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적인 괴롭힘과 낮은 강도의 지속적인 위협이 합쳐지면 여성의 도시 생활은 의식적으로, 무의식적으로 수많은 변화를 겪는다. 직장 내 괴롭힘이 여자들을 간부직에서 몰아내고 그들이 과학, 정치, 예술, 문화에 기여한 바를 지우듯 도시 폭력의 공포는 여자들의 선택과 권력과 경제적 기회를 제한한다. 업계 관행이 괴롭힘을 허용하고, 가해자를 보호하고, 피해자를 징벌하도록 만들어져 있듯이 도시 환경은 가부장제, 성차별적 노동시장, 전통적 성 역할을 지탱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 사회가 성 역할 따위에 의한 한계를 넘어셨다고 믿고 싶어도 여성을 비롯한 소수 집단들은 여전히 도시에 내재된 여러 가지 사회 규범에 의해 자신으 삶이 제한되는 것을 발견한다. (22쪽)


전후 프로파간다는 여자들이 전시에 가졌던 공장 일자리를 남자들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노골적으로 주장했다. 그리고 교외 주택은 규범적 성 역할을 재정립하는 데 완벽한 <해결책>이었다. 일시적으로 넓어졌던 여성의 활동 반경에 공간적인 해결책을 제시함으로써 공적 노동과 사적 노동, 유급 노동과 무급 노동이라는 구분이 남녀 간에 <자연스럽게> 재정립될 수 있었다. (57쪽)


지나치게 성별 중심적인 관점에서 평등을 추구하는 것도 또 다른 한계를 만들 수 있다. 전형적인 도시인이 너무 자주 백인 시스젠더 비장애인 중산층 이성애자 남성으로 상정되는 것도 문제지만 젠더 기획에서 상정하는 여성상 또한 비슷하게 제한적이다. 젠더 기획의 수혜자는 대부분 핑크칼라 또는 화이트칼라의 기혼 유자녀 비장애인 여성으로 가정된다. 그러나 이 여성은 오늘날 대부분의 도시에서 소수자에 속할 가능성이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즉 성 주류화에서 다루지 않는 필요를 가진 범주의 여성들이 많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80)


여성 친화적 도시는 물리적, 사회적 장벽이 해체된 곳이자 모든 사람을 환영하고 수용하는 곳이어야 한다. 여성 친화적 도시는 돌봄 중심이 되어야 한다. 돌봄 노동을 계속 여자들이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 아니라 돌봄 노동을 보다 공평하게 분배할 수 있는 잠재력이 도시에 있기 때문이다. (87쪽)


청소년과 성인 간의 공간 차이를 조사한 질 밸런타인의 연구에 따르면 소녀들은 아이러니하게도 도시의 길거리 같은 공공장소를 <사적인> 장소라고 생각한다. 이런 공간이야말로 부모님이나 선생님 같은 보호자의 감시에서 벗어나 익명성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집은 오히려 공공장소에 가까웠다. 사생활을 보장받지도 못하고 자기 방이나 물건을 마음대로 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108쪽)


유색인들은 자기가 사는 도시에서도 침입자나 범죄자가 된 듯한 기분을 느끼고 스타벅스에 앉아 있거나 공중화장실을 이용하는 것 같은 간단한 일을 하려다가도 괴롭힘, 체포, 심지어는 살해당할 위험에 처하곤 한다. 테주콜이 말했듯이 백인 우월주의하에서 흑인 소요객은 존재할 수 없다. (148쪽)


다른 많은 문제의 경우처럼 사회적 변화 또한 필요하다. 1인용 화장실을 설치한다고 해서 트랜스젠더 혐오나 젠더 기반 폭력이 사라지진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모든 젠더, 장애, 계급의 사람들을 아우르는 화장실 접그성을 보장하는 것은 여성 친화적 도시를 만드는 데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170쪽)


도시 여자들의 반폭력 운동은 경찰이 기껏해야 무관심한 방관자에 불과한 세계에서 일어난다. 다운타운 이스트사이드에서 여러 명의 여자 ---그 중 다수가 원주민 그리고/혹은 성 노동자였던---가 실종된 사건이 연쇄 살인범의 소행일지도 모른다는 가설을 밴쿠버 경찰과 왕립 캐나다 기마경찰이 오랫동안 부인했던 일은 유명하다. 결국 범인이 여섯 건의 살인 사건에 대해 유죄 판결을 받았음을 고려할 때---그가 자백한 건수는 50건에 가까웠다고 한다--- 경찰의 행동과 태도는 명백한 인종주의와 성차별주의뿐 아니라 성 노동자에 대한 깊은 멸시를 드러냈다. (189쪽)


때로는 그냥 거리로 나가야 한다! 권리란 강의실이나 소셜 미디어에서 혹은 선거 정치를 통해서도 쟁취하거나 지킬 수 없다. 모든 일은 현장에서 일어난다. 

역사는 명백하다. 사회 변화는 어떤 형태로든 저항 없이는 일어나지 않는다. 그리고 여성의 도시 생활에서 이루어진 개선은 대부분 사회 운동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 모든 여자가 시위에 참여하지는 않을 것이다. 사실 한 번도 안 하는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러나 시위는 모두의 삶에 영향을 미쳐 왔다. (212-213쪽)


이것은 공포의 숨은 비용, 여자들이 도시에서 충만하고 자유롭고 독립적인 삶을 사는 것을 방해하는 비용이다. 이 비용이 초래하는 사회적, 심리적, 경제적 결과는 상당하다. 그것은 이미 과부하 상태인 여자들의 생활에 엄청난 부담을 덧얹는다. 왜냐하면 우리는 유급 노동과 무급 노동이라는 <투잡>을 뛰면서 거기에 성차별과 인종 차별, 동성애 혐오, 장애인 차별 등을 더해 <스리 잡>, 거기다가 끊임없는 스스로의 안전 관리까지 더해 <포 잡>을 뛰어야 하기 때문이다. (228-229쪽)


페미니스트들은 분명 인공 환경의 변화를 위한 운동을 해왔으나 여자들의 안전 부족이 여성을 비롯한 주변화된 집단에 대한 사회적 통제를 용이하게 하는 지배의 네트워크 안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한 번도 잊어 본 적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공포는 절대 <설계로 업앨> 수 없다. (239쪽)


따라서 안전을 강화하기 위한 정책이나 관행, 설계 변경을 실시할 때는 다양한 사회 구성원이 어떤 영향을 받게 될지 사전에 잘 살펴야 한다. 모두에게 맞는 한 가지 해결책을 찾는 것은 불가능할지 모르나 가능한 한 교차적 접근법을 채택해야 한다. (244-245쪽)


1990년대에 필라델피아가---그 중에서도 특히 젠트리피케이션이 빠르게 진행 중이던 도심이--- 실제보다 안전해 보이게 만들기 위해 경찰이 범죄 데이터를 조작해 왔음이 밝혀졌다. 지리학자 앨릭 브라운로는 경찰이 수십 년간 고의적으로 성폭력, 특히 강간 신고를 <허위 신고>나 단순 <인물 조사>로 분류함으로써 조작해 왔음을 폭로했다...(중략)... 필라델피아는 강간을 보이지 않게 만듦으로써 스스로가 (여성을 포함한) 젊은 전문직 독신자들에게 가장 안전한 최고의 도시라고 광고할 수 있었다. (245쪽)


우리는 안전한 도시의 형태가 정확히 어떤 것인지는 알지 못하지만 거기에 사적인 안전 조치가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은 안다. 안전한 도시는 범죄 예방이나 적절한 조사를 경찰에 의존하지 않을 것이다. 안전히 보이는 겉모습을 위해 성 노동자, 유색인, 젊은이, 이민자를 저버리지 않을 것이다. 백인 여성 특권층의 필요와 욕구를 중심에 두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물리적 변화가 가부장적 지배를 무너뜨릴 거라고 기대하지 않을 것이다. (249쪽)


여성 친화적 도시는 도시 세계에서 다르게 살기, 더 잘 살기, 더 공정하게 살기에 관한 현재 진행 중인 실험이다. (264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