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 - 북디자이너의 표지 이야기
피터 멘델선드 지음, 박찬원 옮김 / 아트북스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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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디자이너가 첫 독자는 아닐지도 모른다(첫 독자의 역할은 공식적으로는 편집자에게, 비공식적으로는 자가이파트너에게 돌아갈 것이므로), 그보다는 가장 철저한 독자라고 말하는 편이 낫겠다. 

표지 디자이너의 역할은 거의 문자 그대로 독서라는 본질적 행동을 하는 일이다. 즉, 책의 껍질 속을 꿰뚫어보고 그 책의 토대를 정확히 찾아 보여주는 일이며, 다시 말해 그것은 T.S. 엘리엇의 시 <불멸의 속삭임>에 등장하는 웹스터처럼 피부 아래 해골을 포착하는 일이다. 

표지 디자이너는 예언자들이 나뭇잎이나 내장을 읽어내는 식으로 책을 읽는다. 암호 해독가들이 비전문가에게는 아주 무고해 보이는 문서들을 읽어내는 식이다. 좀 더 격식을 갖추어 철학적인 어휘를 사용하자면, 그들은 현상학자들이다. 목소리를 이끌어내고 발현시키는 서정적이고도 철두철미한 활동에 참여한다.

그렇다면 그들이 발현시키는 것은 무엇인가? 오로지 나쁜 책들만이 ‘메시지‘를 갖고 있다. 우리는 (감사하게도) 작가의 의도, 그리고 마찬가지로 텍스트에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기저에 깔린 ‘의미‘가 있다는 생각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폐기했다. 

그럼에도 훌륭한 표지 디자이너는 뭔가를 이끌어내고 발현시킨다. 이 뭔가는 진실의 핵심도, 어떤 다른 종류의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ex-machina(고대 그리스 로마 극에서 가망 없는 줄거리를 해결하기 위해 투입되는 신 옮긴이)도 아니라고 나는 말하고 싶다. 

그보다는 책의 가독성의 행렬, 그리드, 개요일 것이다. 혹은 읽기 자체가 시작될 수 있도록 해주는 규범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책을 ‘설명하고‘ 의미론적으로 풀고 밝히는 규범이 아니라, 의미를 생산하는 총체적, 복합적 메커니즘을 출발시키는 규범, 혹은 문학적 경험의 한가운데 존재하는 대모험을 출발시키는 의미를,
확대되고, 상충되고, 불안정한 의미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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