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물정의 사회학 - 세속을 산다는 것에 대하여
노명우 지음 / 사계절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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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하고 악의 없는 상식적 희망도 악마적 결론을 낳을 수 있다. 개인은 소박한 꿈을 따를 뿐이지만, 부자 되기가 유일한 상식이 되는 순간 몰상식이 시작된다.

모든 사람이 부자가 되겠다고 부동산 투기에 나서고, 이과생들이 기초과학을 멀리하고 돈벌이가 된다는 이유로 모두가 의사만 되려 하고, 모든 의사 지망생이 성형외과 전문의를 선택하는 상황은 상식에서 분명 벗어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몰상식한 상황 속에 있는 사람들 각각이 상식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각자 상식적인 판단을 한다. 단지 각자의 상식적인 판단이 모였을 때, 무시무시한 몰상식이 생겨나는 것이다.

상식과 상식이 서로 견제할 때는 몰상식이 생겨나지 않는다. 하나의 상식만이 존재하는 사회가 비상식적인 사건을 낳을 뿐이다. (자폐적 사유가 자라는 온상)

<옥중수고>에서 그람시는 상식의 역설에 대해 성찰한다. 상식은 힘이 세다. 양적 다수에 근거한 보편성이기 때문이다. 상식을 잘 이용하는 사람은 다수의 지지를 확보하기 쉽다. 자신의 생각을 시대의 상식으로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세상을 장악할 수 있다.

상식이 바람직함을 갖추면 양식이 된다. 하지만 상식은 양식보다 힘이 세다. (...)

상식에는 없는 올바름을 갖추고도, 양식은 상식과의 경쟁에서 대체 왜 늘 지고 마는 것일까? 이유는 상식과 양식의 말투 차이에 있다.

상식은 상냥하고 어루만져 주는 어투를 사용하지만, 양식은 공식적이고 엄격하고 훈계하는 말투를 사용한다. 상식이 나를 무조건 이해해 주는 연인 행세를 한다면, 양식은 냉정한 심사위원과도 같다.

27-29쪽.

진보주의가 가르치는 말투를 유지하는 한, 상식을 이용하되 상식의 잘못된 점은 문제 삼지 않는 대중문화와의 싸움에서 패배할 수밖에 없다. 상업주의와 보수주의자들이 대중의 상식을 기막히게 이용하는 능력을 갖추었다면, 지식인과 진보주의는 상식을 대체할 양식을 훈계의 어투로 늘어놓는 능력만을 갖고 있을 뿐이다. 

말투의 차이로 인한 설득력 때문에 올바른 내용일수록 대중에게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는 지독한 역설이 벌어진다.

감옥에 갇힌 그람시는 지식인의 한계에 대해 생각한다. ˝대중적인 요소는 느낌인 반면 항상 앎이나 이해는 아니다. 이에 반해 지식인적 요소는 ‘앎‘이지만, 항상 이해는 아니며, 특히 느낌은 더더욱 아니다. …… 지식인의 오류는 이해나 심지어 느낌 및 열정 없이도 알수 있다고 믿는 데 있다. ..….…  즉 민중의 기본적 열정을 느끼고 이해함이 없이도 지식인일 수 있다고 믿는 데 있다.˝ 대중의 느낌을 장악하지 못하는 한 진보주의는 올바른 길을 제시하고도 대중을 얻지 못한다.

 대중의 상식과는 유리된 지식인들은 양식이라는 선한 삶이 냉철한 이성과 분석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여긴다. 그래서 양식을 전달하는 필독서의 어투는 냉정하고 분석적이며 중립적이지만 정서적이지는 않다.

˝우익은 거짓을 말하고 있지만 인간에게 말하고 있고, 좌파는 진실을 말하고 있지만 사물˝에게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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