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사랑하는 사람과 하나가 되고 싶어 하지만 동시에 상대에게 싫증을 낼 때도 많다. 그럴 때면 상대로부터 무언가를 받아들이기를 거부할 뿐 아니라 그 사람 자체를 아예 거부한다.
이 지점에서 나는 기본 방향을 다시 확인한다. 아마도 모든 생명체의 특징일 것이다. 우리는 전체에 소속되려 하면서 동시에 독립적이고자 한다.
기원전 5세기 그리스 철학자 엠페도클레스(Empedokles)는 끝없는 합일과 분리의 원인이 되는 두 가지 자연력을 거론한 바 있다. 바로 필리아(Philia, 사랑)와 네이코스(Neikos, 다툼)이다.
프로이트는 이를 두 가지 원초적 충동으로 보았다. 사랑으로 하나가 되려는 에로스(Eros)와 공격적으 로 분리되고자 하는 타나토스(Thanatos), 즉 동일성과 차이 말이다.
22쪽.
그러니 유일하게 정확한 학문적 결론은 이것이다. 우리는 뇌(조금 더 넓게 보아 유전자, 신경, 호로몬의 기초)와 우리 환경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이 낳은 결과이다. 탄생 직후에는 소위 본성 nature과 양육 nurture을 구분할 수 없다.
하지만 외부 세계 요인의 영향은 심지어 뇌구조까지도 바꿀 수 있다. ‘우리는 우리의 뇌다.‘라는 주장은 더 이상 그리 설득력 있게 들리지 않는다. ‘우리는 신체와 주변 환경의 상호작용이 낳은 결과‘인 것이다.
지금 우리의 지식 수준에 따르면, 심리장애 중에서 가장 연구가 많이 된 정신분열증의 경우 하나의 유전 요인이 존재하지만, 이 요인은 최소 열 개의 유전자가 결합하여 만들어진다.
이 유전자들이 결합할 경우 중증 정신 질환에 걸릴 위험이 15~20% 높아지는 것이다. 하지만 나머지는 환경의 영향이다. 가장 중요한 환경 요인 중 하나가 대도시에서 사는 것이다.
이를 정체성에 적용해보면, 유전자는 소프트웨어의 가능성을 (소프트웨어의 특수한 내용과는 상관없이) 조절하고 제한하는 우리의 하드웨어라고 볼 수 있다.
2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