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철학사 - 개정판
S.P.램프레히트 지음, 김태길 외 옮김 / 을유문화사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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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티노스의 철학은 무엇보다도 온갖 형태의 이원론을 배격하는데 그 특징이 있다. 있는 것은 오직 하나의 존재 계열, 실로 여러 단계의, 그릭 온갖 종류의 존재물들을 포함하는 거대한 존재 계열뿐이라는 것이다.

이 전계열이 의존하고 있는 것, 그리고 그것의 존재의 근원이 되는 것은 플로티노스가 보통 ‘일자‘라고 부른 한 중심원리이다.

148쪽.

플로티노스가 신비주의자였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그의 신비주의는 신피타고라스 학파나 그노시스주의자들과 같은 신비적 종파들의 신비주의와는 큰 차이가 있었다. 

그것은 결코 유한한, 그리고 가시적인 세계를 물리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것은 유한하고 가시적인 세계 속에 무한하고 불가시적인 것이 재림해 있음을 느끼는 신비주의였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일자는 초월적인 것이다. 일자는 미(美)에 있어서 초월적이요, 선(善)에 있어서 초월적이며, 존재의 완전성에 있어서도 초월적이다. 

그러므로 일자는 그것의 무한성의 불충분한 표시(이것을 우리는 유한한 것들 속에서 찾아볼수 있는데)보다도 훨씬 더한 것이다. 

사람은 과연, 마침내는 유한한 현실세계를 넘어서 ‘초월적 일자와 합일‘하는 경지로 올라가기를 희망할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플로티노스는 역시 진지하게 일자는 내재적이기도 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일자는 무한성이 나타날 수 있는 데까지 유한한 것 속에드러나 있다. 

일자는 이 유한하고 가시적인 세계의 특색을 이루는 낮은계의 미, 낮은 단계의 선, 그리고 낮은 단계의 존재의 원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149쪽.


일자는 완전한 존재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 후의 논자들의 말을 빌리면, 그 결과로서 생기는 ‘존재의 충만성‘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적어도 유한한 존재가 있는 한, 그것도 역시 일자와 마찬가지로 선하고 아름다운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다만 불완전한 존재에 지나지 않는 것이요, 따라서 그것은 오직 불완전하게 선하고 아름다울 뿐이다. 

비존재(非存在)는 일자와 대립하는 또 하나의 존재가 아니다.
비존재는 일자의 존재성이 감소되어 가는 관념상의 한계, 그것도 결코 완전히 도달될 수 없는 한계를 말하는 것이다.

 플로티노스는 비존재를 ‘물질‘이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그가 사용한 이 말은 플로티노스를 연원으로 하는 전통 속에서 많은 혼란을 야기시켜 왔다. 그 까닭은 ‘물질‘ 이라는 말이 대부분의 사상 체계(데모크리토스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 체계 또는 이원론적 사상 체계와 같은)에 있어서는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플로티노스가 말한 뜻의 물질은 전혀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그것은 실재적인 존재로서는, 혹은 독립적인 것으로서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플로티노스의 용어상의 물질은 동시에 일자 자체를 제외한 모든 것의 한 모습이요, 필연적인 양상인 것이다. 왜냐하면 일자를 제외한 모든 것은 완전한 존재가 못되는 것이요, 다시 말하면 플로티노스가 말함직하고 또 실제로 말한 바 있는, 일자 이외의 모든 것은 물질적 제한을 받거나, 또는 존재와 비존재와의 혼합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물질성(物質性)이라는 것은 유한한 것들과 그것들의 근원인 일자와의 사이의 상대적 거리를 표시하는 존재성(存在性)의 감소를 가리키는 이름에 지나지 않는다.

15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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