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차별 관련 판례와 결정례 연구 - 광복 후 2012년까지
김엘림 지음 / 에피스테메(한국방송통신대학교출판부)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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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의 논리전개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 


1) 위헌결정의 논지는 「형법」 제304조가 모든 혼인빙자간음행위가 아니라 혼인할 의사가 전혀 없으면서 혼인하자며 적극적으로 속여 착오를 일으키게 하고 그를 이용하여 범행목적을 달성하는 위계의 방법으로 여성과 성관계를 가진 행위를 처벌하는 점과 혼인빙자간음행위의 해악성을 경시한 문제가 있다. 혼인빙자간음행위자의 행태를 보면 다수의 여성을 대상으로 기망행위를 하고 재산을 편취하는 경우들이 종종 있다. 위헌법률심판 청구인 중에도 그러한 형태로 행위를 하여 유죄판결을 받은 사람도 있다. 대상이 된 여성들은 나중에 속은 사실을 알고 엄청난 배신감과 임신 등의 육체적, 심리적 후유증을 가지게 되며 주위의 비난에 시달리게 되고 자살하기도 한다. 혼인빙자간음행위는 위헌결정문이 말하는 국가와 법이 규제해서는 안 되는 "도덕과 관습의 범위 내에서 해악을 수반하지 않는 방법으로 여성을 유혹하는 성적 행위", "그 속성상 과장이 수반되게 마련인 애정행위", "혼전 성관계의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통상적 유도행위"라고 볼 수 없다. 


2) 위헌결정의 논지는 혼인빙자간음행위를 한 남성을 성적 자기결정권의 주체로 보고 그 침해를 중시한 반면, 피해자의 권리침해문제를 경시한 문제가 있다. 성적 자기결정권이란 성적 욕망이나 행위를 자유롭게 발현할 권리뿐 아니라 원하지 않는 성적 관계와 행동을 받지 아니할 권리를 말한다. 인격권에서 유래되는 성적 자기결정권은 타인을 속이고 해악을 주는 성적 행위를 할 권리가 아니다. 피해자는 혼인을 빙자한 기망행위가 없었다면 가해자와 성관계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혼인을 빙자한 남성의 성관계의 요구는 위헌결정문이 말하는 "남성의 내밀한 성적 자기결정권의 영역에 속하는 행위"가 아니다. 혹자는 피해자의 권리는 형벌이 아니라 가해자에게 손해배상소송을 하여 보호받으면 된다고 하지만, 소송하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가해자가 배상능력이 없는 경우에는 배상받을 수도 없다. 위헌결정의 논지는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한 침해문제는 고려하지 않고 여성은 남성의 혼인빙자기망행위에 대해 적절히 판단, 대처했어야 하고 혼인하려고 하는 남성과 성관계를 가졌으면 그에 다른 책임도 져야 한다는 인식을 나타낸다. 형사법의 성편향 문제를 지적한 진보적 성향의 형법학자도 위헌결정의 논지와 같이 "남성의 구애는 필연적으로 ......과장과 기망을 내포한다. 그리고 남성은 구애과정에서 명시적 또는 묵시적으로 혼인에 대한 약속을 하기 마련이다. 과장과 기망이 내포된 구애행위를 하는 남성과 동일한 사회에 살고 있는 여성은 이러한 구애행위의 특징을 알고 있거나 알고 있어야 하며, 혼인에 대한 약속을 포함한 상대 남성의 인격과 품성, 그리고 구애의 진의를 자기책임하에 면밀히 검토한 후 성교 여부에 대한 선택을 해야 한다. 만약 그러한 주의의무를 다하지 않고 성교를 하였다면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여성이 부담해야 한다."라고 하였다. 이러한 견해는 헌법재판소의 2002년 합헌결정례에서 소수의견(위헌의견)을 제시한 재판관들(권성, 주선희)의 견해와도 일치한다. 그런데 이러한 견해들은 기망한 남성의 책임은 묻지 않고 기망당한 여성을 비난하는 다분히 남성중심적 사고이며, 혼인빙자간음행위가 소위 '꽃뱀'이라고 일컬어지는 여성에 의해 남성에게 발생하는 사건들도 있지만 주로 남성이 여성을 대상으로 하여 혼인을 빙자한 교묘한 기망으로 상당한 피해를 주고 있는 사건들이 아직도 종종 발생하고 있는 현실을 간과한 문제가 있다고 본다. 유의해야 할 것은 여성들의 미약한 판단력이 문제가 아니라 혼인 상대자를 믿고 성관계를 가진 여성들을 기망한 남성의 행위가 문제이다. 보이스 피싱이나 사기와 같이 기망행위로 인한 사건의 피해자 중에는 높은 수준의 학위나 사회적 지위를 가지고 판단력이 높다고 평가받는 사람들도 많다는 것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점에서 헌법재판소는 제304조의 혼인빙자간음죄가 남성의 성적 자기결정권과 애정의 자유에 초점을 둘 것이 아니라 '음행의 상습 없는 여성'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문제에 초점을 두어 평등권위반의 문제로 논지를 전개했어야 한다고 본다. 


3) 위헌결정의 논지는 성과 사랑은 법으로 통제할 사항이 아닌 사적인 문제라는 인식이 커져 가고 있고 혼인빙자간음행위를 금지하는 것은 법의 과도한 사생활침해라고 하고 있지만, 국가와 법이 통제하는 성적 행위 중 성희롱, 성폭력, 성매매, 혼인빙자간음행위는 '사랑'이 아니며 사생활의 일로 방치할 문제가 아니다. 


4) 위헌결정의 논지가 혼인빙자간음행위에 대한 고소율, 기소율이 적으므로 형사처벌의 실효성이 적다고 평가하고 이를 제304조의 폐지론의 논거로 제시한 것도 강간죄의 고소율, 기소율도 적다는 사실에 비추어 보면 반드시 타당한 논거로 볼 수 없다. 


5) 더구나 이번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으로 혼인빙자간음죄는 도입된 지 56년 만에 효력이 없어지게 되었고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인 사건은 모두 공소 기각되어 풀려날 수 있게 된 것은 물론, 과거에 이 죄로 처벌받은 사람들은 법원에 재심을 청구할 수 있으며 실형을 선고받고 수감된 경우 국가로부터 형사보상금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결과는 국가의 형벌권의 오·남용으로 인한 피해에 대한 원상회복을 하는 취지에서 「헌법재판소법」에 따른 것이지만, 1950년대 이후 사회문제화되었던 혼인빙자간음행위의 범행실태와 피해여성과 사회에 대한 해악을 고려해 보면 모든 형사 관련 행위에 원상회복적 구제를 하고 있는 현행 제도는 재검토되어야 한다고 본다. 


법과 판례는 시대적 상황과 법을 만들고 해석하고 적용, 집행하는 사람들의 가치관이나 이해관계와 경험, 국민의 여론에 따라 크게 영향을 받으며 형성, 변화하는 속성을 가진다. 혼인빙자간음죄에 대한 평가도 이러한 영향을 받아 이루어지는 것이지만, 피해자의 입장이나 고통과 행위의 해악성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형법」 제304조는 "실효성이 미약하고, 여성의 성적 줴성을 훼손하는" 것으로 평가되어 2012년 12월18일에 개정되고 2013년 6월19일에 시행되는 「형법」에서 삭제되었다. 


(388-391면) 

   *굵은 강조는 안티스토커.



비록 형법은 사라졌지만 그러한 행위의 해악과 부도덕성은 변함이 없다. 상대방을 사랑의 상대가 아닌 성욕해소 또는 기타 필요해소의 대상이나 도구로 이용하는 짓을 하면 형벌은 아니지만 어떠한 벌을 받아 마땅할 것이니, 아직도 비열한 짓을 서슴지 않는 자들은 심리치료, 비뇨기계통 치료 또는 성교육을 받으러 다닐 것을 권한다. 주위에서도 그와 같은 짓으로 상대방에게 피해를 입힐 것이 예상되는 자가 있으면 꾸짖고 만류해야 할 것이다. 오늘의 피해자는 남의 딸이지만, 내일의 피해자는 자기 딸이 되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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