 하이퍼리얼Hyperreal이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그가 이야기하는 실재의 가상성이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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