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의 비밀계정 - 주눅 든 나를 일으켜줄 오늘의 편지
김도치.서반다 지음 / 이봄 / 2022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읽는페미 #언니의비밀계정

#김도치 #서반다



도치 님과 반다 님께



안녕하세요. 저는 나비라고 합니다. 페미니즘 웹진 아주마스의 필진이자 발행인을 맡고 있어요. 인스타를 넘어 책으로도 뵙게 되어 정말 기뻐요. 오랫동안 '읽는페미' 계정(@reading.femi)에서 귀한 페미니즘 책들을 많이 소개받았어요. 제가 좋아하는 책을 피드에서 만날 때면 반가움에 하트를 열 번씩 누르고 싶었고요. '읽는페미' 게시물에 많은 분들이 공감하는 걸 보면 저도 힘이 솟아요. 계정의 팔로워가 2.7만 명이 넘는 것도 너무나 멋지고요!



유명한 만큼 악플도 엄청 달리는 것 같아 마음이 좋지 않았어요. 저도 악플을 겪은 적이 있어요. 예전에 어떤 만화의 방영 중지 서명 링크를 단톡방에 공유했어요. 그 만화에는 불법 촬영을 하고 그걸 빌미로 협박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거든요. 그런데 단톡방에 있던 어떤 사람이 대뜸 '불편충' '프로불편러'라고 쏘아붙이더라고요. 순간 손이 떨렸어요. 그래도 가만히 있고 싶지 않아서, '다른 사람을 혐오하거나 차별하는 내용으로 예능이나 게임 콘텐츠를 만들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서명은 원하는 사람만 하면 된다.'라고 썼어요. 도치님은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악플을 마주하고 지워오셨을까요. 우리가 하는 말과 전혀 관계없이, 그저 '페미'라고 하면 달려들어 욕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요.



이 책을 읽으며, 잠에서 덜 깨어 정신이 몽롱할 때 열심히 악플을 지우는 도치님을 마음속에 그려보았어요. 맥락 없는 혐오에 맞서 이런저런 방법을 시도해 보셨을 것이 상상되어, 마음 한구석이 찌르르 아팠어요. 그래도 '어쩌면 이 비밀계정은 나의 용기보단 너와 닮은 여러 사람들의 마음 덕분에 이어지고 있는 건 아닐까?'(p.40)라고 적어주셔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저와 제 주변의 여러 페미니스트들이 언제나 '읽는페미' 계정을 응원하고 있다는 걸 꼭 잊지 말아 주세요.



도치 님과 반다 님이 서로의 다름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보며, 저와 웹진을 함께 발행하는 친구들이 떠올랐어요. 저희는 세 명인데 셋 다 다르거든요. 아들이 있고 워킹맘이라는 공통점은 있지만, 사는 지역도, 일하는 분야도, 관심 있는 책 종류도 모두 달라요. 웹진에서도 각각 에세이, 소설, 서평이라는 분야를 나눠 맡고 있고요. 처음 웹진을 시작했을 때는 자잘한 의견 차이로 상대방이 이해가 가지 않은 적도 있었어요. 그래도 안전한 관계라는 걸 믿고, 도치 님과 반다 님처럼 솔직하게 이야기를 하면서 다름에 익숙해져 갔지요. 책에 적어주신 것처럼, 마음을 털어놓는 과정에서 오히려 관계가 더 단단해진 기분이었어요.



목주름 이야기를 읽을 때는 저도 모르게 방긋 웃었어요. 불상처럼 목주름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저로서는, 도치 님의 이야기가 남일 같지 않아요. 이십 대 초반 한참 화장을 열심히 하던 시절에는 자기 전에 넥 크림을 꼭 발랐어요. 잡지에 나오는 모델들의 매끈한 목선을 선망하면서요. 페미니즘을 알기 전에 저는 동안·가는 팔다리·작은 발·작은 얼굴을 가지고 있어 '다행'이라고도 생각했어요. '이 수많은 '다행'은 누구를 밟고 서 있는 걸까.'(p.93)라는 말이 마음속으로 훅 들어왔어요. 틀에 맞출 수 있어 다행이라고 여길 것이 아니라, 이 틀이 누군가를 차별하고 배제하는 건 아닌지, 과연 이 틀은 누구에 의해 만들어졌는지 고민해 봐야겠지요.



저에게도 흑역사가 많아요. '뚱뚱한 사람은 자기 관리를 못해서 그런 거다', '애교를 적당히 부릴 줄 알아야 연애가 편하다', '아이는 당연히 엄마가 키워야 되는 거다'라고 생각했던 옛날의 저를 떠올리면, 부끄러움에 얼굴이 화끈거립니다. 그래도 실수했던 걸 흑역사로만 묻어두고 싶지 않아요. '모르면 물어보고, 배우고, 상대의 의견에 귀 기울여 들으려는 마음만 있다면 우리는 얼마든지 더 나아갈 수 있을'(p.136) 거라고 믿어요. 여전히 실수하고 미끄러지는 저에게 이 책의 구절이 힘을 불어넣어 주네요.



도치 님, 반다 님, 책을 써주어서 고마워요. 별것도 아닌 일에 네가 예민한 거라며, 페미니즘을 비하하고 차별과 혐오 발언을 일삼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이 책을 떠올려 볼게요. '페미니즘이란 세상을 보는 하나의 안경이자 내 모습을 돌아보게 만드는 거울'(p.171) 임을 기억하고, 타인의 입장을 헤아리는 일을 멈추지 않을래요. 페미니즘으로 뭉친 우리가 혼자가 아니라는걸, 결코 약하지 않다는 걸 잊지 않을게요. '아무리 작은 불씨라도, 가벼운 바람 한 번에 몸집을 키워 화력을 불태울 수 있다는걸요.'(p.168)



우리 오래오래 살아남아서 할머니가 될 때까지 반갑게 만나요!



2022.08.04.


나비 드림



✔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이봄출판사 #페미니즘 #편지 #서평 #북스타그램 #대체텍스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쟁은여자의얼굴을하지않았다

#스베틀라나알렉시예비치

'어떤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 그가 사람을 죽이고 죽어간 이야기를 듣는 것은 상대의 눈을 바라보는 것과 같다.'(p.60)

이 책은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던 소련의 여성 군인 200여 명을 인터뷰한 기록이다. Q&A가 아니라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전개되는 산문 형식이다. 책을 읽는 내내 여성들의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를 듣는 것 같았다. 내가 제2차 세계 대전에 대해 갖고 있는 지식이라고는 히틀러와 유대인 학살에 대한 것 밖에 없었다. 영국, 프랑스, 미국과 함께 연합국에 속했던 소련이 독일의 침공에 어떤 피해를 받았는지에 대해서 무지했다.

소련 여성들은 전쟁의 모든 곳에 있었다. 저격병, 포병, 전차병, 정찰병, 빨치산 병사, 공병소대(지뢰제거) 소대장, 전투기 조종사, 지하공작원, 통신병, 외과의, 간호병, 위생병, 기관사, 연락병, 취사병, 이발병, 제빵병, 물품보급병, 건설기술병, 병기공, 세탁병에 이르기까지 분야도 다양했다. 10대 중반 정도의 소녀 병사들도 많았다.

'긴 머리 대신 뭉툭하게 잘려나간 짧은 앞머리, 뜨거운 죽 냄비와 국그릇들이 돌아오지 않는 주인들을 기다리고 전투에 나갔다 무사히 돌아오는 사람은 백 명 중에 일곱 명 정도였다는 이야기, 혹은 전쟁터에 다녀온 후로는 줄줄이 걸린 붉은 살점의 고기를 볼 수가 없어서 시장에도 못 다니고, 심지어 붉은색이라면 사라사 천도 쳐다볼 수가 없었다는 사연들……'(p.32)

교과서에서 봤던 전쟁은 숫자와 승리와 패배의 기록, 무용담으로만 이루어져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은 말 그대로 고통의 기록이었다. 전쟁의 영향을 받는 모든 것ㅡ'사람들만이 아니라 땅도 새도 나무도'(p.18)ㅡ의 참혹한 현실이 그녀들의 목소리로 색깔과 냄새가 생생하게 전해졌다. 많은 장면들이 뼛속까지 오한이 들고 눈물이 날 정도로 두렵고 무서웠다.

조국을 지키기 위해 자진해서 참전했던 여성들은 전쟁이 끝난 후에 공훈을 인정받지 못했다. 함께 싸웠던 남자들은 나 몰라라 입을 다물었고, 어떤 여성들은 자기들의 남편에게 꼬리를 친 '군대의 암캐'(p.429)라며 욕을 했다. 소련에서 약 백만 명가량의 여성이 참전해서 싸웠음에도, 이들은 전쟁 이후 결혼을 하지 못할까 봐 참전 사실을 숨기는 일도 많았다.

전쟁을 모래사장에 비유한다면, 몇 년도에 어디서 어느 전투가 이루어졌고, 누가 이겼다는 기록만으로는 모래 한 바가지도 담아낼 수 없다. 전쟁이 '재빨리 자신의 모습을 사람들 속에 새겨넣'(p.286)어, 고작 몇 달 만에 '부드러운 어린애의 모습이 확신에 차, 심지어 어느 정도는 모질고 엄하게까지 보이는 여인의 눈빛으로'(p.285) 변하는 그 과정을 찬찬히 따라갈 때에만 전쟁은 자신의 초상화를 그리는 것을 허락한다.

'하늘이나 바다가 아무리 좋아도 내게는 현미경 렌즈 아래 놓인 모래 한 알이, 바닷물 한 방울의 세계가 더 소중하다. 그곳에서 내가 빗장을 열고 보게 될 위대하고도 놀라운 한 사람의 삶이. 만약 작은 것이나 큰 것이나 똑같이 무한하다면, 어떻게 작은 것을 작다고 하고 큰 것을 크다고 할 수 있을까? 나는 이미 오래전부터 그 둘을 구별짓지 않는다. 한 사람만으로도 벅차다. 한 사람 안에 모든 것이 있으므로. 그 안에서 길을 잃고 헤맬 만큼.'(p.272)

#문학동네 #다큐멘터리산문 #북스타그램 #서평 #페미니즘 #전쟁 #노벨문학상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책 앞날개 작가소개]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벨라루스의 저널리스트. (...) 일명 '목소리 소설Novels of Voices', 작가 자신은 '소설-코러스'라고 부르는 장르이다. 다년간 수백 명의 사람들을 인터뷰해 모은 이야기를 Q&A가 아니라 일반 논픽션의 형식으로 쓰지만, (...) 이 책의 원고는 2년 동안 출판사에 있었으나 출간될 수 없었다. 그는 영웅적인 소비에트 여성들에게 찬사를 돌리지 않고 그들의 아픔과 고뇌에 주목한다는 사실 때문에 비난받았다.


p.5 제2차세계대전중에 (...) 영국군 22만 5천명, 미국군 45만~50만 명, 독일군 50만 명 등, 여자들은 이미 세계 여러 나라의 군대에서 병종兵種을 가리지 않고 활약하고 있었다.

소비에트 군대에서는 백만 명가량의 여성들이 참전해 싸웠다. 그들은 가장 '남성적'인 군대 보직을 포함해 남자들과 똑같은 임무를 수행했다. 그 때문에 언어 문제가 발생할 정도였다. '전차병' '보병' '자동소총병' 같은 보직은 여성을 지칭하는 용어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러시아어는 모든 명사가 남성/여성/중성 이렇게 세 가지로 나뉘며, 군인을 가리키는 말들은 거의 남성명사


p.17 '여자'의 전쟁에는 여자만의 색깔과 냄새, 여자만의 해석과 여자만이 느끼는 공간이 있다. 그리고 여자만의 언어가 있다. 그곳엔 영웅도, 허무맹랑한 무용담도 없으며, 다만 사람들,/p.18 때론 비인간적인 짓을 저지르고 때론 지극히 인간적인 사람들만이 있다. 그리고 그곳에서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땅도 새도 나무도 고통을 당한다. 이 땅에서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모든 존재가 고통스러워한다. 이들은 말도 없이 더 큰 고통을 겪는다.


p.25 나는 전쟁이 아니라 전쟁터의 사람들을 이야기한다. 전쟁의 역사가 아니라 감정의 역사를 쓴다. 나는 사람의 마음을 살피는 역사가다. 한편으로는 구체적인 시간 속에 살고 구체적인 사건을 겪는 구체적인 사람을 연구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영원한 인간을 들여다보아야만 한다. 영원의 떨림을. 사람의 내면에 항상 존재하는 그것을.


p.32 긴 머리 대신 뭉툭하게 잘려나간 짧은 앞머리, 뜨거운 죽냄비와 국그릇들이 돌아오지 않는 주인들을 기다리고 전투에 나갔다 무사히 돌아오는 사람은 백 명 중에 일곱 명 정도였다는 이야기, 혹은 전쟁터에 다녀온 후로는 줄줄이 걸린 붉은 살점의 고기를 볼 수가 없어서 시장에도 못 다니고, 심지어 붉은색이라면 사라사 천도 쳐다볼 수 가 없었다는 사연들……


p.60 어떤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 그가 사람을 죽이고 죽어간 이야기를 듣는 것은 상대의 눈을 바라보는 것과 같다……


p.112 레닌그라드 봉쇄 [각주]

제2차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이 레닌그라드와 외부 지역을 잇는 마지막 철도를 봉쇄하면서 시작되었다. 봉쇄는 1941년 9월부터 1944년 1월까지 29개월, 즉 871일 동안 이어졌다. 외부와의 모든 통로가 차단된 가운데 300만 명에 가까운 레닌그라드 시민이 굶주림과 추위에 희생됐다.


p.187 의식 저 밑으로 쫓아버린 사실 그대로의 진실과 시간의 흔적이 스며든 공통의 진실. 신문 냄새가 폴폴 나는 공통의 진실. 첫번째 진실은 두번째 진실의 맹렬한 공격 앞에 맥없이 무릎을 꿇었다./p.188 (...) 그리고 청중을 위한 또하나의 전쟁을 그녀는 준비해두었다.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것과 똑같은 전쟁을. 신문에서 떠드는, 영웅들과 공훈이 주인공인 전쟁. 젊은이들에게 교훈을 주기 위한 훈육용의 전쟁. 평범하고 인간적인 것에 대한 이 불신에, 보통의 삶을 소위 이상이라는 것과 슬쩍 바꿔치기하려는 이 욕망에 매번 충격을 받았다. 평범한 온기를 차디찬 광채와 맞바꾸려는 욕망에.


p.272 하늘이나 바다가 아무리 좋아도 내게는 현미경 렌즈 아래 놓인 모래 한 알이, 바닷물 한 방울의 세계가 더 소중하다. 그곳에서 내가 빗장을 열고 보게 될 위대하고도 놀라운 한 사람의 삶이. 만약 작은 것이나 큰 것이나 똑같이 무한하다면, 어떻게 작은 것을 작다고 하고 큰 것을 크다고 할 수 있을까? 나는 이미 오래전부터 그 둘을 구별짓지 않는다. 한 사람만으로도 벅차다. 한 사람 안에 모든 것이 있으므로. 그 안에서 길을 잃고 헤맬 만큼.


p.285 부드러운 어린애의 모습이 확신에 차, 심지어 어느 정도는 모질고 엄하게까지 보이는 여인의 눈빛으로 변해 있던 얼굴. 그 몇 달, 그 몇 해 사이에 그런 큰 변화가 일어났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보통의 시간은 그렇게나 빨리 그렇게나 몰라보게 사람의 얼굴을 바꿔놓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의 얼굴은 긴긴 시간을 통과하며 서서히 변한/p.286 다. 그리고 그 얼굴에 아주 서서히 그 사람의 영혼이 새겨진다.

전쟁은 재빨리 자신의 모습을 사람들 속에 새겨넣었다. 자신의 초상화를 그려넣었다.


p.429 조국이 우리를 어떻게 맞아줬을 것 같아? 통곡하지 않고는 이 이야기를 할 수가 없어…… 40년이 흘렀는데도 여전히 뺨이 화끈거려. 남자들은 나 몰라라 입을 다물었고, 여자들은…… 여자들은 우리에게 소리소리 질렀어. '너희들이 거기서 무슨 짓을 했는지 다 알아! 젊은 몸뚱이로 살살 꼬리나 치고…… 우리 남편들에게 말이지. 이 더러운 전선의…… 군대의 암캐들아……' 우리는 정말 온갖 말로 모욕을 당했어……


p.479 이 길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악은 끝이 없어 보인다. 나는 이제 더이상 악을 역사의 문제로서만 대할 수가 없다. 누가 나에게 대답해줄 것인가. 지금 내가 하는 이 일은 시간의 문제인가 아니면 사람의 문제인가? 시간은 변하지만 사람은? 무한정 되풀이되는 삶의 반복성에 대해 생각해본다.


p.556 [옮긴이의 말] 처음 사람을 죽이고 엉엉 울어버린 소녀, 첫 생리가 있던 날, 적의 총탄에 다리가 불구가 돼버린 소녀, 전장에서 열아홉 살에 머리가 백발이 된 소녀, 전쟁에 나가기 위해 자원입대하는 날 천연덕스럽게 가진 돈 다 털어 사탕을 사는 소녀, 전쟁이 끝나고도 붉은색은 볼 수/p.557 가 없어 꽃집 앞을 지나지 못하는 여인, 전장에서 돌아온 딸을 몰라보고 손님 대접하는 엄마, 딸의 전사통지서를 받아들고도 밤낮으로 딸이 살아돌아오기를 기도하는 늙은 어머니……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다락방 2022-07-29 12: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완독하느라 고생하셨습니다, 나비 님!!

나비 2022-07-30 20:02   좋아요 0 | URL
이 책도 읽어야지 생각만하다가 다락방님 덕분에 드디어 읽었습니다! 늘 감사해요^^
 












책 제목을 정말 잘 지었다. 여섯 글자 안에 모든 내용이 담겨 있다. 이 책은 '레이디', 여성의 몸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떻게 '크레딧' 신용을 이끌어내는 담보로 쓰이는지를 보여준다. 보통 여성의 몸이 '대상화'되고 있다고 많이 표현한다. 성매매 산업에서 여성의 몸은 말 그대로 팔리는 상품이자 수많은 사람들에게 이윤을 안기는 도구다.



성매매 여성에게 업주들과 일수업자, 부동산 업자들이 빌려주는 돈은 여성이 성매매를 통해 얼마나 벌 수 있을지를 고려해서 정해진다. 업소를 이동하며 교환되던 여성들의 부채에 저축은행도 끼어든다. J 저축은행은 '아가씨'들에게 지급하는 선불금('마이킹') 서류를 강남 소재 유흥업소 업주들이 담보로 제출하면 대출을 해주었다. 이때 대출 금액은 '여종업원들의 성매매를 통한 수입에 근거해 지급'(p.172) 된다.



2004년 성매매 특별법 제정에도, 2000년대 중반 룸살롱은 점점 대형화된다. 대형 룸살롱에 개별 여성의 채권이 한데 묶이면서, 한 명에게 받지 못한다고 전체 돈을 떼일 가능성이 줄어든다. 위험을 묶는 기법 pooling으로 미래의 불안정성이 감소하는 거다. '개별 여성들의 상품성 이상으로 수익성을 극대화하는 기법이 된다.'(p.211) 성매매 사업은 수익성 높은 '매춘 생태계'가 된다.



이렇게 여성의 몸이 투자가치 높은 담보로 쓰일 때, 당사자 여성에게는 그만큼의 수익이 돌아가나? 여성이 돈이 필요해 선불금('마이킹')을 한 번 제공받으면, 이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690%에서(p.99) 3650%(p.98)까지 이자에는 상한선이 없다. 선이자를 떼고, 결근비를 매긴다. 룸살롱을 방문하는 남성들의 '초이스'를 받기 위해, 여성들은 성형을 받고 10만 원이 넘는 출근 준비비를 들여가며 단장한다. 업소는 성형을 주선하면서 수술 비용의 30% 이상에 달하는 브로커 수수료를 떼기도 한다.



그런데 일을 쉬는 순간 문제가 생긴다. 가족들에게 일이 생기거나, 아파서 일을 나가지 못하게 되면, 그때부터 더 빠른 속도로 빌린 돈의 원금이 커진다. '열흘 쉬어 버리면 돈 100만 원이'(p.348) 밀리기도 한다. 여성들은 몸이 아플수록 더욱 일을 그만둘 수 없다. 어떨 때는 하루 16시간(p.106)까지 일을 하지만, 돈은 밑 빠진 독처럼 도저히 쌓일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성매매 산업에 뛰어드는 여성들이 있는 이유는 여성의 몸을 담보로 만드는 사회, 빚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사회 때문이다. 여성들은 젊을수록 몸을 담보로 했을 때 더 쉽게 돈을 번다. 때문에 학자금 대출을 갚기 위해서 업소로 찾아오는 여성들이 생긴다. 대학원 학비 같은 목돈을 마련하기 위해서 돈을 모으려는 여성들이 찾아온다. 나이가 들어도 특별한 기술 없이 여성이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다.



현재 자본주의에서 성매매 여성의 몸은 성매매 업주, 일수업자, 부동산 업자, 의류 렌털업체, 미용실, 성형 브로커, 성형외과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의 지갑을 채워주고 있다. 성매매를 '노동'인지 '폭력'인지 분석하는 것만으로는, '여성의 매춘화'(p.396)를 막기 어려워 보인다. 여성의 몸과 미래 시간이 '크레딧'이 되는 이상, 여성들은 자본주의와 가부장제의 사슬 안에서 끊임없이 '화폐 제조기'(p.396)가 될 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 6장 성매매에 투자하는 사회


p.155 이 같은[마르크스적] 관점에서 본펠드와 홀러웨이는 신용의 자본주의적 역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만약 한 자본가가 은행에 대부를 요청하면, 결과적으로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이다. '나는 돈을 필요로 한다. 나는 이 순간 충분한 돈을 갖고 있지 않다. 왜냐하면 나의 노동자들에 대한 착취가 나에게 충분한 잉여가치를 가져다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앞으로 이자를 붙여 부채를 상환할 수 있도록 그들을 충분히 착취할 것이다."


>> 그들을 충분히 착취할 거라니.. 표현이 정말 살아있다..


p.159 새로운 자본축적의 회로 속에서 노동자, 빈민, 자영업자들은 모두 자산소유자로서, 때로는 "시민-투기자"이면서 동시에 채무자로서 금융화에 깊이 연루되고 있다. (...) 앤드루 로스는 금융화 국면에서 사용되는 테크닉을 "뽑아 먹기 기술"이라고 말하면서 이것의 두 가지 황금률을 지목한다. 첫 번째는 '어떤 경우라도 채무자들의 부채 상환이 중단되지 않도록 할 것', 두 번째는 '채권자들의 금융 손실이 항상 변제되게 만들 것'이다.


p.173 위의 판결문은 유흥업소 여종업원 특화대출이 '여성들의 몸'을 담보물로 계산해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명확히 지적했다.




📖 7장 채권으로 유통되는 여성의 몸


p.210 개별 인물이 가진 예측 불가능한 미래의 불안정성은 이같이 '위험을 묶는 기법'을 통해 예측이 가능해진다. 차용증 '채권의 묶음pooling', 룸살롱에서의 '여성의 집결pooling'은 개별 채권, /p.211 개별 여성들의 상품성 이상으로 수익성을 극대화하는 기법이 된다.




📖 8장 합리성의 가면


p.232 남성들에게 여성들의 '사이즈'는 여성의 위계적 몸 가치에 대한 차별적 가격 지불, 즉 '몸값'으로 이해되면서 진실의 척도인 가격을 결정하는 요인이 되지만, 여성들에게 '사이즈'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여성들에게 그것은 한정된 시간을 늘려주는 근거가 되는 동시에 부채 규모를 의미하기도 한다.


p.233 성매매 업소의 세분화된 등급은 각 업소에 속한 여성들의 외모에 등급이 있다는 믿음을 만들어내는 한편 여성들이 외모에 따라 각각 다른 가치를 갖는다는 것을 합리화하는 메커니즘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 텐프로, 쩜오, 퍼블릭, 소프트풀 등으로 이어지는 성매매 업소의 등급이 외모가 여성의 가치를 좌우한다는 걸 아주 공고히 하고 있다.


p.235 (...) 자발적인 조정을 강제하는 장치 (...) 다른 여성들과의 비교와 타인의 평가를 통해 자신의 '등급'과 위치를 '파악'하게 되는 것이다.


p.255 성매매는 단순히 개별 남성과 개별 여성의 성적 실천, 성적 계약의 문제가 아니라, 구매자로 동질화된 남성이 차별적이고 위계화된 가치를 가진 여성 개인과 이들에 대한 성적 판타지를 '공정 가격'으로 구매하는 관념의 문제다.




📖 9장 이 시대 젊은 여성 채무자의 도덕적 형상


p.291 사실상 신용은 무차별적으로 확대되었고, (...) 이러한 (탈)신용 사회는 결국 신용평점이 낮은 사람들에게 리스크를 부과한다는 명목으로 이자와 수수료를 과당 책정하고 이들의 삶 전체를 이윤의 원천으로 수탈하는, 합법적 약탈을 일삼는 곳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 10장 누구를 위한 자기 투자인가


p.322 성형수술은 사실상 성매매 산업에의 '무료입장권'이 아니라 '필수적 진입 비용'일 뿐이다. 그럼에도 많은 여성이 계속 성형수술을 하는 것은 언젠가는 상급 업소, 텐프로에 진입 가능한 프리패스를 가질 수 있다는 열망에서 비롯된다.


p.323 사실상 수술 비용의 30% 이상에 달하는 브로커 수수료, 대출금이 건네지는 단계에서 추징되는 10%의 선이자 등 증가하는 모든 비용이 수술을 받는 여성에게 전가되는 구조다.


>> 성형수술을 하지 않으면 '초이스'를 못 받으니까, 돈을 더 많이 벌려면 더 많이 성형수술을 하라고 권하는 분위기에서 단계별 수수료까지 다 여성한테 덮어 씌운다.


p.327 한 명의 여성이 성형수술을 받으면 수많은 사람에게 각종 수수료를 통한 이익이 발생하는 환경에서 여성들을 성형 시장으로 보내려는 힘은 점점 강해질 것이고, 성형수술을 받은 여성들은 그만큼 증가할 것이며, 손님들의 시선에서 '통과'되어 '초이스'되기를 원하는 여성들의 열망은 점점 더 실현되기 어려워질 것이다.


p.347 자신을 중심으로 빠르게 순환하는 돈의 회로에서 물리적 한계에 직면하게 되었을 때, 여성들은 부채 상환의 도덕률이나 채권자에 의한 채무 상환의 압박 때문에 또다시 부채를 끌어오게 된다. 때로는 업소나 사채업자가 현금 흐름을 유지하기 위해 여성들에게 '결근비'를 메우도록 하거나 이자를 채근하므로, 여성들은 '몸 노동'의 유한성에 직면하는 동시에 오히려 일을 중단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다.


>> 며칠만 몸이 아파서 못 나가도 이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구조다. 미래 수명을 당겨써서 지금 닥친 이자를 갚는 느낌.




📖 11장 '자유로운' '파산 불가능한' 주체


p.368 (...) 누가 이 시대 금융화의 수단으로 증권화되고 있는가라는 자본의 문제로 옮겨와야 한다. 여성의 몸을 수단화하며 확대재생산되고 있는 자본은 자신의 몸을 담보로 사용하는 대가로 여성들에게 현재의 자유를 허락하지만, 동시에 여성들의 '기대수익'을 통해 그들의 미래를 포박하고 있다.


p.387 (...) 오직 금융화된 성매매 산업 안에서만 신용을 획득하고 자신의 삶을 재생산할 수 있다는, 체제에 대한 자기 분석이기도 하다. 부채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여성 인구를 만들어내고, 현금 흐름에 필수/p.388 적인 존재로 여성들을 담보화하는 흐름에 개입하지 않고는 성매매 문제는 결코 해결할 수 없을 것이다. 매춘 여성의 몸과 미래 시간을 담보화하는 금융적 실천은 지금 우리 사회에서 이미 합법적이며 합리적인 경제적 행위로 자리매김하고 있기 때문이다.


>> 이십대 초반 여성들이 '몸만 있으면' 단기간에 돈을 벌 수 있는 성매매 산업에 덜 진입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등록금이 비싸지 않아서 학자금 대출을 받을 필요가 없어진다면. 서울과 비서울에 있는 대학 간의 격차가 없어져서 서울에 있는 대학에 오기 위해 집을 구하는 등 추가 생활비를 지출할 필요가 없어진다면. 일정 소득 이하인 가정의 청년들에게 교육받을 권리를 아주 저렴한 비용으로 보장해준다면. 여성의 외모에 서열을 매기고, 몸을 담보로 돈을 빌려주는 가부장제+자본주의 사회 자체의 구조가 바뀐다면.




📖 나가며


p.396 신용을 통해 모두가 자본에 접근할 기회를 갖게 된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여성들은 성매매 경제의 신용을 재생산하는 수단, 자신들의 채권과 함께 집결되어 신용 사회를 떠받치는 '담보물' 혹은 화폐 제조기가 되었다. '노동이 없는 존재'들에게 신용이 제공되는 현실 뒤에는 빈곤한 이들의 몸, 때로는 장기, 혈액 등 생명과 삶을 담보화하려는 논리가 숨어 있다.


p.397 신용은 빈곤한 이들의 몸과 미래의 삶을 수익으로 계산하고 이를 담보 삼아 사회 안에 내재한 불평등을 가리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성매매를 성별화된 경제 체제의 문제로 구성하지 않는다면 구제된 여성 한 명의 빈자리를 다른 여성이 채우는 현실을 피할 수 없다. 또한 '노동 없는' 여성들에게 신용이 부여되는 현실에 도전하지 않으면 '여성의 매춘화'를 막을 수 없을 것이다.


>> 자본주의에 대해 조금씩 더 알게 될 수록, 왜 이렇게 없는 사람 고혈을 빨아먹는 시스템이라는 생각을 자꾸 하게 될까..



댓글(2)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다락방 2022-04-27 10: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인용으로 달긴 했었지만, 읽다 보면 그거 나오잖아요. 성매매 수사하던 경찰이 경찰은 경찰복 경찰 돈으로 안사는데 왜 아가씨들은 홀복을 자기들 돈으로 사야하냐고.
돈 잘 벌려면 니들이 돈 써, 투자도 니들 몫이고 담보도 니들 몫이야, 라니. 착취도 이런 착취가 없죠. ㅠㅠ

고생하셨습니다, 나비님!

나비 2022-05-02 00:24   좋아요 1 | URL
정말 착취의 끝판왕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읽었어요 ㅠㅠ

이 책 사놓고 1년 넘게 읽어야지 마음만 먹고 있다가, 이번에 다락방님 덕분에 읽었습니다^^ 매달 독서모임 열어주셔서 너무너무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