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의 문제 - 시민의 정치적 책임
카를 야스퍼스 지음, 이재승 옮김 / 앨피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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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고발하고 비난하려면 권리가 존재해야만 한다. 누구에게 심판할 권리가 있는가? 

심판자는 자신에게 어떠한 권한이 있는가, 어떠한 목적과 동기에서 심판을 행하는가, 어떠한 상황에서 자신과 심판받는 자가 서로 대결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답해야만 한다.

 그런데 도덕적 죄와 형이상학적 죄에 대해서는 이 세상의 어느 누구도 심판자의 자리에 앉을 수 없다. 

사랑에 기반한 친밀한 사람들의 구속적 관계에서나 가능한 것은 거리를 둔 가운데 냉정한 분석 대상이 될 수 없다. 이런 연유로 신 앞에서 타당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인간 앞에서는 타당하지 않다. 

그리고 신은 교회의 직책, 여러 국가의 외무 부서, 언론을 통해 드러나는 세계 공론 등 그 어느 것도 지상에서 자신을 대리하는 법정으로 세우지 않는다.

전쟁의 결정과 관련해서 뭔가 판단해야 한다면 그 정치적 책임에 대한 판단은 승리자에게 절대적인 우선권이 있다. 승리자는 자신의 생명을 걸었으므로 결정은 자기 몫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렇게 물을 수 있다. "투쟁에서 몸을 빼고, 대의를 위해 자신의 생명과 양심을 걸지 않았던 중립적인 사람들이 공공연한 판단권을 갖는 것이 가당키나 한가?" (어떤 편지에서 인용) 

오늘날 우리 운명의 동반자들, 즉 다른 독일인들이 개인의 도덕적 죄와 형이상학적 죄를 운운하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의 태도에서어떤 심판자가 되려 하는지를 감지할 수 있다.

그 사람이 자신도 함께 가담한 죄를 논의하는지 그렇지 않은지, 죄를 내면적 차원에서 논하는지 아니면 외부적 차원에서 논의하는지, 즉 자아 성찰자로서 말하는지 아니면 고발자로서 말하는지, 그리하여 타자의 자아 성찰을 유도하는 친밀한 연대자로서 말하는지 아니면 순전히 공격만을 의도한 타인으로서 말하는지, 친구로서 말하는지 아니면적으로서 말하는지를 느낄 수 있다. 

만약 전자의 입장이라면 의문의 여지없이 심판권이 있겠지만, 후자의 경우라면 매우 의문스럽지 않을 수 없다. 심판은 사랑의 기준으로 제약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도덕적 죄와 형이상학적 죄가 아닌 정치적 책임과 형사적 죄에 관해서는 동료 시민들 누구나 진실을 규명하고 명료한 개념에 입각하여 토론하고 판단할 권리가 있다. 

정치적 책임은 현재 근본적으로 그 정당성을 부인당한 나치 체제에 가담한 정도에 따라 ‘등급화‘되며, 그 책임 내용은 승전국이 결정한다.

참화 속에서 살아남고자 했던 사람들은 누구든지 살아남았다는  이유로 승전국의 결정에 복종하지 않으면 안 된다.

ref> 등급화: 각 개인의 가담 정도에 따른 개인적 정치적 책임은 국민이라는 지위에서 발생하는 논리적 책임으로서 집단적 정치적 책임과 구분된다. 전자는 개인의 자유와 재산에 대한 것으로, 후자는 국민전체의 정치적 자유와 주권에 대한 것으로 나타난다.

10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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