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를 위한 분배 - AI 시대의 기본소득
이노우에 도모히로 지음, 김소운 옮김 / 여문책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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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아렌트는 『인간의 조건』에서 인간의 활동적 삶vita activa 을 ‘노동labor‘, ‘작업work‘, ‘행위action‘의 세 가지로 나누어 분석하고 ‘노동‘이 우위가 된 근세와 근대 이후의 사회를 비판했다.

인간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곡물과 고기를 소비해야 한다. 우리가 소비하는 그런 상품을 생산하는 것이 바로 ‘노동‘이다. 

다시 말해 노동은 다름 아닌 먹고 살기 위한 일이므로 한창 노동하는 인간은 얼룩말을 사냥하는 사자와 마찬가지로 생존본능에 충실한 동물이다. 만일 노동과 소비만을 행위라고 한다면 인간은 그저 태어나서 살다가 죽는 동물적인 삶의 과정을 겪고 있는 데 불과하다.

  ‘작업‘은 곧바로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영속적인 인공물을 만드는 일이다. 작업으로 만들어진 실물은 시와 음악, 가구 등이며 제작자의 사후에도 남을 가능성이 있다. 말하자면 작업은 죽을 운명인 인간에게 위로가 되는 영원성을 가진 것의 제작을 의미한다.

 행위는 다양하고 평등한 인간끼리의 대화를 의미하며 구체적으로는 정치적 활동이 이에 해당한다.

264쪽

아렌트는 행위야말로 고립되어서는 이룰 수 없는 가장 인간적인 일로서 그 우위성을 설명한다. "오직 행위만이 인간의 배타적 특권이며 짐승도 신도 행위능력은 없다"라고.

행위는 또한 독특한 개성을 지닌 인간 개개인의 정체를 밝히고,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를 폭로하는 역할을 한다. 그때 행위를 하는 인간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모른다.

인격은 의도적으로 드러낼 수 없다. 반대로 타인에게는 분명하고 착오 없이 나타나는 인격이 자신에게는 은폐되기 쉽다. 이는 마치 한 사람과 평생 동행하는 그리스 종교의 다이몬daimon (수호령)처럼 뒤에서 어깨너머로 바라보기 때문에 각자가 만나는 사람들만 볼 수 있는 것과 같다. 

이는 실로 행위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생기는 사회적인 행동임을 나타낸다.
아렌트는 특히 ‘행위‘를 중시했으며, 그 점에 관한 한 그녀의 사상은 공동체주의와 겹친다.

이들 세 가지의 활동적 삶 중 ‘노동‘은 고대 그리스에서 가장 낮고 미천한 지위에 있었으나 근세에는 루터에 의해 사람들의 신성한 의무가 되었고, 근대에는 존 로크가 ‘모든 부의 원천‘으로서 평가했으며, 급기야 마르크스가 가장 강력하고 일관성 있게 ‘노동이 최고의 세계를 건설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이라고주장하자 인간 활동 가운데 최상위의 지위로 갑작스럽고 눈부시게 상승했다. 

265쪽

아렌트는 이러한 근대의 전복된 가치를 다시 전복시키서 노동을 그 지위에서 끌어내리는 동시에 작업과 특히 행위를 복권하려 했다. 그녀는 고대 그리스의 노동관에 관해 이렇게 말한다.

노동하는 것은 필연성에 의해 노예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런 노예화는 인간의 삶의 조건에 내재한다. 사람은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들의 지배를 받기 때문에 필연성에 종속된 노예들을 강제로 지배해야 자유를 얻을 수 있다. 노예를 길든동물과 비슷한 존재로 변형시키기 때문이었다.

이는 인간이 계속 인간으로 존재하려면 노예를 소유해야한다는 소름 끼치는 생각이다.

반대로 노동을 담당하는 노예로 전락하는 것은 인간에서 가축이 되는 셈이며 죽음보다 나쁜 처지라고도 생각했다. 플라톤은 자살도 하지 않고 태평스럽게 복종적인 지위에 만족하는 노예를 경멸했다고 한다.

노동윤리에 지나치게 물든 오늘날의 일본인은 그토록 철저히 노동을 업신여기는 고대 그리스의 노동관에는 동조하기힘들 테지만 노동으로 자신의 지유로운 시간을 빼앗기는 정도는 이해하리라고 본다.

26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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