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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테러리즘 속 이슬람
이븐 워라크 지음, 서종민 옮김 / 시그마북스 / 2018년 10월
평점 :
제9수라는 지하드 개념을 발전시키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쿠란의 장이다. Q9.앳 타우바, <회개>, 111을 살펴보자. (154)
와트는 하와리즈파의 이슬람적이면서 정치적인 활동주의가 없었더라면 아마도 평범한 무슬림들은 칼리프 왕조가 세속적인 아랍 국가를 이끌도록 내버려두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229)
수백 명의 목숨을 앗아간 당시의 폭동은 결국 10세기, 11세기, 12세기 그리고 13세기의 이슬람 세계와 특히 바그다드와 같은 대도시에는 종교의 영향으로 발생한 테러리즘, 다시 말해 20세기의 현상과 거의 다르지 않은 테러리즘이 존재했음을 확인해준다. (253)
배타주의와 비관용, 개인의 희생에 기울어 있으며, 어려운 질문들에 대답하거나 반대를 용납하지도 못하던 이들의 신이슬람 전체주의 운동은 폭력 이외에는 달리 기댈 곳이 없었다. (410)
나치 독일은 중동 지역에서 체계적인 캠페인을 벌이면서 각국 엘리트 인사들에게 친나치적이고 반유대주의적인 정서를 불어넣었다. "베이루트와 바그다드, 카이로와 예루살렘, 카불과 테헤란, 트리폴리와 튀니스 등에서 나치당 지부들이 군인 및 SS정보요원, 회사원과 학자들을 조직화해서 히틀러 정권의 영향력을 퍼트렸다. (416-417)
히틀러는 1933년부터 1941년까지 총 53만 7천 명의 유대인들이 독일을 벗어나도록 놔두었으나, 알 후세이니의 반유대주의적 발언 및 유대인을 제거한다는 그의 '신선한' 주장에 따라 히틀러는 '유대인 문제에 대한 최종 해결책'을 준비하기로 결심했다. (419)
이스라엘과 모종의 평화를 도모했던 요르단이나 레바논 등의 온건파 지도자들이 암살당한 배후에 알 후세이니가 있었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는 또한 이슬람으로 개종시킨 기존 나치 당원 여러 명이 중동에서 새로운 신분과 직업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왔다(4천 여 명에 가까운 독일 전범들이 중동으로 탈출해왔다는 사실은 거의 잊힌 상태다. 남아메리카로 도주한 독일 전범은 180~800명 사이로 훨씬 적다). (421)
그러나 이란인권기록센터의 보고에 따르자면,
1988년의 대학살은 체계적인 방식을 통해 계획되고 실행된 것이며, 단기간 내에 전국적으로 자행되었다. 희생자를 결정하는 데에는 임의적인 방식이 사용되었으며, 희생자의 수도 어마어마하다. 무엇보다도 정부가 처형이 있었다는 사실을 비밀에 부치고 계속해서 부정하기 위하여 어마어마한 수고를 들였다는 점에서 눈여겨보아야 한다. 아야톨라 호메이니가 8년간의 처참했던 이란-이라크 전쟁의 정전협정 수락 직후 공포했던 파트와가 이번 대학살의 근거가 되었다. (486-487)
아야톨라 호메이니는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쿠란과 수나에 대해 깊은 학식을 쌓은 학자가 되어 평생에 걸쳐 이슬람을 가르쳤던 인물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슬람 테러리즘을 설명하는 두 가지 주된 가설, 가난과 무지는 이슬람국가를 향한 호메이니의 열망을 불러일으켰던 동기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호메이니와 그의 성직자들은 이슬람국가에 이슬람법을 도입하고자 했으며 실제로 그 체제를 설치하는 데 성공했다. 그 이후로 이어진 국가폭력은 자연스레 이슬람법에서 기인한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이슬람이 곧 이슬람 테러리즘의 원인인 셈이다. 내가 설명하고자 하는 논지와도 정확히 일치하는 부분이다.
물론 대부분의 학자들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몇몇 학자들은 이란혁명이 실제로는 '독재하에서 위축된 사회를 민주화시키기 위한 운동'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학자들은 그와 같은 역사적 눈속임을 성공시키기 위하여 호메이니의 역할을 최소화해야만 한다. 이슬람 세계에서 종교가 가지는 역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다른 역사학자들 또한 호메이니를 조연으로 격하시키면서 이슬람 혁명을 사적 유물론이나 사회경제학 등의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에 눕히고자 최선을 다한다. 그러나 이란이슬람공화국은 모든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꿈꿔왔던 형태, 즉 샤리아에 의해 통치되는 이슬람국가로서 존재하며 운영되고 있다. (492-493)
이슬람의 전 역사에 걸쳐 등장했던 이슬람 테러리스튿들은 모두 비슷한 이유를 가지고 행동했다. 그들의 선조들이 가졌던 순수성으로 회귀하고자 하는 욕망, 혁신의 거부, 타우히드에 대한 엄격한 준수, 선행을 명하고 악행을 금하라는 원칙을 따라야 한다는 의무, 그리고 하나님을 위하여 이 모든 것을 군사적 의미의 지하드를 통해 행할 의무가 그것들이었다. 그들은 모두 같은 원전들, 무엇보다도 특히 쿠란에서 의지를 얻었으며, 계속해서 같은 수라 같은 구절들을 인용했다. (499)
21세기는 두 가지 일신론이 대립하는 세상이다. 하나는 그리 강력하지 않은 일신론, 즉 기독교로 배교자를 마주할 경우 비애를 드러낸다. 다른 하나는 실로 강력한 일신론, 즉 이슬람으로 배교자와 마주할 경우 그를 살해하는 방식을 통해 분노를 드러낸다. (500)
이슬람은 인간의 개성을 억누를 것을 요구하는 전체주의적 체제이며, 놀랍게 보일지도 모르겠으나, 자신의 정체성을 모든 것이 상명하복으로 이루어지는 집단의 정체성에 녹여내고자 하는 무슬림들은 수도 없이 존재한다. 이들은 집단적 조직, 와트의 묘사로는 '카리스마적 공동체', 즉 하나님이 모든 행동을 뒷받침하시는 공동체에 들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이슬람의 모든 속성들은 이슬람을 일종의 파시즘이자, 명백한 전체주의적 구조로 만든다. (505)