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제4장에 의하면 비극과 희극의 출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서술하였다.

"두 종류의 시인이 있는데, 각각 그들의 성질에 따라 한 사람은 풍자시를 버리고 희극시의 작자가 되었고, 또 한 사람은 서사시를 버리고 비극시의 작자가 되었다."

이들의 극시가 종래의 서사시나 풍자시보다 위대하며 고생했기 때문이다.

비극은 디시람보스(디오니소스 신에 관한 찬가)에서 일어났고, 희극은 이와는 반대로 생식기를 숭배하는 노래에서 발단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예술가는 행동하는 인간을 모방하는 자‘라고 하였다. 예술 활동이 모방이라고 하는 사상은 그리스인의 통념이었다. 

모방의 대상이 행동하는 인간이라면 여기에는 세 가지의 인간이 있다. 잘난 인간, 못난 인간, 동등의 인간이다.

이 중에서 제1의 인간을 대상으로 한 것이 비극이며, 호메로스이며, 또한 조각가 폴리클레이토스였다. 모방이란 형식에서 보면 서술적인 것에 대하여 인물이 현재 행동하고 있는 모습인데, 이것이 바로 극이다.

 극을 드라마(본래는 행위 행동의 뜻)라고 일컫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였다. 엄숙한 시혼을 가진 시인은 고귀한 행위와 고귀한 사람들의 행위를 묘사하였다. 극이란 행동하는인간을 모방하는 것이었으며, 비극은 엄중한 소재로 행동하는인간을 다루는 것이었다.


행동이 되기까지에는 선택의 자유와 결의를 전제로 하며, 또한 여기에는 행동의 주체성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진실 속에는 자유가 없다. 신의 지배, 인간의 신적인 의지에는 인간으로서 어쩔 수 없다는 운명사상은 그리스인의 전통 정신이다.

자유와 필연, 운명과 인간, 신과 인간의 관계를 행위를 매개로 꿰뚫어 보려는 것이 그리스 비극이다.

인간 생활의 심화이며, 이 심화는 일시적이거나 개별적인 것이 아니라 영원하며 보편적인 것이었다.

그리스 비극을 처음 상연한 것은 기원적 534년 페이스트라토스 시대 디오니소스 제사에서였다. 기원전 5세기, 비극의 상연은 국가적 행사로서 한 번 상연하려면 막대한 비용이 들었는데, 시민 중에서 유력한 이가 모두 이것을 부담하였다.

당시 폴리스는 지금과 달리 시민과 별개의 것이 아니고 일체로 되어 있었으며, 비극의 상연은 다 같이 ‘우리‘의 경연이라고 자처하였다.

희극에서는 코로스 대원의 웃옷으로 인물의 사회적 지위, 직업, 국적을 구별하였다. 여기에 사용한 가면도 매우 복잡하였다.

가면의 주목적은 웃게 하는 데에 있었다. 사람을 비롯하여 신화상의 인물은 말할 것도 없고 거리, 섬, 상선, 구름, 온갖 동물 등을 의인화했다.

그리스 희극은 사람들로 하여금 많이 웃게 하였으나 그 정신은 ‘현실 사회 비판‘에 있었으며, ‘위정자들에 대한 풍자‘가 위주였다. 

아리스토파네스의 작품인 「여인의회 (기원전392년 또는 389년)는 당시 사회극으로서 적절한 예이다.
그리스 희극은 3기로 나눈다. 고희극은 기원전 5세기, 아리스토파네스가 이를 대표하며, 중기 희극은 기원전 4세기 30년경까지, 그 이후를 신희극이라고 부르며 이를 대표하는 이는 메난드로스였다. 고희극과 신희극은 전체적으로 보아 서로 매우 다르며, 중기 희극은 양자 간의 과도기에 속한다. 그리스 비극에서는 시기를 나누거나 성질의 차이를 찾을 수 없다. 그리스 비/희극의 쇠퇴기를 따진다면, 대체로 비극은 기원전 4세기 이후이며,
희극은 기원전 3세기 이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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